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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사찰

남한산성 장경사, 산성을 쌓고 지키던 승병들어 거처하던 사찰

younghwan 2012. 4. 25.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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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자호란에 대비하면서 조선은 한강이남에 위치한 천혜의 요새였던 남한산성을 크게 개축하면서, 전국의 많은 승병들을 동원하였다. 이 때 벽암각성선사가 조선8도의 도총섭이 되어 승려를 지위하여 남한산성을 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후에도 남한산성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부여 받았다. 남한산성내에는 이때 동원된 승려들을 위해 9개의 사찰이 지어졌다고 하며, 산성내 중심지에 위치한 개원사가 그 중심이 되는 사찰이었다고 한다. 병자호란 이후 남한산성에 세워진 9개의 사찰 중 현재는 본영에 해당한다고도 할 수 있는 개원사를 비롯하여 망월사, 장경사가 현재까지 남아 있는데, 이 사찰들은 대부분 남한산성 방어에 취약점을 가지고 있는 남쪽편 검단산 방향과 외성인 봉암성과 한봉성이 있는 망월봉 주변에 자리잡고 있다.


 그 중 장경사는 남한산성 동문인 좌익문에서 북쪽방향 망월봉 중간쯤 되는 곳에 있는 사찰로 제1암문을 통해서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던 곳이다. 장경사는 남한산성에 남아 있는 사찰 중에서는 옛모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사찰이기도 하다. 사찰은 주불전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앞쪽에 3동의 요사채건물, 뒷편의 삼성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가 승병들이 머물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기 위해 지은 사찰답게 불전보다는 요사채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건물들은 다른 사찰에 비해서 오래되었다고는 하는 그 내력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중수된 시기가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것 같다. 그 중 장경사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대웅전 왼쪽편 요사채가 나름 오래된 건물인 것 같다.



원래 남한산성 동쪽편 계곡을 통해 장경사로 출입하던 성문인 제1암문에서 바라본 장경사 전경. 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남한산성 성벽 뒷편으로 사찰이 자리잡고 있다.


남한산성 내부에서 산길을 따라 장경사로 들어가는 길. 망월봉 아래 계곡에 자리잡고 있지만, 포장된 도로를 이용해서 자동차로 들어갈 수 있다.


장경사 일주문.


장경사 들어가는 길


장경사 전경. 주불전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3동의 요사채 건물이 둘러싸고 있다.


장경사 주불전인 대웅전. 앞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크지는 않지만 화려하고 웅장하게 지어진 건물이다. 다포계공포를 하고 있으며, 건물 각 칸마다 4폭의 여닫이문을 달아놓았다.


대웅전 왼쪽편에는 남한산성을 지키던 승병들이 머물던 요사채 건물이 있다. 앞면 6칸에 대청마루는 없이 툇마루만 있는 숙소 역할을 하는 전형적이 요사채건물이다.


이 요사채건물은 별도의 이름없이 장경사라는 현판을 걸어놓고 있다. 건물의 형태에서 조선후기와 구한말 한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대웅전 맞은 편에 있는 앞면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무심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작은 요사채건물. 툇마루를 두고 있지 않은 전형적인 사찰 건물의 형태를 하고 있다.


대웅전 마당 오른편에 위치한 종무소와 함께 쓰는 요사채건물. 앞면 5칸에 규모가 큰 건물이다.


대웅전 뒷편에 위치한 토속신앙과 관련된 삼성각. 앞면3칸이지만 규모가 작은 불전이다.


대웅전 오른쪽에 위치한 최근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범종각


남한산성 장경사 사찰경내 전경


삼성각 앞에서 내려다 본 장경사 사찰경내 전경. 중앙에 최근에 세운 석탑이 있다.  멀리 남한산성 계곡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찰 입구의 약수터와 사찰한쪽에 있는 작은 동자승 인형과 불상


사찰 한쪽편에 설치해 놓은 티벳물교의 마니차. 티벳불교에서 오체투지와 함께 일상생활 속에서 불경을 넣은 경통을 돌리는 수행법이 오랜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는데, 한국불교에서는 이와 것으로 윤장대를 돌리는 전통이 있다.


성벽에서 본 남한산성 장경사 전경


장경사를 들어오는 성문인 제1암문과 주변의 성벽



남한산성 장경사,
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고쳐 쌓을 떄 승려 벽암각성을 팔도 도총섭으로 삼고 전국의 승려들을 번갈아 징집하여 성을 쌓게 하였다. 축성 후에도 승군을 주둔시켰는데 이들의 숙식을 위하여 인조 16년(1638)에 건립한 절이다. 1894년 갑오경장으로 승군제도가 없어질 때까지 전국에서 뽑힌 270여 명의 승려가 교대로 산성을 보수하거나 경계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산성내에는 이러한 목적을 위해 10여개의 절이 세워졌는데 장경사가 창건 당시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 사찰 내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진남루, 칠성각, 대방, 요사채 등이 있었는데, 그 중 대웅전이 가장 화려한 양식을 가지고 있었다. <광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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