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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_정원

녹우당 사랑채, 고산 윤선도 선생이 살았던 해남 윤씨 고택

younghwan 2010. 9. 11.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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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남 녹우당은 고산 윤선도 선생이 살았던 고택으로 그의 고조부인 어초은 윤효정이 이 곳에 터를 잡으면서 지은 건물이다. 녹우당은 사랑채와 안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솟을대문이 정문을 들어서면 사랑채가 있고, 고산 사당이 있는 동문쪽으로 들어서면 'ㄷ'자형 안채가 자리잡고 있다. 현재의 녹우당 사랑채는 효종이 윤선도에게 내려준 수원에 있던 집을 이곳으로 옯긴 것이라고 한다. 현재 녹우동은 관리가 잘 되지 않아서 약간 어수선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고산 윤선도의 흔적을 찾아서 이 곳을 찾아오고 있다.

녹우당 사랑채. 효종이 내려준 수원집을 이 곳 해남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ㄷ'자형의 안채와 합쳐져서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조선후기 상류층에서 유행한 저택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녹우당 사랑채에는 넓은 마루를 두지 않고, 여러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녹우당 현판과 글이 적이 적혀 있는 현판. 글씨가 매우 수려해 보인다.

옆에서 본 녹우당 사랑채

녹우당 마당 서쪽편에 있는 행랑채처럼 보이는 초가건물

녹우당 마당의 정원. 정원 한쪽편에는 작은 연못이 있는데, 관리가 잘 안돼서 그런지 어수선해 보인다.

녹우당 정문인 솟을 대문.

해남 윤씨 고택인 녹우당을 상징하는 은행나무와 녹우당.

고산 윤선도가 살았던 집으로 윤선도의 4대 조부인 효정(1476∼1543)이 연동에 터를 정하면서 지은 15세기 중엽의 건물이다. 집터 뒤로는 덕음산을 두고, 앞에는 벼루봉과 그 오른쪽에 필봉이 자리잡고 있는 명당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사랑마당인데, 앞면에 사랑채가 있고 서남쪽 담모퉁이에는 조그마한 연못이 있다. 사랑채는 효종이 윤선도에게 내려준 경기도 수원에 있던 집을 현종 9년(1668)에 이곳에 옮긴 것이다. 사랑채 뒤 동쪽 대문을 들어서면 안채가 ‘ㄷ’자형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당은 안채 뒤 동쪽 담장 안에 한 채가 있고 담장 밖에 고산사당과 어초은사당 등이 있다. 입구에는 당시에 심은 은행나무가 녹우단을 상징하고 뒷산에는 500여 년 된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제241호)이 우거져 있다. 이곳에는 윤두서자화상(국보 제240호), 『산중신곡집』(보물 제482호), 『어부사시사집』 등의 지정문화재와 3천여 건의 많은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녹우단은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으로 구성되고 행랑채가 갖추어져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형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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