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절터

안양 중초사지(안양사지) 절터, 명문이 새겨진 당간지주(보물4호)가 남아 있는 안양의 큰 절이 있었던 자리

younghwan 2012. 3. 28. 12:12
반응형


 안양시 석수동 안양예술공원(옛 안양유원지) 입구에 위치한 제약회사 유유제약 공장은 통일신라 흥덕왕 2년(827)에 세워진 중초사와 고려 태조 왕건이 900년에 세웠던 큰 사찰인 안양사가 있었던 큰 절터이다. 지금은 공장 한쪽편으로 모아놓은 보물4호로 지정된 중초사지 당간지주와 고려시대에 세운 삼층석탑, 공원주차장 뒷편에 남아 있는 마애석종만이 이곳이 옛절터임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이 곳에 소재한 유유제약 공장건물은 건축가 김중업의 설계로 1959년에 지어진 것으로 근대건축물로서의 가치가 높은 건물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 공장건물을 안양시에서는 김중업박물관으로 활용할려고 했으나, 발굴조사 결과 옛 안양사 건물을 이루고 있었던 기와편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이 발굴되어 김중업이 설계한 일부건물만 남겨두고 발굴을 위해 철거할 예정이라고 한다.

 중초사지(옛 안양사 절터)가 위치한 이 지역은 국도1호선, 경부선 철도가 지나가는 서울과 수원을 연결해주는 주요 교통로로 정조대왕이 수원 화성행차를 위해 건설한 돌다리인 만안교가 있고, 동쪽으로는 서울 한강이남의 주산이라고 할 수 있는 관악산과 삼성선에서 흘러내려오는 계곡인 삼막천이 있어서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았던 관광지겸 휴양지였던 곳이라고 한다. 교통요지에 세웠던 고려시대 주요 사찰의 입지조건을 잘 갖추고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안양예술공원 입구에 위치한 유유제약 공장 입구에 남아 있는 보물 4호로 지정된 당간지주와 삼층석탑. 당간지주는 원래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삼층석탑은 이곳에 공장을 세우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보물4호로 지정된 중초사지 당간지주. 통일신라시대인 흥덕왕 2년(827)에 세워진 것으로 화려하게 조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비례와 형태가 단정하면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당간에는 '중초사'라는 글자가 포함되 명문이 새겨져 있어서 그 연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당간지주라고 한다.


중초사지당간지주에 새겨진 명문. 서쪽 지주의 바깥쪽에 새겨진 명문은 모두 6행 123자로 해서체로 쓰여졌다. 이 글에 의하면 신라 흥덕왕 1년(826) 8월 6일에 돌을 골라서 827년 2월 30일에 건립이 끝났음을 알 수 있다. 당간지주에 문자를 새기는 것은 희귀한 예로, 만든 해를 뚜렷하게 알 수 있는 국내에서 유일한 당간지주이다.


중초사지 당간지주

중초사지 당간지주, 보물 4호,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당간지주는 부처와 보살의 공덕과 위신을 기리는 불교 용구인 당을 달기 위하 당간을 고정해 주는 두 개의 지주대를 말한다. 주로 절의 입구에 세워져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당간은 동이나 철로 만든 것이지만 예전에는 목재를 많이 사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중초사지의 당간지주는 높이 약 3.8m이며, 명문이 새겨져 있어서 만들어진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유일한 당간지주이다. 또한 중초사지 당간지주 아래 쪽에는 직사각형의 돌 받침이 있는데, 그 중앙에 지름 34cm의 구멍을 파서 당간을 받쳤다. 동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지주 사이의 간격은 60cm이며 당간을 고정시키는 간구가 위아래에 나란히 2쌍 있다. 당간지주의 윗쪽을 보면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둥글게 깎았으며 윗쪽으로 1단의 턱이 있다. <출처:안양시청>


중초사지 당간지주 뒷편에 위치한 중초사지 삼층석탑이다. 이 석탑은 높이 3.65m로 그리 크지 않은 편으로 1층의 기단부 위에 3층의 탑신이 올려져 있는데, 탑신의 2층.3층의 탑몸돌을 찾지 못하고 지붕돌만 올려져 있는 형태이다. 잘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는 없고 정형화된 고려중기의 석탑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 이곳에는 안양사라는 큰 절이 있었기때문에 안양사지 삼층석탑이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된다.


1층으로 이루어진 기단부


탑신은 1층 몸돌만 남아 있는데, 잘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정형화된 고려시대 석탑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안양 중초사지 삼층석탑
높이 3.65m의 고려시대 일반형 석탑이다. 본래 이 탑은 중초사지 당간지주에서 동북쪽으로 약 80m 되는 밭 가운데에서 도굴되어 훼손되었던 것인데, 그곳에 공장이 건설됨에 따라 1960년 현재의 자리에 옮겼다. 탑신부의 2.3층 탑몸돌과 상륜부는 찾지 못한 채 복원되었으며, 기단 면석 가운데 한 면이 없어 새로 보강하였다. 현 상태는 단층 기단 위에 1층 탑몸돌이 놓이고 그 위에 1층.2층.3층의 지붕돌이 겹쳐 쌓여 있다. 3층 지붕돌의 윗면 중앙에는 찰주를 세웠던 구멍이 남아 있다. 이 탑은 전체적으로 보아 탑신부에 비하여 기단부가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안정감과 균형감이 떨어진다. 석탑의 조형상 당간지주보다 후대인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안양시청>


안양 중초사지 당간지주 앞에 있는 옛 안양사 절터에서 사용했던 석재들


중초사지(안양사 절터)에는 1959년에 건설된 유유제약 공장은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산업화 초기의 공장 건축물로 1959년에 지어진 4개동의 건물을 포함하여 15동의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전면에 보이는 붉은 벽돌로 지은 공장본관 건물이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건물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발굴조사 결과 옛 안양사 건물들을 이루고 있는 건물들의 자재들이 공장부지에 매장되어 있다. 마당에는 최근에 발굴조사를 한 이후 흙으로 덮어놓고 있다.


절터 뒷편. 안양사는 안양시 지명의 유래가 되었던 큰 절로 그 부지는 상당히 넓었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당간지주 뒷편 공장 건물들


중초사지 절터 동쪽편 안양예술공원 주차장 뒷편에는 바위에 새겨진 마애석종이 남아 있다.


마애석종은 스님이 종을 치는 장면을 바위에 묘사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마애종이라고 한다.

석수동 마애종
이 마애종은 달아놓은 종을 스님이 치고 있는 장면을 거대한 바위에 묘사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마애종이다. 사각형의 결구 형식에 쇠사슬로 연결된 종은 음통을 갖춘 비교적 정교한 종뉴 아래에 약간 벌어진 형태의 종신이 연결되어 있다. 종신의 표면에는 상대와 붙어 있는 유곽, 종복에 있는 연화문 당좌, 뚜렷하지 못한 문양을 새긴 하대가 매우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공간의 균형감이 있어 보이며, 전체적으로도 안정감이 있는 종을 표현하였다. 이 마애종은 조각수법이나 종뉴.종신의 표현 등에서 신라말 또는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마애종의 유일한 예로서 귀중한 자료이다. <출처:안양시청>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