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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광한루원 정원 연못과 오작교

younghwan 2010. 12. 3.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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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한루 정원은 광한루를 중심으로 조성한 인공정원으로 경복궁 경회루 정원에 비견되는 독특한 형태이다. 이 정원은 송강 정철이 관찰사로 재임시 조성한 것을 근간으로 해서 여러 차례 중수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정원의 사상적 배경은 신선사상, 풍수지리사상과 유교사상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이며, 신선의 세계와 우주관을 잘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송강 정철의 사상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궁궐을 제외하고는 관청에서 조성한 정원은 많지 않으며, 대부분은 개인이 조성한 작은 정원이 많은 편이다. 이 광한루원은 관청에서 조성한 인공정원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개인들의 조성한 정원에서 볼 수 있는 신선사상을 잘 구현한 정원으로 보인다.
 
 광한루원은 사각형의 연못에 삼신산인 3개의 섬과 홍예교인 오작교로 구성되 있다. 선조때 송강 정철은 광한루를 크게 고쳐 짓고, 은하수 연못 가운데에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의 삼신산을 상징하는 봉래·방장·영주섬을 만들었다고 한다. 봉래섬에는 백일홍, 방장섬에는 대나무를 심고, 영주섬에는 ‘영주각’이란 정자를 세웠다고 한다. 직선과 곡선이 잘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고 있다. 이런 형태의 정원은 삼국시대 백제의 궁남지와 경주의 임해전지(안압지)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으며, 지방에 있는 정원이지만 그 규모에 있어서 궁궐 정원 못지 않는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또한 정원에 심은 수목들에서 인공적인 모습보다는 자연스럽게 자라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남원 광한루원을 대표하는 누각인 광한루가 봉래섬과 방장섬을 연결하는 다리 사이로 보이고 있다. 광한루원 연못은 사각형 모양의 인공연못으로 지리산에서 흘러내린 물을 끌어 놓은 것이다.


광한루원 연못에는 지리산, 봉래산, 한라산을 섬안에 구현해 놓은 방장섬, 봉래섬, 영주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운데 있는 봉래섬에는 대나무를 심어 놓고 있으며, 정자는 두고 있지 않다.


동쪽편에는 영주각이라는 정자를 세워 놓은 한라산을 구현해 놓은 영주섬이 있다. 3개의 섬 중에서 원래부터 정자는 이 곳 영주섬에만 있었다고 한다.


서쪽편에는 지리산을 구현해 놓은 방장섬이 있다. 이 섬에는 원래 배롱나무가 심어져 있었다고 한다. 정자는 원래 없던 것을 60년대 광한루원을 관광지화 하면서 방장정이라는 정자를 세워 놓았다.


광한루 서쪽편에는 선조때 만들어진 오작교라는 다리가 있다. 길이 57m 로 4개의 홍예를 두고 있는데, 연못에 세워진 다리 중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다리라고 한다. 오작교를 밟으면 금실이 좋아 진다는 전설도 있고, 춘향전의 무대이기도 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다리이다.

선조15년(1582)에 남원부사 장의국은 광한루를 수리하면서 다리를 새로놓고 오작교라 부르게 됐다. 그 이후 광한루는 정유재란때 불타 1626년 복원됐지만 오작교는 처음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오작교는 길이 57m, 폭 2.4m, 4개의 홍예경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존하는 연지교중 국내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다. 또한, 오작교를 밟으면 부부 금실이 좋아진다는 전설이 있고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 어린곳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처녀가 아닌 사람이 다리를 건너면 다리가 무너진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처럼 광한루와 오작교는 전설과 사랑이 어우러져 있어, 춘향이가 단오날 그네를 뛰는 것을 광한루에 올라앉아 이도령이 보고 첫눈에 반해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것처럼 사랑하는 연인들의 다리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출처:남원광한루>


오작교 서쪽편으로는 삼신도와는 별개인 작은 섬이 있는데 이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그 내력은 찾아보지는 못했다. 넓은 연못 가운데 자연스럽게 가지를 뻗어나간 고목이 연못에 비치는 경관이 상당히 아름답다.


광한루 앞 연못가에 있는 자라돌. 조선시대 남원지방의 화재를 막기 위한 바램으로 갖다 놓은 돌이라고 한다.


광한루원 연못에 있는 삼신도는 광한루 앞에 있는 다리를 통해서 대다무가 심어진 봉래도를 거쳐서 들어가 볼 수 있다.


봉래섬에서 방장정이 있는 방장섬으로 건너가는 다리.


방잠섬에서 연못을 향해 가지를 뻗고 있는 나무. 광한루원 나무들은 인공적으로 가지치기를 하지 않아서 자연스러운 경관을 만들어 주고 있다.


이 연못은 사각형 형태로 직선적인 인공연못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경회루나 경주 임해전지 등 우리나라 대부분의 인공연못은 이런 사각형을 하고 있다. 이는 정원을 조성할 때 반영된 신선사상의 대표적인 형태라고 한다.


광한루원 앞쪽에는 60년대에 이 정원을 확장하면서 연못과 완월정이라는 정자를 세워 놓고 있다.


광한루원 연못 서쪽편 모습


광한루원 오작교


푸른 대다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봉래섬


자라돌


남원 광한루원

신선의 세계관과 천상의 우주관을 표현한 우리나라 제일의 누원이다. 원래 이곳은 조선 세종 원년(1419)에 황희가 광통루라는 누각을 짓고, 산수를 즐기던 곳이었다. 1444년 전라도 관찰사 정인지가 광통루를 거닐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취하여 이곳을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속의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 칭한 후 ‘광한루’라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1461년 부사 장의국은 광한루를 보수하고, 요천의 맑은 물을 끌어다가 하늘나라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을 만들었다. 호수에는 지상의 낙원을 상징하는 연꽃을 심고,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에 가로막혀 만나지 못하다가 칠월칠석날 단 한번 만난다는 사랑의 다리 ‘오작교’를 연못 위에 설치하였다. 이 돌다리는 4개의 무지개 모양의 구멍이 있어 양쪽의 물이 통하게 되어 있으며, 한국 정원의 가장 대표적인 다리이다. 1582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철은 광한루를 크게 고쳐 짓고, 은하수 연못 가운데에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의 삼신산을 상징하는 봉래·방장·영주섬을 만들어 봉래섬에는 백일홍, 방장섬에는 대나무를 심고, 영주섬에는 ‘영주각’이란 정자를 세웠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왜구들의 방화로 모두 불타버렸다. 현재의 광한루는 1639년 남원부사 신감이 복원하였다. 1794년에는 영주각이 복원되고 1964년에 방장섬에 방장정이 세워졌다. 이 광한루원은 소설 『춘향전』에서 이도령과 춘향이 인연을 맺은 장소로도 유명하여, 1920년대에 경내에 춘향사를 건립하고 김은호 화백이 그린 춘향의 영정을 모셔 놓았다. 해마다 음력 5월 5일 단오절에는 춘향제가 열린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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