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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_정원

판소리를 집대성한 신재효 고택(古宅), 고창읍성(高敞邑城) 입구

younghwan 2010. 9. 11.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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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창읍성 입구에 위치한 이 집은 동리 신재효가 살면서 후학을 양성하던 곳으로 조선 철종때 세워졌다고 합니다. 일자형의 초가집으로 농촌마을의 주택은 아니고 고창읍내에 위치한 지방도시의 주택이라고 생각됩니다. 초가로 지어졌지만 나름대로 격식을 갖추고 있는 양반집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주변의 물을 끌어 마루 밑을 통해 서재 밖 연못으로 흘러가도록 만든 운치 있는 집이었으나, 지금은 모두 파묻혔고, 연못만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고창읍성에 위치한 조선후기 판소리를 집대성한 신재효 선생의 고택입니다. 초가집이지만 운치있게 집을 꾸며 놓고 있습니다. 고창읍성에 위치하고 있기때문에 당시 대표적인 지방 도시지역의 주택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신재효 선생 고택의 운치있는 담벼락입니다. 담너머로 정겨운 초가지붕이 보입니다.

남쪽 지역의 주택이라서 일자형 주택구조를 하고 있고 북쪽 방향으로 입구와 마루가 있습니다.

마루와 끝쪽에 부엌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일반 서민 주택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시 신재효 선생이 후학을 가르치는 모습을 재현한 인형들입니다.

측면에서 본 모습입니다. 신재효 선생이 후학을 가르치던 집이라서 그런지 농촌주택의 분위기는 거의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주택 후원에 위치한 돌로 쌓은 우물입니다.

주택을 출입하는 쪽문입니다. 초가로 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뒷마당의 우물에서 시작해서 연못으로 물이 흐를수 있도록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아버지 광흡은 경기도 고양 사람으로 한성부에서 직장을 지내다가 고창에 정착했다. 어머니는 경주김씨로 절충장군 상려의 딸이다. 전북 고창에서 출생하였으며, 아버지에게 수학하였고, 40여 세까지는 집안 일에 종사하다가 이후 판소리 연구에 전력하였다.고종 때 오위장을 지냈으며, 당시까지만 해도 판소리는 기생이나 광대들이 아무 계통 없이 불러왔는데, 그는 이를 통일하여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가루지기 타령> <토끼타령> <적벽가> 등 6가지로 체계를 세우고 독특한 창의로 판소리 사설 문학을 이루었다. 또한, <춘향전> <박타령> <토끼타령> <심청전> 등을 개작하여 창극화하였다. 그의 전 작품에는 서민적인 해학성과 사실성이 넘치고 있다. 문하에서 김세종, 정춘풍, 채선, 허금 등 많은 명창을 길러냈다. 진채선은 여자 광대로 여자도 판소리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었으며, 춘향가를 남창과 동창으로 구분하여 어린 광대가 수련할 수 있는 대본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시문집이 전해진다. 고창읍 성두리에 묘가 있으며, 1890년 한산시회에서 송덕비를 건립하였다. 판소리 사설 외에도 30여편의 단가 혹은 허두가(虛頭歌)라고 하는 노래를 기었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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