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도심에 동쪽편에 위치한 선원사는 통일신라시대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지역민들은 이 사찰을 남원의 번영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믿고 있는 사찰이다. 지금은 도심에 위치한 조그만 사찰이지만, 남원 서쪽편의 만복사와 함께 그 규모가 상당히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원래의 사찰을 정유재란때 완전히 불타버리고, 오직 철불만 남았다고 한다. 현재의 사찰은 조선후기 영조때 남원부사가 지역의 신도계와 협의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복구하였다고 한다. 사찰은 철불을 모신 약사전과 중심불전인 대웅전, 민간신앙과 관련되 칠성각으로 이루어졌으며, 아주 작은 규모로 복원이 되어 있다. 만복사지와 함께 고려시대 사찰형태인 도심 가까운 곳에 위치한 평지사찰이다.
남원도심 동쪽편 입구에 위치한 선원사는 도선국사의 풍수지리사상에 따라 세운 사찰로 남원의 번영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정유재란때 불타 버린 것을 조선 영조때 복원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원래는 거대한 사찰이었으나 지금은 조그만 불전 몇개만 남아 있다.
선원사 출입문. 일반 사찰과는 달리 작은 쪽문을 두고 있다.
남원 선원사 마당에 있는 오층석탑. 그 내력이나 조형미에서 큰 특징이 없는 석탑이다.
남원 선원사 약사전. 이곳에 원래부터 선원사에 있었던 불상인 철불이 모셔져 있다.
선원사 중심불전인 대웅전 앞면 3탄 옆면 2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불전이다.
선원사는 남원시에 있는 절로 평지에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에 도선이 남쪽 산천을 둘러본 후 헌강왕 1년(875)에 이곳에 지었다.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만복사와 함께 불타버린 것을 영조 30년(1754)에 다시 짓고 철불을 약사전에 모셨다. 처음 지어졌을 당시에는 규모가 대단히 컸다고 한다. 선원사는 남원시의 번영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믿어왔으므로 시내에 거주한 지방인사들이 후원하고 보호해 왔다. 선원사 약사전은 약사불을 모시는 곳으로,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지붕의 가장 윗부분인 용마루와 처마의 선이 직선에 가까워서 무거운 느낌을 주는데, 이것은 평지에 있는 다른 절과 같은 성질을 유지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내부는 우물천장에 우물마루이며, 철제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민간신앙과 관련되 칠성각
선원사 마당
선원사는 도심에 자리잡고 있어 사찰 앞쪽으로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다.
선원사는 신라 헌강왕 원년(874)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 도선국사는 남원의 지세가 객산으로 힘이 센 교룡산을 누르고 주산으로 힘이 약산 백공산을 복돋아야 남원이 번창할 수 있는 곳이라 판단하고, 백공산의 모체는 천왕봉 밑 만행산 줄기이므로 만행산의 힘을 빌어 교룡산의 힘을 누르고자 백공산 날줄기 끝에 선원사를 창건하였다 한다. 절의 크기는 만복사에 버금가는 큰 사찰이었으나 정유재란 때 불타 버렸다. 그후 조선 영조 30년 (1754)에 김세평부사가 현재 양로당의 전신이 노계소 신도계와 협의하여 복구하였다. 선원사는 보물 422호인 철조여래좌상과 동종.약사전 등의 유형문화재 및 요천강가의 야외법회 때 쓰이던 높이 12m, 폭 7.5m에 달하는 괘불을 소장하고 있는데 특히 이 괘불은 전국적으로도 흔하지 않은 귀중한 괘불 중의 하나이다. <출처:선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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