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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보물799호), 원나라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고려말 석탑

younghwan 2011. 4. 2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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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곡사 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나서 주불전인 대광보전이 있는 경내로 들어서면 고려말에 세워진 오층석탑을 볼 수 있다. 이 석탑은 원나라 라마교의 영향을 받아서 세워진 탑으로 다보탑이라고도 부른다. 이 오층석탑은 높은 이중 기단 위에 오층의 탑신을 올려 놓고 있으며 탑의 끝부문에는 라마탑과 비슷한 장식을 세워놓고 있다. 경천사탑, 원각사탑과 함께 원나라 탑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마곡사오층석탑은 통일신라나 고려초에 만들어진 석탑에 비해서 각 구성요소들의 비례가 안정적이지 못하며, 조각수법 또한 수준이 많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2층으로 쌓은 기단부는 전체 탑을 받치고 있는데 안정감이 많이 떨어지며, 5층으로 쌓은 탑신의 몸돌에는 부서, 보살 등을 조각해 놓고 있다. 이 탑의 가장 특징적인 머리장식은 라마탑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중국 원나라 또는 청나라에서 세운 여러 불탑 등에서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마도 고려말 원나라와의 교류관계를 잘 보여주는 이 머리장식의 역사적 의미에 마곡사 오층석탑의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주 마곡사 경내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오층석탑. 석탑이 사찰경내 중앙에 위치하는 것은 주로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가람배치인데, 이 석탑의 원래 위치는 현재의 위치가 아니라고 한다.


2층 기단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려 놓고 있는 마곡사 오층석탑. 전체적으로 비례가 안정적이지 못하다.


석탑을 받치고 있는 2층의 기단부


오층으로 이루어진 탑신. 지붕돌은 잘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는 없고 많은 부분이 훼손되어 있다. 각 지붕돌 끝에는 구멍이 뚫려 있어 풍경을 걸어 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몸돌에는 부처상 등을 새겨 놓고 있는데 조각수법이 정교하거나 뛰어나지 못하다.


마곡사 오층석탑의 가장 큰 특징을 보이는 머리장식. 석탑위에 라마탑형식의 머리장식을 올려 놓고 있다. 머리장식 아래에 풍경을 걸어놓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곡사 오층석탑


마곡사 주불전인 대광보전에서 본 오층석탑



마곡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으며, 구한말에는 독립운동가 김구와도 인연이 깊었던 사찰이다. 김구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던 일본인 장교를 죽인 후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이 절에 숨어서 승려로 지냈는데, 지금도 대광보전 앞쪽에는 김구가 심었다는 향나무가 자라고 있다. 절마당에 우뚝 서 있는 이 탑은 탑 전체의 무게를 받쳐주는 기단(基壇)을 2단으로 쌓고, 그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올린 모습이다. 탑신의 몸돌에는 부처, 보살 등을 조각해 놓았고, 지붕돌은 네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 보이는데, 현재는 5층 지붕돌에만 1개의 풍경이 남아 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이 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으로, 중국 원나라의 라마탑과 그 모습이 비슷하다. 길쭉한 감이 있어 안정감은 적으나 당당한 풍채로 버티고 서있다. 만들어진 시기는 머리장식의 독특한 모습으로 보아 원나라의 영향을 받았던 고려 후기 즈음으로 여겨진다. 즉 고려 후기 당시 원나라와의 문화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라마교 계통의 문화도 고려에 들어오게 되는데 이 탑은 그 문화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탑 안의 보물들을 거의 도난당하였으나, 1972년 해체하여 수리하는 과정에서 동으로 만든 향로와 문고리가 발견되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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