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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유적_고분

창녕 송현동 고분군, 비화가야 무덤

younghwan 2010. 9. 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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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녕 송현동 고분군은 창녕읍에서 화왕산으로 올라가는 골짜기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고분으로 교동고분과 이어져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성격은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교동 고분과 함께 발굴되어 엄청난 양의 유물이 보고서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도 많은 유물이 남아서 창녕 비화가야 문화를 말해주는 여러 유물들이 박물관들에 전시되어 있다. 교동과 이 곳 송현동 구분군 사이에도 고분들로 연결되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논밭으로 변한 곳이 많기 때문에 두 지역이 분리된 것 처럼 보인다.

화왕산 입구에 위치한 창녕 송현동 고분. 가야고분의 특징처럼 상당히 전망이 좋은 곳에 고분이 위치하고 있다.

교통 고분군에서 본 송현동 고분군

화왕산 입구에 위치한 창녕 송현동 고분군은 이 지역 고분 중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창녕 읍내가 내려다 보인다.

이 곳 고분은 호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섞여있다.

특이하게 마치 쌍분처럼 보이는 고분도 있다.

창녕 송현리 고분들

창녕 송현리 고분과 교동 고분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중간에 있던 고분은 농경지로 변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농경지로 변했던 고분터.


창녕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진한의 12개 나라 중 하나인 불사국으로, 비사벌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송현동 무덤들은 크게 2개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1지역은 목마산 기슭에서 서쪽으로 80여기의 무덤이 있던 큰 무덤들이었으나, 지금은 16기 정도만이 남아 있다. 2지역은 송현동석불이 있는 부근에 20여 기 정도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대부분이 논으로 변하여 원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무덤은 겨우 몇 기 정도이다. 근처의 교동무덤들과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무덤의 구조와 유물의 성격이 거의 같다고 여겨진다. 교동무덤과 함께 89·91호 무덤이 1918년에 발굴되어 많은 양의 유물들이 발견되었는데, 유물 중 일부는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것도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무덤이 도굴되었고 주변이 논으로 변하였기 때문에 이 무덤의 성격을 확실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교동무덤과 같은 성격의 무덤이라고 한다면 5세기 전반에서 후반에 걸쳐 만들어진 무덤들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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