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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을 이루고 있는 성곽중 남동쪽 소문에 해당되는 광희문을 지나서 남산으로 연결된 성곽이다. 광희문에서 다시 시작된 성곽은 옥수동 방향 도로가 있는 부근에서 끊어 졌다가 장충체육관 뒷편에서 시작되어서 남산 동쪽 능선으로 연결되고 있다. 한양도성의 동쪽에 자리잡은 낙산 능선에 남아 있는 성곽과 함께 도심에서는 성곽이 꽤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성곽 안쪽에는 일반인들이 거주하는 주택이나 마을은 거의 없고 장충체육관, 신라호텔, 자유센터, 국립극장, 동국대학교 등 관변단체나 시설 등에 그 기원이 있는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성곽 바깥쪽에는 일반 서민주택들이 들어서 있는 전형적인 서울 성곽주변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성곽 중 그 상태가 양호하게 남아 있는 장충동 일대의 서울 성곽. 조선초기 태조때부터 쌓아 온 서울 성곽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서 쌓은 다양한 모습의 성곽을 볼 수 있다. 서울 성곽에 조선을 개국할 때 쌓은 이래로 계속 존재해 왔던 까닭에 수원화성처럼 다양한 방어시설을 두고 있지는 않고 흉벽만이 후대에 많이 보강되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 성곽을 쌓은 돌은 규격화된 모습을 하고 있지 않으며, 토성 바깥쪽에 자연석을 쌓아서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작은 자연석을 쌓아서 만든 부분이 조선초기에 쌓은 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고구려나 신라의 산성을 연상시키는 부분이다
크고 규격화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조선후기 숙종때 쌓은 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때 쌓은 남한산성 등에서 비슷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성곽 바깥쪽 길. 산책하기에 좋아 보인다.
성곽 안쪽으로 들어가는 작은 쪽문. 암문은 아니고 안쪽에 조그만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어 연결해 주는 통로로 보인다.
성곽 바깥쪽 주택가
도로에 의해 끊겼던 성곽이 다시 시작되는 곳. 장충체육관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다.
성곽 안쪽은 자연지형을 이용한 토성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조선후기에 조총의 사용을 고려하여 만든 것으로 보이는 여장.
성곽 위에서 내려다 본 성곽
이 성곽은 1396년(태조 5)에 쌓아서 만든 것으로, 조선시대의 수도인 한양을 에워싼 도성이다. 1422년(세종 4)에 흙으로 쌓은 부분을 모두 돌로 바꾸고 여장을 쌓아성벽을 더 높게 만드는 보수 공사를 하였다. 1704년(숙종 30)에는 취약한 부분을 튼튼하게 고쳤고, 영조 때에는 동쪽 성곽에 적을 쉽게 방어하고 감시할 수 있는 치성을 쌓았다. 성곽은 둘레 약 18km에 높이는 대략 12m 가량으로 한양을 둘러선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의 능선을 이었다. 불규칙한 지형때문에 약간씩 틀어졌지만 사방에 대문을 내고, 그 사이에 소문을 열었다. 4대문은 동쪽 흥인지문, 서쪽 돈의문, 남쪽 숭례문, 북쪽 숙청문(뒤에 숙정문으로 개칭)이고, 4소문은 동북 흥화문 (뒤에 혜화문으로 개칭), 동남 광희문, 서북 창의문, 서남 소덕문(뒤에 소의문으로 개칭)인데, 흥인지문 앞에만 옹성을 두었다. 태조, 세종, 숙종 때 쌓은 성벽은 그것을 만든 방법과 돌모양도 각각 달라 시대 변화에 따른 기술의 변화를 살필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근대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성벽과 성문은 훼손되고 겨우 일부만 남았었으나 해방 이후 현재까지 제 모습을 찾으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출처:서울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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