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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풍경

부여 백제문화단지, 백제 마지막 수도 사비성의 궁궐과 사찰, 마을을 재현해 놓은 테마파크

younghwan 2012. 5. 18.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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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문화단지는 삼국시대 백제의 수도였던 부소산성 북쪽 백마강 건너편 부여군 규암면에 들어선 테마파크이다. 약 100만평의 이르는 부지에 옛 사비성을 이루고 있었던 왕궁이 사비성, 능산리고분군의 절터에 있던 사찰을 재현한 능사, 사비성내에 있었던 귀족들의 저택, 일반서민들이 살았던 주택을 재현한 생활문화마을과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이 건설한 위례성 등을 재현해 놓고 있다. 이외에도 숙박시설인 롯데부여리조트, 교육장이자 전시실로 백제역사문화관과 한국전통문화학교 등이 들어서 있다.

 특히, 백제 사비궁과 능사를 비롯한 백제인들이 살았던 주택들은 옛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 건축양식이나 건물배치 등에서 부여 관북리유적지나 능산리사지 등의 건물터 발굴결과와 각종문헌, 백제의 영향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일본 사찰건축물의 양식을 참조하여 재현한 것으로 보인다. 학술적으로 심도있게 연구하여 복원한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어보지만, 나름 옛모습을 재현해 보았다는데 의의가 있는 것 같다. 삼국시대 백제인의 삶을 느껴보는데 있어서 기존의 부여에 남아 있는 유적지들과 부여박물관의 유물들과 함께 이 곳을 찾아서 원래 모습과의 차이점과 옛모습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백제문화단지
백제문화단지는 우리 민족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면서 고대 일본문화의 원류가 되었던 백제역사를 새롭게 조명하고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새로운 출발점입니다. 지난 1994년부터 20여년에 걸치 대역사에는 총 6,904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하여 330만 평방미터의 대지위에 사비궁과 능사, 생활문화마을과 위례성, 백제역사문화관과 한국 전통문화학교를 건립하고 민자사업으로 롯데부여리조트를 유치하였습니다. 명실상부하게 세계적인 역사테마파크로 거듭나고 있는 이곳에서 1,400년전 찬연했던 백제의 기상과 문화의 정수를 느끼시고 그 때의 정취에 흠뻑 젖어보시기 바랍니다. <출처:부여군청>


사비궁과 능사 등 백제의 주요 건축물들이 재현된 백제문화단지 출입문. 백제왕궁의 출입문으로 치미가 있는 2층 문루가 있는 출입문이다. 건축물의 분위기는 조선시대 궁궐건축물보다는 북경 자금성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출입문을 들어서면 넓은 잔듸밭과 백제의 궁궐이 사비궁이 재혀되어 있다. 사비궁은 중앙에 정전에 해당하는 천정전이 있고, 서쪽에 무관과 관련된 업무를 보던 서궁, 동쪽에 문관과 관련된 업무를 보던 동궁이 배치되어 있다.


사비궁 동쪽편에는 백제 마지막 왕들의 무덤이 있는 능산리고분 절터에 있던 능사를 복원해 놓고 있다. 능사는 백제 위덕왕이 선왕인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원찰로 부여에 있던 많은 사찰 중 하나이다.


능사 앞 작은 연못과 정자


백제 사비궁 정전에 해당하는 천정 출입문인 천정문이다. 앞면 5칸에 2층으로 된 건물이다. 후대의 궁궐건축물과는 달리 답도나 돌로 만든 동물상인 석수, 난간 등은 배치되어 있지 않다.


백제 사빙의 정전에 해당하는 천정전이다. 앞면 7칸의 2층 건물로 후대 궁궐건물과는 달리 사당처럼 판문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봉정사 극락전이나 일본 나라의 동대사 금당건물에서도 볼 수 있는 건축양식으로 이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정전 앞 마당에서는 백제문화를 소개하는 공연이 열리고 있다.


공연을 관람하는 관람객들


사비궁은 정전을 출입하는 중문과 양쪽 동.서궁을 출입하는 출입문이 있고, 사방이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다.


사비궁 서궁. 백제왕이 무관과 관련된 업무를 처리하는 공간으로 무덕전과 인덕전의 2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백제 귀족의 저택에서도 비슷한 건물배치를 볼 수 있다.


문관의 업무를 보던 공간인 동궁. 연영전, 문사전이라는 2동의 건물과 회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백제 마지막 왕들의 무덤이 있는 능산리고분군 절터에 있던 능사를 재현해 놓고 있다. 능사는 위덕왕이 아버지인 백제 부흥을 이끈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사찰로 원찰이라고 할 수 있다. 전형적인 백제 사찰을 형식을 하고 있으며, 1탑, 1가람, 강당이 일렬로 서있는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능사 주불전이라고 할 수 있는 금당. 삼국시대에는 신앙이 중심이 부처의 사리를 모신 탑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불상을 모신 금당은 보조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능산리사지에서는 백제를 대표하는 문화재인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견되었는데, 이곳에는 향로를 만들던 공방을 재현해 놓고 있다.


능사 뒤편에는 백제고분을 재현해 놓은 고분공원이 있다.


백제 사비궁 뒷편 언덕에는 궁궐과 생활문화마을 등이 한눈에 들어오는 제향루라는 정자가 세워져 있다. 궁궐 뒷편에 작은 동산을 두고 정자를 세워놓은 모습은 중국 자금성과 그 뒷편의 중산공원을 연상시키는 건물배치라 할 수 있다. 실제 백제 궁궐이 있었던 관북리유적지 뒷편에는 이와 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작은 동산이 부소산성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 세워진 정자는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정자로 조선시대 건축양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정자에서 내려다 보이는 백제 궁궐인 사비궁


정자 서쪽편으로 백제인의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생활문화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백제말기의 대표적인 귀족집단이었던 사택지적의 집을 재현한 귀족주택과 계백장군의 집을 재현한 군관주택, 크고 작은 다양한 계층이 거주하였던 주택, 토기와 기와를 굽던 가마 등을 재현해 놓고 있다.


생활문화마을 뒷편에는 백제를 건국한 온조왕이 건설하였던 한성백제의 수도 위례성을 재현해 놓고 있다. 실제모습이라기보다는 작은 궁궐과 주택, 토성 등으로 이루어진 축소된 형태의 고대 성읍국가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2층으로 이루어진 위례성 성문과 토성


마을 앞쪽에 위치한 계백장군의 집을 재현해 놓았다는 군관주택이다. 바깥주인이 거주하며, 집무실 성격을 갖는 2동의 건물이 입구 오른쪽에 있고, 거주공간인 안채라 할 수 있는 건물들이 왼쪽에 배치되어 있다.


군관주택 사랑채에 해당하는 오른편 영역 뒷편에 있는 앞면 5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숭의당 건물.


부엌과 침실,거실로 이루어진 왼쪽편 안채 건물.


침실과 거실, 부엌으로 이루어진 안채 건물 내부


군관주택 뒷편에는 백제말을 대표하는 귀족가문이었던 사택지적의 집을 재현한 귀족주택이 있다. 이 주택은 중앙에 사랑채에 해당하는 2동의 건물을, 양쪽에 안채에 해당하는 주택건물이 배치되되어 있다.


사랑채에 해당하는 홍의당. 앞면 7칸의 궁궐건물을 연상시키는 상당 큰 규모의 건물이다.


침실이 있는 건물로 사랑채에 딸린 침실이라 볼 수 있는 건물이다.

건물 내부의 모습. 가구들과 오락을 즐기는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다.


앞쪽에는 3개의 침실로 이루진 안채 건물이 있다.


뒷편에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살았던 백제시대의 주택들을 재현해 놓고 있다.대체로 우진각건물을 하고 있는 주건물을 중심으로 'ㄷ'자형 건물 배치를 하고 있다.


생활문화마을 골목길.


골목길 한쪽편에 백제 전통가마를 재현해 놓고 있다.

백제전통가마
이곳은 백제시대의 가마 즉 요지를 재현한 곳이다. 백제시대의 요지는 크게 기와요지와 토기요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또한 기와와 토기를 동시에 구웠던 요지도 있다. 백제시대 요지는 크게 아궁이, 연소실, 소성실, 굴뚝을 구성되어 있다. 아궁이는 불을 지피는 입구이다. 연소실은 아궁이를 통하여 땔감이 지펴지는 곳이다. 소성실은 구워야 할 물건을 재는 곳을 가마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굴뚝은 연기를 뽑아내기 위한 구조물이다. 백제시대 요지는 앞에서 설명한 네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구조가 간략화되는 경우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백제시대의 요지는 지하에 조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다시 등요와 평요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등요는 언덕의 경사면에 터널형으로 길게 설치한 것으로 평면형태가 부정형의 삼각형을 띠고 있다. 이에 비하여 평요는 평평한 곳에 만들어진 것으로 평면형태가 사각형이다. 백제의 요지가 입지한 곳은 대부분 가마를 마련할 수 있는 경사면과 쉽게 굴을 팔 수 있는 풍화암반이 있는 곳이 많이 채택되었다. 백제시대 와요지는 대부분 풍화된 화강암반에 굴을 뚫어 만든 굴가마이다. 가마는 굴을 파들어가 우선 기본 모양을 만든 후 아궁이 부분은 긴 돌을 사용하여 입구를 마무리하고 필요할 때는 주변의 기와, 전돌, 작은 돌이나 진흙을 함께 사용하여 보완하기도 하였다. 이곳의 가마는 충남 청양군 정산면 학암리엣 6세기 중반 만들어진 요지를 재현한 것으로 경사지에 터널형으로 제작하는 등요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가마보호를 위한 보호각을 설치하였다. <출처:부여군청>


백제문화을에 재현되어 있는 초가집


주택들은 중간 이상의 계층이 살았던 전형적인 백제 주택은 우진각지붕을 하고 있는 부엌과 침실로 이루어진 건물을 중심으로 그 앞쪽에 작은 건물 2동이 있는 'ㄷ'자형 건물배치를 하고 있다.


앞쪽건물들은 마굿간, 광, 노비들의 거처로 구성되어 있다.

생활문화마을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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