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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읍 동북쪽 구릉에 위치한 교동 고분군 중에 위쪽에 위치한 B군 고분군이다. 이 고분군들의 특징은 아래쪽과는 달리 무덤 주위에 호석을 쌓아 놓은 것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제일 위쪽에 위치한 10여기의 무덤은 전부 호석으로 둘러싸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일부 발굴하여 많은 유물들이 보고서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도 이 곳 고분에서는 신라와 고구려와의 교류를 나타내는 많은 유물들이 발굴되어 이 지역의 시대적 특징과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무덤은 모두 앞트기식돌방무덤 형식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창녕 교동 고분군 중 B군은 도로 위쪽에 있는 고분들을 말한다. 같은 B군이지만 위쪽 고분과 아래쪽 고분은 약간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어 보였다.
도로변 입구 주위에 있는 고분들은 무덤 주위에 호석이 없고, 봉분의 크기가 큰 것이 많다.
반면에, 위쪽에 있는 고분들은 봉분이 큰 편은 아니며, 무덤 주위에 호석을 두르고 있다.
제일 위쪽에 위치하고 있는 3개의 고분
봉분에 호석을 두르고 있는 윗쪽 고분들
아래쪽에 있는 고분 중 크기가 제일 큰 고분
창녕 교동 구분군 중 아래쪽 고분들
아래쪽 고분 중에도 호석을 두르고 있는 고분이 있다.
A군 지역에서 본 B군 고분군. 능선을 따라서 고분이 이어져 있다.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고분에서 내려다 본 교동 고분군과 창녕읍
창녕읍 동쪽 목마산 부근 송현리 구릉에서 북쪽 교리에 걸쳐 있는 가야 무덤들로, 1918년 일본사람들이 일부 발굴하여 보고서도 없고 유물도 잃어버렸다. 1993년에 동아대학교박물관에서 목마산 기슭 무덤 5기를 발굴조사하였다. 내부시설은 모두 앞트기식돌방무덤(횡구식석실묘)이다. 1호와 4호에는 추가하여 주검을 매장한 흔적이 있고 1호와 3호 무덤에서는 딸려묻기(순장)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유물은 여러 토기류와 금·은제 장신구, 무기류, 마구류 및 철제 농기구 등이 출토되었다. 무덤의 형태와 출토유물로 보아 5세기 전반에서 후반까지 만들어진 창녕지역 지배자의 무덤으로 보여지며, 신라와 밀접한 관계를 보이고 있어 5세기경에 창녕지역이 신라 영역권에 포함되었음을 알려주는 유적이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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