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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월송정은 관동팔경 중 제일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제1경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곳이다. 동해안 온천위락지인 백암온천에서 가까운 월송정은 그 유래가 삼국시대 화랑들이 유람했다는데서 출발하고 있으며, 그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찾아서 풍류를 즐긴 곳이다. 사람의 본성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으로 보이며, 동해바다의 끝없는 수평선과 백사장, 그리고 백사장을 집어 삼킬듯한 파도는 가슴에 쌓였던 스트레스를 없애주고 파도를 헤쳐서 앞으로 가야하겠다는 굳은 심지를 심어주는 것 같다. 월송정 누각에 오르면, 소나무숲 사이로 백사장이 있고, 넓은 동해가 가슴으로 들어오는 느낌을 주고 있다.
현재의 월송정 누각은 80년대초에 세워진 것으로 앞면 5칸의 규모가 큰 누각에 속한다. 월송정 누각 자체가 큰 역사적, 건축적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고, 월송정이 있는 위치가 관동팔경의 하나로 가장 동해안다운 모습을 모여주고 있는 곳이자,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자연적인 풍광을 자랑하고 있는 곳이다.
월송정은 백사장과 소나무숲이 십리에 걸져 이어져 있는 동해안 해안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작은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다.
월송정 들어가는 길의 소나무 숲
소나무 숲 가운데 작은 동산이 있고, 그 위에 누각을 세워놓고 있다.
월송정에서 내려다 본 해안과 동해바다. 소나무숲, 백사장, 파도, 수평선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그 중 보름달이 떠있는 모습이 아름다워서 월송정이라고 부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월송정 현판
월송정 누각 내부
해안가 쪽에서 본 월송정
울진 월송정
관동팔경의 제일경인 월송정은 고려시대 이래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즐겨 찾았던 유람지로서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정자이다. 중도에 퇴락한 것을 조선 연산군 때에 강원도 관찰사 박원종이 중건하였고, 일제 말기에 이 곳에 주둔한 일본군에 의해 철거되어 터만 남아 있었다. 그후 1969년에 재일교포로 구성된 금강회의 후원으로 2층 콘크리이트 건물이 세워졌으나 원래의 모습과 너무 달라 해체고, 1980년에 현재와 같이 다시 세웠다. 이 정사는 사선이라고 불린 신라시대 영광.술락.남석.안상 등 네화랑이 유람했다는 설화가 남아 있는 유서깊은 곳으로 만그루의 소나무가 십리가 넘는 흰 모래와 어울려 절경을 이루었다고 한다. 월송이라는 이름은 사선이 달밤에 송림에서 놀았던 데서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월국에서 솔씨를 가져다 심었기 때문이라는 향전도 있다. <출처:울진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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