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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남동고분군은 신라의 황금시대라 할 수 있는 내물왕에서 지증왕까지의 마립간시기에 조성된 신라 지배층의 무덤이 다수를 이르는 경주 대릉원을 중심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는 고분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고분들은 금관을 비롯하여 화려한 금.은을 비롯한 금속세공품, 화려한 토기와 서역에서 수입한 유리잔 등 오늘날 남아 있는 삼국시대 신라를 대표하는 유물들 상당수가 이곳에서 출토되었다. 이 지역고분들은 월성북쪽 계림 앞에 있는 내물왕릉을 비롯하여, 김씨로서 처음 왕위에 오른 미추왕릉, 화려한 유물들이 출토된 천마총과 황남대총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무덤들이 평야지대 들판에 분포하고 있다. 황오동의 쪽샘지구나 대릉원 입구처럼 왕릉 사이에 주택가가 형성된 곳도 있고, 고분 주변을 논밭으로 경작하던 곳도 있었다.
그 중 황남동주민센터가 남쪽 들판에는 다른곳과 떨어져 외로이 서 있는 4기의 고분을 볼 수 있다. 이 고분들은 계림 주변의 고분들과 동쪽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중간에 주택이 들어서서 분리된 것처럼 보인다. 이 지역 고분에 대해서는 발굴조사된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며, 이 고분에 대한 별도의 이름이나 설명이 전혀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내물왕릉 주변의 고분들과 마찬가지로 초기 김씨계열의 귀족층 고분으로 보인다. 고분의 크기는 황남대총보다는 작지만 상당히 큰 규모를 하고 있으며, 주변의 주택가도 원래는 고분이 있었던 것 같다.
경주 월성 계림 서쪽편에 외로이 떨어져 있는 4기의 고분. 봉분의 크기로 볼 때는 금관이 출토된 금관총이나 서봉총에 비해서 작지 않은 규모이다. 고분 주변에는 논.밭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지금은 특별한 관리를 하지 않아 누구나 마음대로 접근할 수 있어 보인다. 여러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고분에서 어린 아이들이 뛰어 노는 장면은 이 고분군이었던 것 같다.
4기의 고분 중에서 제일 앞쪽에 있는 고분으로 봉분의 높이가 상당히 높아서 전형적인 신라고분을 연상시킨다.
두번째로 위치한 고분.
제일 뒷편에 위치한 고분은 그 형태가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뒷편에는 경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남산이 병풍처럼 배경을 만들어 주고 있다.
4기의 고분 외에도 주택가 한 가운데에도 작은 고분들이 남아 있다.
넓은 잔듸밭에서 쉬어갈 수 있는 공원처럼 지금은 조성되어 있다.
4기의 고분들이 일렬로 나란히 조성되어 있다.
경주 대릉원 입구의 대형고분. 계림과 내물왕릉을 중심으로 원래는 이 곳에서부터 고분들이 연결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가운데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어 고분들이 단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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