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불교건축(불전_요사)

가야산 해인사 장경판전,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전각

younghwan 2010. 3. 6. 22:34
반응형

 해인사 장경판전은 사찰경내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전각으로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다. 해인사를 살펴보면 중심불전을 제외하고는 별로 내세울만한 전각이나 석탑 등의 문화재는 별로 없는 편이고, 요사채와 부속암자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 해인사를 법보사찰이라 불리며 우리나라 3대 사찰에 포함되게 하는 근본적인 요인이 팔만대장경을 비롯하여 많은 불경판을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장경판전은 해인사에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경내 많은 건물들이 화재로 소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곳 장경판전은 오늘날까지 전란이나 화재의 피해를 입지 않고 팔만대장경을 지켜왔다. 이 장경판전은 15칸 건물 두동을 나란히 배치하고 있는데, 장식이나 모양새 등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대장경을 온전히 보전하고자하는 기능적인 면만 강조되고 있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을 오르는 계단길

장경판전 출입문과 편액.


장경판전은 통풍이 잘 되도록 많은 창문을 두고 있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 내부

서쪽편 언덕에서 본 장경판전

장경판전 서쪽편 출입문


해인사 장경판전

가야산 중턱에 자리잡은 해인사는 통일신라 애장왕 3년(802)에 지은 사찰로, 왕후의 병을 부처의 힘으로 치료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이며, 8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법보사찰이라고도 부른다. 장경판전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8만여장의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로, 해인사에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 되었다. 처음 지은 연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조선 세조 3년(1457)에 크게 다시 지었고 성종 19년(1488)에 학조대사가 왕실의 후원으로 다시 지어 ‘보안당’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산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 임진왜란에도 피해를 입지 않아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광해군 14년(1622)과 인조 2년(1624)에 수리가 있었다. 앞면 15칸·옆면 2칸 크기의 두 건물을 나란히 배치하였는데, 남쪽 건물은 ‘수다라장’이라 하고 북쪽의 건물은 ‘법보전’이라 한다. 서쪽과 동쪽에는 앞면 2칸·옆면 1칸 규모의 작은 서고가 있어서, 전체적으로는 긴 네모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장경판을 보관하는 건물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장식 요소는 두지 않았으며, 통풍을 위하여 창의 크기를 남쪽과 북쪽을 서로 다르게 하고 각 칸마다 창을 내었다. 또한 안쪽 흙바닥 속에 숯과 횟가루,소금을 모래와 함께 차례로 넣음으로써 습도를 조절하도록 하였다. 자연의 조건을 이용하여 설계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점 등으로 인해 대장경판을 지금까지 잘 보존할 수 있었다고 평가 받고 있다. 해인사장경판전은 15세기 건축물로서 세계 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이며, 대장경판과 고려각판을 포함하여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출처:문화재청>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