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장사는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차령산맥 줄기에 있는 칠현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이다. 이 사찰은 선덕여왕때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는 고려초 혜소국사가 이 곳에서 수행하면서 크게 중건하였다고 한다. 칠장사는 여러차례 중수가 있었는데, 조선중기 광해군의 압박을 받았던 인목대비가 그의 아들인 영창대군과 아버지를 위한 원차로서 지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사찰의 규모는 경기지역에 있는 사찰로는 큰 편으로 불전으로 대웅전을 중심으로 관음보살을 모신 원통전, 죽은이를 위한 공간인 명부전이 있으며, 여러동의 요사채 건물을 두고 있다. 이 곳에 있는 중요 문화재로는 칠장사를 창건했다고도 볼 수 있는 보물 488호로 지정된 혜소국사비가 있고, 국보 296호인 오불회괘불탱, 보물1256호로 지정된 삼불뢰괘불탱, 봉업사 옛 절터에서 옮겨온 봉업사지 석불입상 등이 있다.
칠장사는 고려초 혜소국사가 이 곳에서 수련할 때 찾아왔던 7명의 악인을 교화하였다 하여 칠장사라고 하며, 뒷편에 있는 산을 칠현산이라고 부른다. 칠장사에는 칠현산에 대한 설화외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오는데, 궁예가 10세까지 활쏘기를 했다는 활터, 임꺽정이 갖바치스님 병해대사에게 바친 꺽정불이야기, 암행어사 박문수가 과거시험을 보기전에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 임진왜란때 가토기요마사가 혜소국사비를 칼로 베었다가 무서워서 도망갔다는 이야기 등 많은 설화가 전해오는 사찰이다.
안성 칠장사를 들어가는 출입문인 일주문.
칠장사 올라가는 길.
칠장사 전경. 칠장사는 깊은 산중에 자리잡고 있기는 하지만,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아서 가람을 조성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칠장사 출입문이 천왕문.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사찰출입문의 형태를 하고 있다.
칠장사 소조사천왕상. 칠장사 사천왕상은 흙으로 빚은 소조상이며 영조2년(1726)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천왕은 세상의 중심에 가장 높이 솟아 있다는 수미산 중턱에 살면서 사방과 4대주를 수호하는 신장으로, 손에는 각각 비파(동방지국천왕), 보검(남방증장천황), 용과 여의주(서방광목천왕), 창(북방다문천왕)을 들고 있다. <출처:안성시청>
사천왕상이 밟고 있는 악귀의 모습이 전통적인 모습이 아니라 조선시대 복장을 하고 있는 해악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칠장사 마당 앞 쪽 전망 졶은 곳에 세워진 누각.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앞쪽으로 판문을 달아 놓고 있다.
칠장사 범종루. 최근에 만들어진 범종이 있다.
칠장사 경내 입구의 샘물
칠장자 주불전인 대웅전이 있는 경내 모습. 대웅전을 중심으로 그 옆에 원통전이 배치되어 있고, 경내 마당에 명부전과 요사채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칠장사 주불전인 대웅전. 조선중기 지역세도가들에 의해 여러차례 불타버린 것을 영조대에 중건한 것으로 보인다. 앞면3칸, 옆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다포계 공포를 하고 있다.
대웅전 다포는 각 칸마다 2개의 공포를 설치하고 있다.
대웅전 옆에 자리하고 있는 관음보살을 모시는 불전인 원통전. 앞면3칸, 옆면 2칸의 작은 건물로 맞배지붕에 익공계 공보를 하고 있다.
칠장사 명부전 내에는 총21구의 목조지장삼존상과 시왕상이 있다. 1706년에 제작된 것으로 칠장사 명부전이 그 이전부터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명부전 처마 아래에는 칠장사와 관련된 설화들이 그려져 있다. 주요 장면으로는 혜소국사와 칠현(왼쪽), 궁예가 활쏘는 장면(가운데), 임꺽정(오른쪽)이 있다.
대웅전과 마주하고 있는 큰 건물의 요사채인 응향각
대웅전 왼쪽편 요사채인 열반당
대웅전 오른편에 있는 종무소
죽림리 삼층석탑, 죽산에 흩어져 있던 탑부재를 죽림리 강성원 목장에서 관리하여오다 강성원 선생의 기증으로 2005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 설치하였다. 이 탑은 전체 높이가 375m이고 상대갑석은 하나의 판석에 옥신괴임을 2단으로 둥글게 처리하였다. 1층 탑신은 2매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고 한 면에는 둥근 문고리를 조각하였으며 탑신마다 모서리기둥이 조각되어 있다. 옥개석은 모두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고 상륜부에는 방형 노반만이 남아 있다. 탑신부의 체감비율이나 옥개받침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고려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안성시청>
안성 죽산면 소재지에 위치한 봉업사지 옛 절터에서 옮겨온 보물 898호로 지정된 석조여래입상이다. 이 불상은 높이 1.57m로 불상과 광배가 같은 돌로 만들어졌다. 눈,코,입 등은 심하게 닳았으며, 옷주름은 여려겹으로 자연스럽게 잘 표현되어 있다. 고려초기에 만든 다른 석불입상에 비해서 전체적으로 신체비례가 적절한 편이다. 불상의 뒷면에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가 있다. 이 불상은 고려초기에 유행했던 이 지역의 불상양식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는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칠장사 거북바위
칠장사 뒷편 혜소국사비가 있는 언덕에서 내려다 본 칠장사 전경
고려초 고승 혜속국사사 수행했던 암자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혜소국사가 있는 비각
보물 488호로 지저어된 칠장사 혜소국사비이다. 현재의 비는 받침돌인 귀부와 몸돌, 머릿돌이 따로 떨어져 있는 상태로 있다. 그의 행적이 새겨진 몸돌은 흑대리석으로 만들었으며, 옆면에는 길게 두마리의 용을 새겨놓고 있다. 이 비는 고려 문종 14년(1060)에 혜소국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글은 김현이 짓고 글씨는 민상제가 썼다고 한다.
혜소국사비 뒷편에 이는 비전이라 불리는 건물인데, 승려가 수행하는 요사채 건물로 보인다.
산신각과 나한전
칠장사 부도군
안성 칠장사,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칠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며, 7세기 중엽 신라 선덕여왕대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고려 현종 5년(1014)에는 혜소국사가 왕명으로 중창하였고 칠장사와 칠현산이란 이름은 혜소국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7명의 악인을 교화하여 현인으로 만들었다는 설화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고려 우왕9년(1383)에는 왜구의 침입으로 충주 개천사에 있던 고려의 역조실록을 이곳으로 옮겼을 정도로 당시 교계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였다. 인조 원년(1623)에는 인목대비가 아들 영창대군과 아버지 김제남을 위한 원찰로 삼아 크게 중수하였다. 현종 15년(1674), 숙종 30년(1704), 영조 원년(1725), 고종 15년(1878) 등 수차례 중건을 하였으며 1970년대 이후 지속적인 보수를 통해 지금의 가람을 이루고 있다.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과 원통전을 비롯한 15동의 건물과 석탑, 동종 등이 있으며, 국보 296호인 칠장사 오불회괘불탱을 비롯하여 혜소국사비, 철제당간 등 많은 지정문화재가 있다. 또한 오랜 역사와 함께 칠장사에는 여러 구전이 내려오는데, 궁예가 10세까지 활쏘기를 하며 유년기를 보냈다는 활터가 남아 있으며, 의적 임꺽정이 갖바치스님 병해대사에게 바친 꺽정불 이야기, 암행어사 박문수가 과거시험을 보기 전에 나한전에서 기도를 드리고 잠이 들었는데 꿈에 나타난 나한님이 과거시험 구절을 가르쳐 주어 장원급제했다는 설화가 내려오고 있다. <출처:안성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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