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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보협인석탑 (국보 209호),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보협인탑

younghwan 2010. 8. 30.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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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협인탑은 '보협인다라니경'을 안치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특이한 형태의 탑이다. 일반적인 석탑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전체적으로는 삼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에 불상과 석가모니와 관련된 내용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탑의 전면이 조각으로 가득찬 것은 중국 보협인탑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현재의 보협인탑은 원래 천안에 있던 고려시대 절터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동국대박물관으로 옮겨진 것이라고 하며, 5개의 돌만 남아 있는 것으로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보협인석탑은 중궁 오월국 마지막왕이 소탑 8만4천기와 '보협인다라니경'을 안치했다고 해서 유래한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동국대박물관에 있는 보현인석탑이 유일한 것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석탑처럼 기단과 탑신의 구별하기 힘들고, 현재의 모습도 원래의 모습이 아니라 남아 있던 것으로 모아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보협인석탑의 맨 윗돌에는 석가모니의 일대기가 새겨져 있다.


가운데 돌에는 석가모니의 전생에 관한 설화가 그림으로 새겨져 있다.


아랫돌에는 불상이 새겨져 있다.



보협인탑이란 『보협인다라니경』을 그 안에 안치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겉모습도 종래에 볼 수 없던 특이한 모습인데, 중국 오월(吳越)이라는 나라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오월국의 마지막 왕인 충의왕 전홍숙(錢弘淑)은 인도의 아소카왕이 부처의 진신사리를 8만 4천기의 탑에 나누어 봉안하였다는 고사를 본따 금, 동, 철 등의 재료로 소탑 8만 4천기를 만들고 그 속에 일일이 『보협인다라니경』을 안치하였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탑을 보협인탑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이 석조 보협인탑이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원래는 천안시 북면 대평리 탑골계곡의 절터에 무너져 있던 것을 이 곳으로 옮겨 세운 것이다. 절터에는 자연석으로 쌓은 축대와 주춧돌의 일부, 기와조각들이 남아 있어 고려시대의 절터로 추정되나, 이 곳에 대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복원된 탑의 현재 모습은 5개의 돌만 남아 있어 완전한 형태는 아니다.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형식과는 전혀 달라서 기단(基壇)과 탑신(塔身)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고 완전한 형태를 짐작하기도 어렵다. 뚜껑을 덮은 듯한 네모난 상자 모양의 돌 2개를 포개어 놓은 후, 그 위로 귀를 세운 머리장식을 얹어놓은 모습이다. 불상(佛像)이 새겨진 육면체 위에 4각형의 받침돌을 놓고, 다시 그 위에 육면체가 놓이는데 4면에 부처님의 전생설화가 새겨있다. 이 탑몸돌 윗면 중앙에는 『보협인다라니경』을 안치했던 것으로 보이는 둥근 사리구멍이 남아있다. 당나귀 귀처럼 솟은 맨 윗돌에는 그 안에 석가의 일대기가 상하로 나뉘어 새겨져 있다. 전면에 조각이 가득한 이 탑은 중국 보협인탑의 영향을 받은 듯 하고 외형도 거의 비슷하다.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보여지며,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보협인석탑으로서 매우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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