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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유적_고분

고성 내산리고분군(사적 120호), 남해안 당항포에 자리 잡은 해상세력 소가야 유적지

younghwan 2011. 8. 15.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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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군 동해면 내산리에 있는 사적 120호로 지정된 내산리고분군이다. 내산리 고분군이 있는 이 지역은 진주, 사천, 고성반도의 남해안 일대에 자리잡고 있는 소가야가 있었던 지역이다. 소가야는 고대 동아시아 주요 해상교통로였던 남해안 일대 요지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교역으로 발전하였으며, 가야가 멸망하기 직전인 6세기까지 존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해지역의 금관가야을 중심으로 한 가야연맹체의 일원이었으나 금관가야와는 해상무역의 주도권을 다투는 대립적인 관계를 형성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후기에는 해상무역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갖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삼한시대 이 지역을 대표하는 유적지로는 무역항이었던 사천 늑도 유적지가 있으며 고성읍에 소재한 송학동 고분군과 동해면에 소재한 내산리고분군이 소가야를 대표하는 유적지이다.

내산리 고분군이 소재하고 있는 동해면 내산리는 고성읍까지 이어지는 내해인 당항포 바다 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거제도와 부산으로 연결되는 진해만이 내려다 보이는 고대 해상무역에 있어서 요지라고 할 수 있는 위치이다. 이 곳에는 원래 100여기의 고분이 있었다고 하난 도굴 등으로 파괴되어 지금은 61기 가량의 봉토분이 밀집되어 있다. 지금은 교통이 불편한 외딴 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그런지 고분이 정비되어 있지 않아 잡초가 무성한 모습을 하고 잇다. 잔듸로 깨끗하게 덮어진 다른 고분과는 달리 오랜 세월동안 잡초가 무성한 옛 고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많지 않은 유적지 중 하나일 것이다. 


진해만이 내려다 보이는 낮은 언덕에 봉토분들이 모여 있는 고성 내산리 고분. 고성 송학동 고분군과 함께 소가야연맹체 중 작은 세력이었던 소가야를 대표하는 고분이다.


내산리고분군은 당항포가 있는 내해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자리잡고 있다. 소가야의 중심지인 고성 지역과 먼바다와 연결되는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이다. 이 언덕에 100여기의 고분이 밀집되어 있다. 구릉에 자리잡은 다른 지역의 고분과는 약간 다른 형태이지만 고분에서 보이는 경치가 뛰어나다.


이 고분군은 아직 정비가 완료되지 않아서 봉분에 잔듸가 심어져 있지 않다. 지금은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제거해 주는 작업을 해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주를 비롯한 전국의 고분들이 예전에는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정상부에 있는 약간 큰 고분.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제거했지만 약간은 엉성해 보이는 모습이다.


봉분의 크기와 모양이 일정하지는 않다. 다른 지역의 가야고분에 비해서 봉분의 크기는 대체로 작아 보인다.


내산리 고분군의 크고 작은 봉분들


고분군 높은 지역에서 내려다 본 들판. 약간 넓어 보이는 농지와 가까운 곳에 항구가 있어 입지조건이 뛰어난 것 같다.


고분 입구의 소나무


이 고분에서 풀을 뜯어먹으면서 자라는 염소들.


논 한가운데 있는 작은 고분


내산리고분군을 지나 고개를 넘아가면 당항포가 있는 내해를 볼 수 있다. 이 바다는 임진왜란 당시 승전지 중 하나인 당항포가 있는 바다이다. 호수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바다는 다리가 놓여진 좁은 입구를 제외하면 사방이 육지로 둘러싸여 있어서 태풍이나 폭풍우를 피해서 배를 정박하기에 좋다. 고대 해상무역에 종사했던 배들을 이 곳에 잠시 쉬었다가 일본으로 건너갔던 것으로 보인다.


중앙박물관에 전시중인 굽다리접시와 단지, 내산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5~6세기에 만들어진 유물이다.


구멍단지와 그릇받침,



고성 내산리고분군(사적 120호), 경남 고성군 동해면 내산리
고성군 동해면의 북쪽 끝에 위치하여 마산방면의 진해만에 근접해 있는 가야시대의 고분군이다. 현재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것은 28기 정도이지만, 61기 가량의 봉토분이 밀집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원래는 100여기의 고분이 있었다 하나, 많은 도굴과 파괴의 피해를 입었다. 1997년부터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가 연차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발굴조사를 통해 고분군의 내용이 알려지게 되었다. 대형 봉토분인 8호분과 34호분에서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확인되었다. 첫째, 고분의 봉토는 인공으로 다져 쌓아 올려져, 지역적 고분축조의 특색을 나타낸다. 둘째, 중의 주곽(8호분)과 돌방(34호분)을 중심으로 같은 봉토 내에 여러기의 돌덧널이 함께 만들어져 있어, 고성 송학동고분군과 함께 이 지역 가야고분의 특색을 보여준다. 셋째, 고리장식대부장경호와 굽다리접시 등의 토기, 큰칼과 철화살촉 등의 철기, 귀걸이와 팔찌 등의 금은장신구, 발걸이와 운주 등의 마구들이 출토되었다.  넷째, 34호분에서 출토된 은팔찌는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것과 비슷하며 굴식돌방무덤의 모양도 백제와 동일한 특색을 보여준다. 8호분과 34호분은 출토된 토기와 마구로 보아 6세기 전반에서 중엽 경에 만들어졌던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이곳에 있었던 가야세력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는 유적일 것이다. <출처:고성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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