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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해수욕장이 있는 충남 보령시에 위치한 삼국시대 백제의 절터인 성주사지에 남아 있는 오층석탑이다. 이 석탑은 2층의 기단부와 5층의 탑신, 그리고 상륜부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오층석탑이다. 이 석탑이 만들어진 시기는 통일신라시대 말기로 통일신라의 석탑을 만드는 기술의 전성기가 지나고 전국적으로 대량으로 석탑이 만들어지던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성주사지오층석탑은 전체적으로 도식화되고 정형화된 석탑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예술성이 뛰어나다고 보기는 힘든 석탑이다. 당시에 만들어진 석탑에는 사천왕상이나 팔부중상 등을 몸돌에 새겨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 석탑에는 장식을 새겨 놓고 있지는 않다.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석탑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보령 성주사지 절터의 중심이 되는 주불전인 금당터 앞에 있는 오층석탑으로 이 사찰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겼던 석탑으로 보인다. 그 앞에는 날렵하게 만들어진 석등도 있다.
성주사지 오층석탑은 2층 기단부 위에 오층의 탑신을 올려놓고 있다. 전체적인의 기단과 몸돌, 지붕돌의 구성에 있어서 그 비율이 날렵한 느낌을 주도록 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석탑의 기단부는 아래층은 낮게, 위층은 높게 만들어 안정감이 있게 구성하고 있다. 기단부 몸돌에는 목탑의 형식을 본떠서 기둥 모양을 새겨 놓고 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탑신 위에 올려져 있던 상륜부 장신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탑신의 몸돌에도 기둥모양 장식을 하고 있으며, 지붕돌은 추녀가 위로 살짝 치켜올라 갔다. 몸돌에 조각상을 새겨놓고 있지는 않다.
옆쪽에서 본 성주사지오층석탑
석탑 뒷편 금당터에서 본 성주사지오층석탑
성주사지에는 4개의 석탑이 있는데 금당터 앞쪽에 오층석탑 1기와 뒷편의 강당터 앞에 3기의 석탑이 놓여져 있다. 석탑의 배치는 통상적인 사찰의 가람배치와는 약간 다르게 배치하고 있으며, 장식적인 의미가 강한 것으로 보인다.
성주사지오층석탑
성주사는『삼국사기』에 나오는 백제 법왕 때 창건한 오합사(烏合寺)가 이 절이었다고 하며, 통일신라 문성왕대에 당나라에서 돌아온 낭혜화상이 이 절의 주지가 되어 번창시키니 왕이 ‘성주사’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한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현재는 절터만 남아 있다. 이 절의 금당터로 보이는 곳의 앞에 서 있으며, 뒤로 3층 석탑 3기가 나란히 서 있는데, 서로 층수만 다를 뿐 만든 솜씨는 비슷하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각 면마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두었으며, 기단의 위로는 탑신을 괴기 위한 편평한 돌을 따로 끼워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각 면의 귀퉁이에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추녀밑은 수평을 이루다가 위로 살짝 치켜 올라갔다. 전체적으로는 통일신라시대 탑의 전형적인 모습이나, 1층 몸돌 아래에 괴임돌을 따로 끼워둔 것은 고려석탑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형식이며,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된다. 각 층의 구성이 짜임새가 있으며 우아한 모습이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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