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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유적_고분

김해 양동리 고분군(사적 454호), 5천여점의 유물이 출토된 삼한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에 이르는 고분군

younghwan 2011. 8. 9.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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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시 주촌면에 위치한 양동리 고분군은 가야 고분군 중에서도 가장 많은 5천여점의 유물의 발굴된 유적지이다. 기원전 2세기 삼한시대부터 원삼국, 삼국시대에 이르는 기원후 5세기까지의 무덤 500여기가 산재해 있는 곳으로 목관묘, 목곽묘, 석곽묘 등 다양한 형태의 무덤이 양동리 가곡부락 뒷산에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었고, 그 면적은 3만여평 정도이다. 현재 양동리 고분군은 유적 발굴이후 봉분들을 복원해 놓고 있지 않아서 유적지가 아니라 동네 뒷산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다.

 양동리 고분군에서는 한식청동거울과 폭이 넓은 투겁창 등 중국 및 일본계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고 있으며, 이 고분의 주인들은 지역의 유력집단으로 중국, 일본과의 해상교역으로 부를 축적한 집단으로 여겨진다. 또한 대형 목곽묘와 외래계유물, 수정제 구슬 등 화려하고 풍부한 껴묻거리는 양동리 고분군이 금관가야가 본격적으로 성립되기 이전 김해지역에서 활동한 주요 세력의 집단무덤이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각종 토기와 다양한 철제 무기, 갑옷과 마구, 철제농기구, 청동제 단검과 거울, 청동제 솥 등이 발굴되었으며, 특히 유리.수정.마노.호박 등으로 만든 각종 장신구가 출토되 이 지역 지배계층이 당시 해상교역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든 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게 해 준다.

김해 양동리 고분군, 김해시 주촌면 양동리
양동리 가곡부락 뒷산(해발 90m)에 위치한 이 고분군은 삼한~삼국 시대의 무덤 유적으로, 유적의 전체면적은 3만여 평 정도이다. 이 유적은 1969년에 이곳에서 우연히 출토된 유물로 인해 학계에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며, 정식 발굴 조사는 문화재 연구소(1984년)와 동의대학교 박물관(1990~1996년)에 의해 이루어졌다. 여러 차례의 조사결과, 이곳에서는 모두 550여기의 무덤이 확인되었고, 5천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곳의 무덤들은 좁은 범위 안에 매우 조밀하게 배치되어 있었는데, 오랜 기간동안 무덤이 만들어지면서 서로 겹쳐지는 것들도 많았다. 조사된 무덤의 종류는 나무널무덤, 나무곽무덤, 구덩식 들곽무덤, 독무덤, 유사 돌무지덧널무덤 등으로, 이들 무덤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 후 5세기까지 순차적으로 만들어졌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이 유적에서는 각종 토기와 다양한 철제 무기, 갑옷과 마구, 철제 농기구와 공구, 청동제 단검과 거울, 청동제 솥, 통형동기, 유리.수정.마노.호박 등으로 만든 각종 장신구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들 유물 중에는 중국이나 낙랑, 일본 등 외국과의 교류나 교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들도 많다. 이 고분군은 낙동강 하류의 여러 가야 고분 중에서도 특히 가야의 묘제나 유물의 변천상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따라서 가야 문물의 진수를 잘 보여줄 뿐 아니라, 가야사회의 성장과정이나 국가적 성격까지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출처:김해시청>


김해 양동리 고분군 입구. 이 고분군은 발굴이 완료되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일반이 출입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분군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지역의 고분과는 달리 거대한 봉분들이 남아 있지 않고, 평범한 야산처럼 보인다.


삼한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약 800여년의 기간동안 조성된 무덤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양동리 고분군. 문화재청 발굴사진을 보면 산중턱을 파헤쳐서 발굴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 지금은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양동리 고분군을 지나가는 길. 지금은 철망으로 외부인이 접근을 못하도록 하고 있다.


양동리 고분군이 있는 주촌면 양동리 마을. 김해 시가지와 고속도로가 가까워서 그런지 많은 공장들이 들어서 있다.


중앙박물관에서 전시중인 삼한시대(변한)2~3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수정을 여러 면으로 다듬은 구슬과 곱은옥을 꿰어 만든 목걸이이다. 유리, 수정, 마노, 호박 등으로 다양한 형태의 구슬을 만들었다. 당시 이 지역 지배층이 상당한 수준의 부를 축적했음을 알 수 있다.


경남 김해 양동리 무덤에 출토된 꾸미개. 유리와 수정, 마노, 호박 등을 이용하여 곱은 옥, 여러면으로 된 구슬, 대롱옥, 둥근옥 등 다양한 형태의 구슬을 만들었다.


김해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 중 하나인 양동리 고분에서 발굴괸 수정으로 만든 목걸이. 현재 거리에서 팔고 목걸이와 차이가 없는 유물을 2천년전에 사용했다고 한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도 당시 한반도 사람들이 구슬을 만히 만들고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김해박물관에 전시중인 양동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장신구들


대구 만촌동에서 발굴된 청동꺽창과 김해 양동리에서 발굴된 청동 투겁창은 일본과의 교류관계를 보여주는 유물이다. (중앙박물관)


양동리 무덤에서 출토된 5세기 가야의 철제 투겁창


미늘쇠(김해 예안리 무덤, 김해 양동리 무덤). 칼 모양의 몸통에 미늘같은 뾰족한 날이 서 있으며, 아래에는 투겁이 있어 자루를 끼울 수 있다. 긴 덩이쇠의 가장자리에 새모양 장식을 만든 것이 경남 함안과 합천 지역을 중심으로 발견되고 있다. 미늘쇠는 지배자의 신분을 나타내는 의식용 도구로 추정된다. (중앙박물관)



가야의 철제 무기류


양동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굽다리접시와 단지, 4~5세기 금관가야 유물이라고 한다. (중앙박물관)


 
쇠솥. 의기로 사용된 중국의 청동제솥과 비슷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김해박물관에 전시중인 양동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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