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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촉사는 충남 논산시 은진면 관촉리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로 고려초를 대표하는 '은진미륵'으로 잘 알려진 국내에서 가장 큰 불상 중 하나인 석조미륵보살입상이 세워져 있는 곳이다. 이 사찰은 968년(광종19) 혜명이 창건하였으며, 미륵보살입상과 관련하여 여러 설화들이 전해내려오고 있다. 사찰은 낮은 야산이지만 넓은 평야지대 중심에 위치하여 사방이 내려다 보이는 반야산 중턱에 축대를 쌓아서 조성한 부지 위에 세워져 있다. 관촉사라는 이름은 미륵보살상의 이마에서 나오는 빛이 촛불과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사찰내 문화재로는 은진미륵 외에서 불상에 걸맞게 큰 규모를 자랑하는 보물 232호로 지정된 관촉사 석등과 오층석탑, 배례석, 석문, 사적비 등이 있다. 사찰의 내력에 비해서 불전들은 오래된 것은 없고 대부분 최근에 중건한 큰 불전들이 있다. 이 사찰의 창건 설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관촉사는 승려들이 수행을 위해 세워졌다기 보다는 일반인들이 이 곳에 세워진 거대한 불상인 미륵보살입상을 찾는 기도도량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사찰로 볼 수 있고, 깊은 산중이 아닌 사람이 많이 거주하는 평야지대에 위치한 까닭에 다른 사찰에 비해서 요사채의 규모는 작은 편이다. 사찰 뒷편에 위치한 삼성각 앞으로 올라가면 미륵보살입상의 눈높이와 비슷한 위치에서 백제의 마지막 전투가 있었던 황산벌 넓은 벌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관촉사는 고려를 건국한 호족세력드의 넘치는 힘을 상징하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을 중심으로 기도도량으로서의 의미가 강한 사찰이라 할 수 있다. 불상 주위에는 불전 건물을 세우지 않고 사방에서 불상을 볼 수 있도록 개방된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관촉사 출입문인 일주문과 사찰로 들어가는 길. 반야산 아래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관축사 출입문인 천왕문


관촉사는 고려시대에 세워진 다른 산중 사찰처럼 산중턱에 축대를 쌓어 사찰부지를 조성하여 사찰경내에서 보이는 넓은 들판의 경치가 좋은 곳이다. 사찰의 출입문은 원래 해탈문이라고 하여 석재로 쌓은 작은 돌문을 사용하고 있었으나, 최근에 다른 사찰처럼 축대를 올라오는 계단 끝에 강당건물을 세워놓고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관촉사 석문
사찰로 들어가는 계단 맨 위쪽에 세워진 석문으로 사찰에 들어가기 위한 문이라는 뜻의 해탈문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문 입구의 양쪽 돌기둥은 너비 48cm인 직사각형의 돌을 양쪽 기둥으로 세웠고, 윗면 천장에는 길게 다듬은 돌 5개를 가로로 걸쳐 얹어 4각형의 천정을 이루어 마치 터널의 모습과 비슷하다. 천장 석을 제외하고는 모두 석재를 다듬어 벽돌 쌓은 형식으로 쌓았으며, 입구의 양옆으로도 벽을 연결하여 경내를 보호하는 석벽의 모양을 내었다. 이 석문은 사찰의 중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다른 사찰에서는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문이다. 제작 축조 연대에 관한 기록은 없으나 고려시대에 조성한 사찰내의 석조미륵보살입상과는 관련이 없는 후대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출처:논산시청>



사찰을 올라가는 계단 끝에 세워 놓은 강당건물. 보통 일반적인 사찰의 강당건물은 누마루 형태로 사찰을 찾는 신도들이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하는데 비해, 관촉사 강당은 일반인들에게 개방해 놓고 있지는 않다. 관촉사는 축대를 쌓아서 사찰부지를 조성했기때문에 실제로 강당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마당 어디에서나 논산의 넓은 벌판을 감상할 수 있다.


관촉사 주불전인 대웅전. 석가모니를 모시는 대웅전이지만 미륵불을 모시는 대표적인 불전인 금산사 미륵전과 비슷한 형태로 삼국시대 장류전의 형태로 건물을 지었다. 최근에 지은 건물로 보인다.


관촉사의 중심인 석조미륵보살입상 앞에 세워진 미륵보살을 모시는 불전인 미륵전.


대웅전 뒷편에는 죽은이의 명복을 비는 장소로 지장보살을 모시는 불전인 명부전이 있다. 이 명부전은 현대에 들어서 가장 많이 세워지고 있는 불전이 아닌가 생각된다.


미륵전 뒷편에는 사찰의 중심이 되는 미륵보살입상을 중심으로 석등과 석탑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불상과 석등은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큰 규모이지만 오층석탑은 왜소하고 형식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고려시대 사람들이 생각하는 석탑에 대한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정형화돤 고려시대 석탑의 형식을 하고 있는 관촉사 오층석탑과 배례석. 석탑은 그리 크지도 않고 조각수법도 뛰어난 편이 아니어서 중요한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 않지만 배례석은 석탑에 비해서 상당히 큰 편이다. 석탑을 위한 배례석이라기 보다는 미륵보살입상을 위한 것이라는 느낌을 주고 있다.


2층으로 이루어진 석탑의 기단부. 아래단은 낮게 윗단은 높게 만들어 놓고 있으며, 몸돌에 기둥모양을 새겨놓고 있다.


원래는 오층으로 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상륜부와 함께 맨 윗층의 몸돌과 지붕돌이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조각수법도 투박하고 그 보존상태가 좋지 않은 편이다. 특별한 장식을 새겨 놓지는 않고 있다.


석탑에 비해서 크게 만들어진 배례석.

관촉사 배례석
부처님께 예를 올리던 곳에 놓은 직사각형의 받침돌로 바닥에서 2단의 직각 괴임을 새기고 그 사방의 면석에는 안상을 새겼다. 연꽃은 단판 8엽이며 중앙에는 커다란 둥근 자리가 있고, 그 안에는 가운데 1개와 그 주위에 8개의 자방이 연주문처럼 돌려져 있는데 음각으로 새겼다. 연꽃의 잎 끝이 뾰족하며 그 사이에 다시 중판의 연꽃잎을 뾰족하게 돋을 새김 하였다. 제작연대에 대한 이설이 많으나 제작기법으로 보아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과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어 진다. <출처:논산시청>


보물 232호로 지정된 관촉사 석등.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석등으로 미륵보살입상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로 만들어진 석등이다.

 관촉사 석등, 보물 232호, 논산시 관촉동
석등이란 어두운 중생의 마음을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로 비추어 불성을 밝혀 주는 등인데, 처음에는 실용적 성격이 강했으나 후대에 불전이나 탑 앞에 설치하는 장식적인 건조물로 변했다. 정사각형의 하대석 옆면에는 안상을 3개씩 새겼다. 기둥돌은 둥근 형태의 상.중.하 3개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화사석은 상하 2층으로 되어 있는데, 네 기둥이 빈약한 반면 화창이 매우 넓다. 1.2층 지붕 돌의 네 귀에 귀꽃이 큼직하게 서 있어 경쾌한 느낌을 준다. 전체적으로 원과 4각.8각이 혼합되어 구성되었으며, 안정감이 약간 부족하나 전체적으로 크고 장중한 감을 주고 있다. 또한 화사석의 기둥이 가늘어 불안한 느낌을 주지만 형태의 장대함과 수법의 웅장함이 고려시대 제일가는 걸작으로 평가된다. 사적비에 의하면 불상이 968년(고려 광종 19)에 조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조성연대를 알 수 있는 고려시대 석등의 대표작이다. <출처:논산시청>


보물 218호 지정된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고려를 건국한 호족세력 문화를 대표하는 불상으로 몸통에 비해 머리가 크고 투박하지만 힘이 넘친다.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보물 218호, 논산시 관촉동
높이가 18m에 이르는 국내 최대 석불로서, 보통 '은진미륵'이라 불리고 있다. 미륵불은 56억 7천만년이 지난 뒤에 그 때까지도 못다 구제된 중생들을 위해 나타난다는 미래불로 대개 산이나 들 등 바깥에 세워진 경우가 많다. 자연암반 이에 허리부분을 경계로 하여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이 보살상은 몸통에 비해 특별히 얼굴이 강조되어 전체적인 균형미는 약간 떨어지지만 불상 전체에서 느껴지는 강한 원초적인 힘은 고려시대 초기에 이 지방에서 많이 유행하는 불교예술의 특징을 잘 갖추고 있다. 얼굴과 손에 집중된 표현양식은 마치 토속적인 신상을 보는 듯 위압적이며, 자비로운 보살의 모습이라기보다는 강한 메시지와 신비감을 담고 있는 모습이다. 관촉사 사적비에 의하면 고려 광종 19년(968)에 공사를 시작하여 목종 9년(1006)에 완성하였으며, 혜명대사가 대형 석불을 만들어 세울 수 없어 걱정할 때 삭제촌에 나타난 동자들이 강가에서 흙장난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크게 깨달아 기뻐하며 돌아와 불상을 세웠다고 전하고 있다. 이와 같은 거석불의 대표적인 예로 인근에 있는 부여 임천의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을 들 수 있는데, 이 두 불상은 고려시대에 충남지역에서 크게 유행하던 불상의 양식으로 새로운 지방적 미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관촉사 불상의 건립은 이후 충남 각 지역에서 거불상의 조성에 큰 계기가 된 듯 하다. <출처:논산시청>


관촉사 사적비


관촉사 경내에서 제일 높은 곳에 세워진 삼성각.


삼성각에서 내려다 본 불전들이 있는 사찰 경내


삼성각에서 내려다 본 석등과 삼층석탑. 


관촉사 미륵보살입상의 눈높이와 비슷한 삼성각 앞에서 내려다 본 논산벌의 넓은 평야. 백제의 마지막 전투가 있었던 황산벌과 많는 전설과 민간신앙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계룡산이 멀리 보인다.


승려들이 수행하는 공간인 요사채. 관촉사는 일반인들이 거주하는 마을과 가까운 까닭에 사찰에서 묵어 가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요사채의 규모가 크지 않다.


마당 한쪽편에 세워져 있는 윤장대와 범종각

관촉사 윤장대
윤장대란 불교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돌릴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윤장대를 한번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이 있다고 한다. 윤장대를 세운 이유는 부처님 법이 사방에 널리 퍼지라는 의미와 우리나라에 지세를 고르게 해 난리가 없고 비바람이 순조로워 풍년이 들고 태평성대를 이루어 달라는 염원이 들어 있다. 이에 관촉사에서는 사찰을 찾아오는 많은 분들이 자신의 삶을 한 번 되돌아 보고, 희망하는 소원이 하루속히 성취되도록 하기 위하여 발원문을 작성한 후 윤장대 안에 넣고 돌리도록 성물을 조성하였다. <출처:논산시청>


* 자료출처: 1. 디지털 논산문화 대전
                2. 한국민속무화대백과
                3. 네이버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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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취암동 | 관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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