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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원주 법천사 지광국사현모탑, 고궁박물관 마당으로 옯겨진 부도

younghwan 2010. 9. 1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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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시대에 많이 만들어졌던 고승의 사리탑인 부도 중에서 그 제작 수법이 뛰어난 걸작으로 알려진 원주 법천사 지광국사현모탑이다. 이 부도는 고려시대 고승인 지광국사를 기리기 위해서 세워진 부도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빼돌려졌다가 총독부에 의해서 서울로 다시 반환된 것으로 제자리인 법천사지에 옮겨지지 못하고 경복궁 경내에 전시되어 있다가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시 일제가 빼돌린 많은 부도탑들이 경복궁에 전시되어 있다가 대부분은 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고 있지만 이 부도탑만이 아직도 경복궁에 남아 있다.

 법천사 지광국사현모탑은 고스의 사리를 모셔두는 부도이지만 그 모양새는 석탑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당시에 다른 부도처럼 많은 장식을 조각해 놓고 있다. 기본 형태는 석탑의 모양이지만 세부적인 조각수법은 당시 유행하던 수법을 따르고 있다. 현모탑과 함께 탑비도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고려시대 원주 법천사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는 유물이다.


법천사 지광국사현모탑은 고승의 사리를 모신 부도탑으로 석탑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양식에 있어서 많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이 부도는 정의하기가 애매모호한 면이 있지만,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로 이루어진 부도탑의 양식을 따른 것으로 보이며 그 형태가 사각형이며, 기단부가 7층으로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법천사 지광국사현모탑


부도의 상륜부는 여려가지 모양을 층층히 조각해 놓고 있는데, 그 원형이 석탑 등에 비해서 비교적 잘 남아 있다.



탑신의 지붕불에는 불상, 보살, 봉황 등을 조각해 놓고 있다. 일반적인 부도의 지붕돌에는 잘 볼 수 없는 양식으로 세심하게 조각되었음을 알 수 있다.


탑신부 몸돌에는 이 곳이 사리를 모신 곳임을 알려주는 문짝을 새겨 놓고 있다.


탑신 지붕돌과 몸돌


7단이나 되는 기단부 맨윗돌에는 장막을 장식해 놓고 있으며, 그 아랫단에는 여러가지 그림을 부조로 새겨놓고 있다.


기단부에 새겨진 부조상


부도의 아랫쪽 기단부. 네귀퉁이에마다 용의 발톱같은 조각상을 새겨 놓고 있으며, 그 끝에는 사자상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법천사 지광국사 현모탑 기단부


법천사 지광국사현모탑


이 부도가 원래 있었던 장소인 원주 법천사 절터. 국보로 지정된 탑비가 원래의 자리에 아직도 남아 있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곳이 탑이라면, 수행이 높았던 스님의 사리를 두는 곳이 부도이다. 구성은 석탑과 비슷해서, 기단(基壇) 위에 사리를 모시는 탑신(塔身)을 두고 그 위에 머리장식을 얹게 된다. 이 부도는 고려시대의 승려 지광국사 해린(984∼1070)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원래 법천사터에 있던 것인데 일제시대에 일본의 오사카로 몰래 빼돌려졌다가 반환되었으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다. 일반적으로 통일신라 이후의 부도가 8각을 기본형으로 만들어진 것에 비해, 이 부도는 전체적으로 4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는 새로운 양식을 보여준다. 바닥돌은 네 귀퉁이마다 용의 발톱같은 조각을 두어 땅에 밀착된 듯한 안정감이 느껴지며, 7단이나 되는 기단의 맨윗돌은 장막을 드리운 것처럼 돌을 깎아 엄숙함을 느끼게 한다. 탑신에는 앞뒤로 문짝을 본떠 새겼는데, 사리를 모시는 곳임을 표시하기 위함이다. 지붕돌은 네 모서리가 치켜올려져 있으며, 밑면에는 불상과 보살, 봉황 등을 조각해 놓았다. 머리장식 역시 여러 가지 모양을 층층이 쌓아올렸는데, 비교적 잘 남아있다. 법천사터에는 지광국사의 탑비가 그대로 남아있는데, 탑비를 세운 때가 고려 선종 2년(1085)이므로 묘탑의 조성시기는 국사의 입적 직후인 1070∼1085년에 세워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부도 전체에 여러가지 꾸밈을 두고, 4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등 자유로운 양식에 따라 만들어졌는데도, 장식이 정교하며 혼란스럽지 않다. 화려하게 꾸민 장식으로 인해 엄숙한 멋을 줄어들게 하고 있지만,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부도 가운데 다른 어떤 것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우수한 작품이다. 안타깝게도 기단의 네 귀퉁이마다 1마리씩 놓여 있던 사자상은 일찍이 도둑맞아 지금은 한마리도 남아있지 않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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