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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_향교_사당

양평 벽계강당, 이항로 선생이 후학을 양성하던 서당(?)

younghwan 2010. 9. 19.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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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평 서종면 벽계구곡 깊은 골짜기의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구한말 유학자인 이항로 선생이 생가 옆에 있는 벽계강당이다. 이항로 선생은 과거에 합격했으며, 많은 추천이 있었으나 사양하고 일생의 대부분을 이 곳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구하말 위정척사론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던 분이다. 이항로 선생의 생가 건물 구조를 보면 후학을 양성할 목적으로 많은 사람이 기거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었으며, 대부분의 후학 양성은 생가에서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그에게 배움을 청하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저택 바로 옆에 큰 강당을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한말은 서원을 중심으로 한 당쟁의 폐해가 많았던 것을 느껴서인지 서원을 건립하지는 않고 강당건물만 크게 지어 놓고 있다. 실제로는 서원의 규모이지만, 배향공간이 없는 관계로 서당(?)으로 분류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되며, 구한말의 유학교육의 발전된 모습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앞면 5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벽계강당. 당시는 서원철폐령과 폐해에 따라서 교육기능이 많이 저하되었는데 새로운 교육기관의 모습을 제시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벽계강당은 강학공간이 강당과 출입문 옆에 있는 작은 행랑채만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아마도 이 곳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은 이항로 선생의 사랑방에서 묵었던 것으로 보인다.


벽계 강당의 출입문. 솟을 대문과 양쪽에 1칸씩의 행랑채가 있다.


이항로 선생 생가. 사랑채에 방이 많은 것으로 보아 후학양성을 염두에 두고 건물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이항로(李恒老, 1792년~1868년)는 조선의 유학자이자 문신이다. 자는 이술(而述), 호는 화서(華西), 본관은 벽진이며 경기도 포천 출신이다. 3세 때 《천자문》을 떼고, 6세 때 《십팔사략》을 배웠다고 한다. 1840년 헌종 때 경사(經史)에 밝은 선비로 천거되어 휘경원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고향 벽계에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1864년 고종 때 좌의정 조두순의 추천으로 장원서 별제·전라도 도사를 거쳐 공조참판에 이르렀다. 특히 성리학에 밝았으며, 저서로 《화동역사 합편강목》 60권과 《벽계아언》 12권, 《주자대전 잡의집보》 등이 있다. <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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