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 회암사 무학대사 홍융탑을 구성하고 있는 무학대사묘비로서 홍융탑 앞에 위치하고 있다. 비문에는 그가 원나라에 들어가 나옹선사의 제자가 된일, 한양천도에 역할을 한 일 등이 적혀 있다고 한다. 원래는 태종 10년에 변계량이 지은 비문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나, 순조되 파괴되었다고 다시 세워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비석은 고려시대에 만든 많은 탑비에 비해서 제작수법이 많이 떨어지고 단순한 4각받침돌 위에 비석을 세워놓고 있다. 그 옆에는 원래 탑비가 세워졌던 이수가 놓여 있다.
양주 회암사 동쪽편 언덕 무학대사 홍융탑 앞에 세워진 탑비인 무학대사비.
무학대사 탑비는 4각의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어 놓은 단순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는 조선후기에 훼손된 탑비를 새로 만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옆에는 옛날 무학대시비를 올려놓았던 이수와 받침돌이 있다.
받침돌과 지붕돌
몸돌에 새겨진 끌씨. 이 탑비를 세운지는 2백년이 되지 않았지만, 당시 기술수준이 낮아서 그런지 글을 읽기가 불편하고 선명하지 않다.
옛 무학대사비가 올려져 있던 받침돌과 이수
무학대사비
앞쪽으로는 넓은 양주벌판이 보인다.
회암사터에 세워져 있는 무학대사의 묘비로, 바로 뒷편에는 그의 묘탑(보물 제388호)이 함께 서 있다. 무학대사는 고려말·조선초의 이름난 승려로, 이름은 자초이고,무학은 그의 호이다. 18세에 출가하여 소지선사에게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으며, 혜명국사에게서 불교의 교리를 배운 후 묘향산에서 수도하였다. 조선 태조 원년(1392)에는 태조의 부름을 받고 그의 스승이 되어 도읍지를 물색하기도 하였다. 그 후 회암사에서 머물다가 금강산의 금장암이라는 암자에서 입적하였다. 비는 높직한 4각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간결한 모습이다. 지붕돌의 네 귀퉁이는 하늘을 떠 받들 듯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위를 향하고 있다. 비문에는 대사의 일생이 적혀 있는데 특히 원나라에 들어가 지공선사와 나옹선사를 만나 그들의 제자가 된 일, 한양천도에 큰 역할을 한 일, 회암사에 두 스승의 묘탑을 세운 일 등이 잘 나타나 있다. 태종 10년(1410)에 왕명을 받들어, 변계량이 비문을 짓고 공부의 글씨로 하여 비문을 새겨두었다 하나, 순조 21년1821)에 파괴되었고, 순조 28년(1828)에 다시 비를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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