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고동고분군은 창녕에서 밀양으로 가는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는 5~6세기 경 비화가야 왕들의 무덤이다. 창녕중심부에서 화왕산 북쪽방면으로 나가는 고갯길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도가 고분군 중심을 지나고 있다. 편의산 국도를 기준을 서쪽을 A군, 동쪽을 B군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특별한 차이는 없어 보인다. 가야 고분을 특징을 들라면 다른 지역과는 달리 산능선을 따라서 고분이 분포되고 있는데 이는 신라나 백제, 마한의 고분에서는 볼 수 없는 가야 고분만의 특징이다. 그래서 가야 고분이 있는 곳에 올라서면 주변이 거의 확 틔여있어서 아주 기분이 상쾌하고 마음이 넓어지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이 곳 창녕 교동고분군의 특징을 들라면, 높은 곳이 있는 고분은 봉분주위에 호석을 쌓아 놓은 것이 많고 아래쪽은 거의 없는 편이다. 이 곳 교동 고분군의 또다른 특징으로 금동관 등이 출토되고 있는데 이것은 신라적 색채를 나타내고 있으며, 고리자루큰칼이 출토되는 점은 신라를 통한 고구려와의 교류를 짐작케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고분들에서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는데 이 곳 창녕에서도 아주 많은 양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고 하며, 그 양은 이 곳에 박물관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많았다고 할 수 있다.
창녕 교동고분군(A군), 약 70여기의 가야시대 고분이 모여 있다. 가야 고분의 특징으로 능선을 따라서 고분을 조성하고 있다.
A군 고분군 입구.
다양한 크기의 고분들
중간에 국도로 나뉘어져 있지만, 능선을 따라서 고분이 이어져 있다.
발굴이 완료된 고분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발굴작업이 진행중인 곳도 있다.
고분에 올라서면 볼 수 있는 시원한 광경. 화왕산 아래에 위치한 이 고분군에서 낙동강까지는 산이 거의 없는 평지이다.
위쪽에 위치한 B군 고군에서 내려다 본 모습
C군을 분류되기도 하는 송현동 고분군에서 내려다 본 교동 고분군
이곳에서 출토된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제례용 의기인 청동자루솥과 청동합
비화가야와 신라와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청동으로 만든 뿔잔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것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 말안장과 말갖춤 장식
창녕읍 북쪽 교동의 창녕박물관 일대에 무리지어 있는 가야시대의 고분군이다. 창녕에서 밀양으로 가는 24번 국도에 의해 동서의 2군으로 나누어져 있다. 서쪽의 70여 기를 A군으로, 동쪽 80여기를 B군으로, B군의 남쪽 송현동 고분군을 C군을으로 나누기도 한다. 일제시대에 송현동 고분군의 일부와 함께 10여기정도가 발굴되었는데, 출토유물이 마차 20대와 화차 2량에 싣고도 남을 정도였다고 한다. 1992년 2얼부터 6월까지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B군의 1~5호분을 발굴조사 했다. 도굴의 피해가 심해 만족스런 성과는 아니었으나, 교동고분군의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일제시대에 밝혀진 약간의 내용과 아울러 확인된 고분군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첫째, 고분의 돌방은 세 벽을 쌓고 한 쪽 짧은 벼을 입구로 매장했던 앞트기식돌방 무덤이 대부분이다. 둘째, 봉토 언저리에 호석이 돌아가는 것이 많고, 호석 밖으로 나무기둥을 세워 봉토를 방사선식으로 구분하여 다졌다. 셋째, 5~6세기경에 축조된 무덤이 고분군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넷째, A군 최대의 7호분은 5세기 중엽 경으로 생각되는데, 출자형 금동관.은제띠고리.청동그릇 등이 출토되어 신라적 색채를 나타내고 있다. 가야세력이 신라에 편입되어 가는 모습을 짐작케 한다. 다섯째, A군 11호분에서는 금으로 글을 새긴 고리자루큰칼이 출토되었다. 신라를 통한 고구려와의 교류를 짐작케 하는 내용으로 해석되고 있다. 교동고분군은 비화가야 왕들을 묘역으러, 비화는 '빛들-빛이 좋은 들'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출처:창녕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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