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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읍성 입구에 위치한 이 집은 동리 신재효가 살면서 후학을 양성하던 곳으로 조선 철종때 세워졌다고 합니다. 일자형의 초가집으로 농촌마을의 주택은 아니고 고창읍내에 위치한 지방도시의 주택이라고 생각됩니다. 초가로 지어졌지만 나름대로 격식을 갖추고 있는 양반집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주변의 물을 끌어 마루 밑을 통해 서재 밖 연못으로 흘러가도록 만든 운치 있는 집이었으나, 지금은 모두 파묻혔고, 연못만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아버지 광흡은 경기도 고양 사람으로 한성부에서 직장을 지내다가 고창에 정착했다. 어머니는 경주김씨로 절충장군 상려의 딸이다. 전북 고창에서 출생하였으며, 아버지에게 수학하였고, 40여 세까지는 집안 일에 종사하다가 이후 판소리 연구에 전력하였다.고종 때 오위장을 지냈으며, 당시까지만 해도 판소리는 기생이나 광대들이 아무 계통 없이 불러왔는데, 그는 이를 통일하여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가루지기 타령> <토끼타령> <적벽가> 등 6가지로 체계를 세우고 독특한 창의로 판소리 사설 문학을 이루었다. 또한, <춘향전> <박타령> <토끼타령> <심청전> 등을 개작하여 창극화하였다. 그의 전 작품에는 서민적인 해학성과 사실성이 넘치고 있다. 문하에서 김세종, 정춘풍, 채선, 허금 등 많은 명창을 길러냈다. 진채선은 여자 광대로 여자도 판소리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었으며, 춘향가를 남창과 동창으로 구분하여 어린 광대가 수련할 수 있는 대본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시문집이 전해진다. 고창읍 성두리에 묘가 있으며, 1890년 한산시회에서 송덕비를 건립하였다. 판소리 사설 외에도 30여편의 단가 혹은 허두가(虛頭歌)라고 하는 노래를 기었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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