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다호리 유적은 낙동강이 만든 습지와 그 주변에 만들어진 무덤, 생활공간 등으로 이루어진 복합유적이다. 1988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이 여덟 차례에 걸쳐 가야 초기의 널무덤 70여기와 삼국시대의 돌덧널무덤, 돌방무덤 등이 발굴조사 되었다. 창원 다호리는 낙동강 주변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주남저수지 동쪽편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 습지가 다호리 마을 입구까지 연결되어 있다.
창원 다호리는 낙동강 하류 습지인 주암저수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낙동강 이북 밀양지역, 큰 항구인 마산항, 금관가야 중심지였던 김해, 비화가야가 있었던 창녕지역과 육로와 낙동강 수로를 통해서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로 고대에는 중국.일본,한반도 내륙과 교역을 통해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호리 지역은 습지에 위치하고 있었기때문에 적으로부터 방어가 용이하고 배를 이용한 낙동강 수운을 쉽게 이용할 수 있었기때문에 무역거점으로 발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출토된 유물로 볼 때 상당한 수준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호리 유적지는 물과 흙이 섞여 있어서 유물이 잘 훼손되지 않는 주남저수지 부근 논바닥에서 발견되었기때문에 무덤의 구조는 물론 유적지 전체가 잘 보존되어 있었다고 한다. 다호리 고분은 도로변 논에서 발견된 다호리 1호무덤과 널무덤이 대표적이며, 평지와 구릉지역에 고분과 생활유적들이 고루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다호리 널무덤
널무덤은 통나무를 반으로 쪼개고 속을 파낸 통나무관과 판재를 조립하여 만든 관 두 종료가 확인되었다. 널무덤에서는 청동검, 철검, 쇠도끼, 중국거울, 동전 등과 붓, 부채, 칼집, 화살통 등 칠기류가 출토되었다. 일부 무덤에서는 청동검과 철검이 함께 출토되어 청동기에서 철기로 바뀌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붓은 2,000년 전 우리나라에서 문자사용을, 중국거울과 동전은 당시 중국과 교역하였음을 알려준다. 무덤 주인공은 교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권력을 지녔던 자로서 초기 가야 세력의 유력한 우두머리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초기 국가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출처:창원시청>
다호리 널무덤이 발견된 곳으로 다른 가야의 고분처럼 실제로 눈으로 보이는 것은 거의 없고 논이었다가 유적이 발굴된 지역임을 알려주는 안내표지판만 볼 수 있다.
이 곳이 다호리 널무덤이 발굴된 곳으로 널무덤은 통나무를 반으로 쪼개고 속을 파낸 통나무관과 판재를 조립하여 만든 관 두 종료가 확인되었다.
중국에서 수입된 청동솥
김해박물관에 전시중인 널무덤. 이 지역이 습지였기 때문에 2,000년이 지난 통나무로 만든 관이 잘 보존되고 있다.
다호리 1호 무덤
창원 다호리 1호 무덤은 통나무를 반으로 쪼개고 속을 파낸 통나무널로, 다호리 유적을 대표하는 무덤이다. 널 아래에는 구덩이를 파고 청동검, 철검, 쇠도끼, 중국거울, 붓, 부채 등이 담겨진 대나무 바구니를 묻었는데, 이 유적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무덤 형태이다. 통나무널은 길이 240cm의 굵은 참나무를 사용하였다. 무덤은 무덤 바닥과 통나무널의 내부.외부에 쇠도끼, 밤, 율무 등의 유물을 넣고 흙을 채운 후, 나무뚜겅을 덮고 봉분을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창원시청>
다호리 널무덤이 발견된 지역에 서쪽편 구릉 아래에서 다호리 유적지를 대표하는 다호리 1호 무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주변 구릉과 평지에 고분을 비롯하여 다양한 생활유적지들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다호리 유적지 표시판이 있는 도로 반대편 주남저수지 방향으로도 농사지를 짓고 있지 않고 있는 땅이 있는데, 위성지도를 보면 원래는 연못이 있었던 곳인데 최근에 매립한 것으로 보인다.
다호리 유적의 개요
습지는 물과 흙이 뒤섞여 밀폐상태에 가깝기 때문에 유물이 잘 훼손되지 않는다. 주남저수지 근처 논바닥에서 발견된 다호리유적은 고대국가 형성기의 고분으로 구릉지와 습지에 조성된 덕분에 무덤의 구조는 물론 다양한 유기물에 이르기까지 유적 전체가 입체적으로 파악됨으로써 이 시대 문화상이 더욱 선명하고 실감있게 나타난다. 다호리 사람들은 무성한 갈대 등 초본식물류를 바구니로 만들어 쓰는 등 습지의 자연환경을 유용하게 활용했으며, 물길을 통해 주변 지역과 활발히 교류했다. 출토유물로는 청동검, 청동거울, 오수전, 철검, 손칼, 쇠도끼, 쇠갑옷 등 철기제품과 칼집, 활, 화살, 붓, 부채 등 칠기제품, 그리고 민무늬 토기, 와질 토기 등이 있다. 특히 거울, 오수전 같은 유물이 출토되어 다호리 유적이 기원전 1세기에서 서기 1세기 후반 사이의 유적임을 알려주고 있다. <출처:창원시청>
중앙박물관에 전시중인 다호리 유적지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인 한국형동검과 옷칠된 칼집 속에 들어 있던 한국형 동검이다. 옻칠된 칼집과 한국형 동검은 1호무덤 통나무널 아래 부장품이 들어 있던 대바구니에서 출토되었다고 한다.
중앙박물관에 전시중인 붓과 손칼이다. 다호리 유적지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유물로 1호무덤에서 출토되었다. 붓과 손칼은 글을 쓰고 지우는 문방용구로 중국, 일본 등과 교역을 할 때 영수증 작성을 위해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삼한시대부터 문자를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다호리 1호 무덤에서 출토된 이 청동고리는 각각의 무게가 5.25g, 10.25g, 11.55g, 22.73g이다. 무게의 배율이 1:2의 비율로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양팔저울의 추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다호리 1호 무덤에서 출토된 덩이쇠. 당시 철이 많이 생산되었던 변한지역에서 교역을 위한 화폐대용으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김해박물관에서 전시중인 다호리 유적지에서 발굴된 철제 무기류.
다호리 유적지에서 출토된 집모양의 상형토기로 주남저수지 부근 습지에서 당시 사람들이 거주했던 주택의 모습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창원 다호리와 충남 천안 청당동 무덤에서 출토된 원삼국시대 허리띠 고리. (중앙박물관)
경남 창원 다호리 무덤에서 출토된 1세기 변한시대의 토기. 삼한시기의 대표적인 와질토기로 밀폐된 굴가마에서 구워 회색을 띤다. 형태는 민무늬토기에서 변화된 것이 많으나 점차 굽다리가 붙는 등 다양한 형태로 변화한다. (중앙박물관)
다호리 무덤에서 출토된 말갖춤 (중앙박물관)
다호리의 습지. 최근에 비가 많아 와서 그런지 습지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낙동강 인근에서 시작된 주남저수지는 이런 형태로 다호리까지 이어져 있으며, 당시에는 배를 이용해서 낙동강을 쉽게 오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낙동강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창원 주남저수지. 북쪽편에 낙동강이 있으며 개간이 많이 진행된 지금까지도 상당히 넓은 면적을 유지하고 있다.
주남저수지 제방 바깥쪽의 넓은 농토. 원래는 습지였던 곳을 개간하여 농경지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창원 다호리 고분마을. 생활유적지가 있던 구릉 넘어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 주변에 다호리 유적지가 넓게 분포되어 있다.
이곳이 다호리 유적지임을 알려주는 작은 야외전시공간을 만들어 놓고 있다.
다호리 고분마을 산책로
창원 다호리 마을 유적지 분포도
의창 다호리고분군(사적 237호), 창원시 동읍 다호리
선사시대부터 가야시대까지의 수많은 고분군이 밀집되어 있는 유적이다. 1988년 3월 국립중앙박물관의 발굴조사를 통해 널과 함께, 칠기, 청동기, 철기의 생활용품과 무기류들이 출토되어 기원전 1세기 삼한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밝혀 주었다. 이 유적에서 목재를 비롯한 여러 유물들이 거의 원형대로 남아 있었던 것은 수분이 많은 지형적 특징때문이었다. 철새도리지로 유명한 주남저수지 같은 많은 습지는 이러한 지형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칠기는 낙랑과의 교류를 다시 증명해 주었으며, 청동기와 철기는 이 지역의 가야사를 되살리고, 기원전.후부터 이 지역에서 고대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출처:창원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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