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시 청라면 장산리에 자리잡고 있는 토정 이지함 선생을 모신 화암서원이다. 화암서원이 위치한 곳은 보령시 동쪽 높은 산에서 발원하여 서해안으로 흘러드는 하천을 막은 청천저수지 안쪽편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 서원은 1610년에 이지함의 문인 구계우가 주도하여 건립하였고, 숙종때 화암서원으로 사액되었다고 한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철된 것을 일제강점기에 복원되었다. 원래는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을 청천저수지를 만들면서 1959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토정 이지함(1517~1578년)은 주선 중기의 유학자로 토정비결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당대의 유명한 유학자인 서경덕 선행 문하에서 수양했으며, 포천현감.아산현감 등의 관직을 지냈면서 걸인.노약자.기민 등을 구제하였다고 한다. 유학에도 출중했지만, 의학.복서.천문.지리 등 다양한 학문에 능통했으며, 복서에 뛰어나서 운세를 보아달라는 사람이 많아서 토정비결을 지었다고 한다.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유학자로서 평가가 높았던 것으로 보이며, 아산 인산서원, 보령 화암서원에 제향되었으며, 사후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고 한다.
보령시 청라면 청천저수지 안쪽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화암서원.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기는 하지만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아보이며, 지금은 서원이라기 보다는 살림집처럼 운영되고 있는 것 같다.
화암서원 배향공간인 사당. 토정 이지함 선생을 비롯하여 명곡 이산보, 천휴당 이몽규, 퇴우당 이정암, 수암 구계우 등 5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화암서원 외삼문.
화암서원 외삼문 앞 게단에서 내려다 보이는 청천저수지
회암서원 담벼락. 청천저수지의 경지를 바라보기 좋은 위치에 서원이 자리잡고 있다.
화암서원은 뒷쪽에 사당을 두고 앞쪽에 동.서재와 강당이 있는 전학후묘의 건물배치를 하고 있다. 서원을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좁은 터에 자리잡고 있어서 그런지 강당은 건물 한쪽편에 위치하고 있다. 교육기능은 없어지고 배향기능만 남아 있는 전형적인 서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건물 앞쪽에는 유생들이 숙소인 동.서재 건물이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관리사 건물 또는 재실의 성격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서원을 관리하는 사람의 살림집 성격이다.
서재 건물 또한 살림집 또는 재실의 성격을 갖고 있다. 서재 뒷편으로 최근에 신축한 강당건물이 있다.
강당과 관리사 건물이 있는 서쪽편 마당
청천 저수지 전경
화암서원
화암서원은 1610년(광해2)에 충청관찰사 정엽과 이지함의 문인인 구계우가 주도하여 건립하였으며, 1686년(숙종12)에 화암서원으로 사액되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5) 철폐되었다가 1922년 다시 복설되었고, 청천저수지 축조로 1959년에 현 위치로 옮겨 세워졌다. 처음에는 토정 이지함과 명곡 이산보를 모셨고, 이어서 1723년에는 천휴당 이몽규, 고종조에는 퇴우당 이정암, 1971년에는 수암 구계우 등 5분의 위패를 모셨다. 1998년에는 이지함 선생의 영정을 봉안하였으며, 지역 유림들이 매년 춘추로 제향하고 있다. 서원의 구조는 2단으로 된 터의 앞에는 동재.서재.강당.관리사가 있고, 뒤에는 사당이 있는 전학후묘식이다. <출처:보령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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