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 왕궁은 월성내에 있었던데 비해 월성 동쪽편에 아름다운 안압지 연못과 같이 있는 궁궐이었습니다. 지금은 안압지의 아름다운 조경과 복원된 3동의 건물만 있고 나머지는 발굴된 주춧돌만 건물터에 남아 있습니다. 임해전지는 왕궁의 별궁이면서 왕자가 거처했던 동궁으로 사용했었다고 전해지는데 아마 월성내 궁궐은 생활하는 공간이었고 이 곳 임해전지는 손님 접대나 행사를 치루는 곳이었지 않았을까 생각되면 임해전지 정자에서는 경주에서 가장 빼어났던 건물인 황룡사 목탑을 감상하기 좋았을 것 같습니다.
1. 안압지 서쪽편 복원건물
2. 임해전지 궁궐터
3. 안압지라고 불린 임해전지 연못
4. 안압지로 흘러 들어오는 물
5. 임해전지와 대비되는 부여 궁남지
임해전지(臨海殿址)는 사적 제18호다. 안압지(雁鴨池)로 많이 알려져 있다. 임해전지는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룬 직후인 문무왕(文武王) 14년(674년)에 황룡사 서남쪽 372미터 지점에 조성되었다. 큰 연못 가운데 3개의 섬을 배치하고 북쪽과 동쪽으로는 무산(巫山)을 나타내는 12개 봉우리로 구성된 산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동양의 신선 사상을 상징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섬과 봉우리에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동물을 길렀다는 가장 대표적인 신라의 원지(苑池)이다. 왕궁에 딸린 연못으로 서쪽에 별궁인 임해전이 있으며, 동쪽과 북쪽은 굴곡이 심한 곡면을 이루고 있고, 연못 안에는 3개의 성(섬)이 있다. 별궁인 임해전과 여러 부속건물은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 못을 바라보면서 연회를 베풀기도 하였던 곳이다. 1975년 이후 실시한 발굴조사 결과, 연못 바닥에서 신라 왕족과 귀족들이 사용했던 일상생활 유물과 불교 미술품들을 발견함으로써 통일신라 시대의 문화를 상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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