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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원주 법천사 지광국사현모탑비, 용이 살아움직이는 듯한 탑비

younghwan 2010. 8. 13.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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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강변에 위치한 원주시 부론면에 위치한 법천사지에는 오래된 절터에 옛날의 영화를 보여주는 듯한 유물로 고려시대 고승인 지광국사현모탑비가 남아 있다. 탑비가 있으면 현모탑(부도탑)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이 곳에 없고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현재는 경복궁 경내에 있다고 한다. 탑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모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이 있는 형태를 하고 있는데, 전통적인 탑비의 양식에 이 탑비만으니 독특한 양식이 많이 남아 있어서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법천사지는 남한강 이북의 교통요진인 원주시 부론면의 교통요지에 자리잡고 있는데, 조선시대까지는 남한강을 오가는 내륙수운에 있어서 중요한 나룻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부론면에는 원주와 충주를 연결해 주는 남한강대교가 있고, 옛날에는 강을 건너는 중요한 나루터였을 것으로 보인다. 충북제천과 강원도 남부의 내류지역에서 서울로 향하는 중요한 길목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이 지역은 지금은 고속도로, 철도 등 현대적인 교통로에서 많이 떨어져 있어서 아주 외진 지역으로 느껴지는 곳이다. 하지만 이 곳에 법천사지, 청룡사지, 거돈사지 등 대형사찰터가 있는 것으로만 알 수 있듯이 남한강 내륙조운을 중심으로 경제력이 아주 풍부했던 지역으로 보인다.


원주 법천사에 세워진 지광국사현모탑비. 이 탑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몸돌과 머릿돌로 구성된 전통적인 탑비의 기본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 탑비를 국보로 지정되게 만든 것으로 보이는 거북받침돌이다. 거북의 얼굴은 용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상당히 위협적이고 권위가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거북 등껍질에 왕(王)자가 새겨진 독특한 문양을 새겨 놓고 있으며, 발을 만들지 않는 대신 화려한 장식을 새겨놓고 있다. 글이 새겨진 몸돌 옆면에는 화려한 용무늬를 조각해 놓고 있다.


거북받침돌


입을 벌리고 있으며 상당히 위압적인 표정을 하고 있는 용의 얼굴을 하고 있는 거북받침돌의 머리부분


탑비에는 고려 고종때 국사를 지낸 지광국사의 행적을 글로 적어 놓고 있다.


탑비 몸돌 뒷면


왕관 모양을 하고 있는 머릿돌


뒷쪽에서 본 법천사 지광국사현모탑비



법천사터에 세워져 있는 지광국사(984∼1070)의 탑비로, 국사가 고려 문종 24년(1070)에 이 절에서 입적하자 그 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사리탑인 현묘탑과 함께 이 비를 세워놓았다. 현묘탑은 현재 경복궁으로 옮겨졌고 탑비만이 옛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돌을 세우고 왕관 모양의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거북은 목을 곧게 세우고 입을 벌린 채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얼굴은 거북이라기보다 용의 얼굴에 가까운 형상으로, 턱 밑에는 길다란 수염이 달려 있고 눈을 부릅뜨고 있다. 독특한 무늬가 돋보이는 등껍질은 여러 개의 사각형으로 면을 나눈 후 그 안에 왕(王)자를 새겨 장식하였다. 비몸돌에서 눈에 띄는 것은 양 옆면에 새겨진 화려한 조각인데, 구름과 어우러진 두 마리의 용이 정교하고도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머릿돌은 네 귀가 바짝 들려진 채로 귀꽃을 달고 있는데, 그 중심에 3단으로 이루어진 연꽃무늬 조각을 얹어 놓아 꾸밈을 더하고 있다. 비문에는 지광국사가 불교에 입문해서 목숨을 다할 때까지의 행장과 공적을 추모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비문은 정유산(鄭惟産)이 짓고, 글씨는 안민후(安民厚)가 중국의 구양순체를 기본으로 삼아 부드러운 필체로 썼다. 고려 선종2년(1085)에 세워진 작품으로, 거북등의 조각수법과 머릿돌의 모양이 새로운 것이 특징이다. 비앞면 가장자리에 덩굴무늬를 새기고, 양 옆면에 정교한 조각을 한 치밀함이 돋보여 형태와 조각이 잘 어울리는 고려시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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