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복사 절터에 있는 남아 있는 이 불상은 만복사를 처음 지을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위 위에 부처가 서 있는 입상 형태의 불사으로 뒷편에는 광배를 두고 있다. 온화하고 인자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부드러운 옷자락을 묘사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부자연스러운 면이 보인다. 이 불상은 입체감있게 조각한 것이 아니라 마애불상과 조각상의 중간적인 형태를 하고 있으며, 전면부만 묘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뒷면에도 그림 형태로 간략하게 불상을 새겨 놓고 있다.
만복사는 고려시대에 창건한 평지사찰로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으며, 정유재란 때 왜군에 의해 불타 버린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아 있는 유물로는 석탑, 당간지주, 석좌 등 석재로 만든 유물들이 일부 남아 있다. 조선전기 김시습이 쓴 소설 금오신화 중 만복사 저포기에 등장할 정도로 상당히 유명한 사찰이었던 것 같다.
만복사지 석불입상은 고려초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통일신라의 조각기술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마애불상 중에서는 세밀하게 잘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어색한 면이 남아 있다.
인자한 모습을 하고 있는 얼굴. 민머리의 정수리에 상투가 둥글게 있다. 뒷쪽에 광배를 두고 있는데 세심하게 조각되어 있다.
주름진 옷자락을 잘 부드럽게 잘 표현할려고 애를 쓴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적인 면에서 약간 어색하다고 한다.
석불입상의 받침돌
받침돌에 새겨진 꽃무늬
만복사지 석불입상
뒷면에 간략하게 새겨진 불상
불상 얼굴. 아주 간략하게 묘사되어 있다.
옷주름은 도식적으로 그려놓고 있다.
석불입상에는 보호각을 세워 놓고 있다.
전라북도 남원시 만복사 절터에 서 있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높이 2m의 불상이다. 만복사는 고려 문종(재위 1046∼1083) 때 창건된 사찰이고, 이 석불입상도 창건 때 같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동국여지승람』 에 의하면 만복사에는 동쪽에 5층의 전각, 서쪽에 2층의 전각이 있고 그 안에 35척(尺)의 금동불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런 기록으로 보아 만복사가 매우 큰 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민머리의 정수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둥글게 솟아 있다. 살이 오른 타원형의 얼굴은 눈·코·입의 자연스러운 표현과 함께 원만한 인상을 보여준다. 어깨에서 팔로 내려오는 곡선, 몸의 굴곡 등도 아주 원만하고 부드럽게 표현되어 있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에는 둥근 칼라와 같은 독특한 옷깃의 접힘이 있으며, 그 아래에는 둥근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오른팔은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왼팔은 아래로 내려서 역시 손바닥을 보이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손은 따로 끼울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는데 지금은 모두 없어진 상태이다. 광배(光背)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로 이루어져 있으며 굵은 선으로 구분되고 있다. 윗부분이 없어진 머리광배에는 활짝 핀 연꽃잎과 연꽃줄기가 새겨져 있고, 몸광배에는 연꽃줄기만이 새겨져 있다. 이들의 바깥에는 불꽃무늬가 조각되어 있고, 좌우에는 각각 2구씩의 작은 부처가 들어 있다. 만복사지 석불입상은 얼굴이나 몸 등에서 매우 원만하고 부드러운 성격이 드러나 있지만 옷주름이나 몸의 자세는 다소 부자연스러운 면이 보인다.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로 접어들면서 쇠퇴해가는 불상 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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