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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_정원

경주 양동민속마을, 영.정조대 분가한 후손들이 세운 저택(근암고택, 상춘헌, 사호당고택)

younghwan 2012. 5. 30.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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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양동민속마을은 조선시대 영남 4대 길지 중 하나인 마을로 동해안을 따라서 이어진 백두대간이 동해로 흘러드는 큰 강인 형산강과 만나는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서쪽으로는 형산강 지류이자 큰 하천인 기계천, 남쪽에는 형산강이 흐로고 있으며, 마을 앞으로는 형산강을 중심으로 안강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다. 여주이씨와 경주손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이 마을은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조선시대 마을입지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처음에는 넓은 평야가 내려다 보이는 마을 앞쪽 언덕에 마을에 늦게 늘어온 여주이씨 집안 종택이 있고, 뒷편에는 이 마을에 먼저 터를 잡은 경주 손씨 대종택을 중심으로 경주 손씨가 많이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마을이 뒷편 언덕에 분가한 후손들의 저택이 많이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조선중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이언적이 중앙정치무대에서 활동한 이래로 그 후손들이 크게 번창하면서 마을이 확장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을의 종갓집에 해당하는 보물로 지정된 오래된 고택인 관가정과 무첨당은 마을 앞쪽에 위치하고 있는 반면에 주로 영.정조대에 후손들이 분하여 세운 큰 저택들은 마을 뒷편 언덕과 평지와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있다. 특히 마을 안쪽으로 들어간 골짜기에 남향을 하고 있는 언덕에는 근암고택, 상춘헌, 사호당 고택 등 영.정조대에 지어진 많은 양반가옥들이 자리잡고 있다. 마을 앞쪽에 비해서는 전망이 좋지는 않지만,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경치좋은 곳으로 조선시대 전통마을에서 양반가옥들의 입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양동마을은 낮은 언덕에는 양반들의 저택이, 마을 큰길에는 초갓집이나 작은 한옥들이 들어서 있는데, 마을 전체에 인공적으로 나무를 많이 심어서 그런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마을에서 안쪽으로 따라서 들어가면 입구 언덕에는 조선후기에 분가한 후손들이 지은 저택들이 언덕 위에 많이 자리잡고 있고, 그 안쪽으로는 이 마을에 먼저 터를 잡은 경주손씨 대종택이 있다.


마을 큰길에서 서쪽편으로 연결되는 작은 골짜기에도 꽤 많은 집들이 들어서 있다.


주로 마을 안쪽길 북쪽편 언덕에 조선후기에 분가한 후손들의 저택들이 들어서 있는데, 대부분 경치가 빼어난 곳에 자리잡고 있다.


언덕 아래에 있지만 'ㅁ'자형으로 꽤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저택을 볼 수 있다.


지금은 사랑채를 수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근암고택으로 들어가는 길. 대체로 하나의 언덕길에 양반저택 2동이 자리잡고 있으며, 언덕중간쯤에 갈림길이 있다.


마을안쪽 언덕에 첫번째로 자리잡고 있는 근암고택이다. 원래는 사랑채와 안채가 직각을 이룬 'ㅁ'자형 주택이었으나, 20세기초 화재로 사랑채를 경치좋은 언덕으로 옮기고 대신에 문간채가 들어서 있다.


근암고택 사랑채, 앞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앞에 넓은 마당과 뒷편에 후원을 두고 있다.


근암고택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 전경. 뒷편 언덕에 위치한 고택 중에서는 경치가 제일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근암고택
이집은 정조4년(1780)경에 이정수(1758~1784)가 지은 것으로, 그의 증손자인 근암 이희구의 호에서 집의 이름을 따왔다. 마을의 여느 집들과는 달리 안채의 담장 밖에 따로 사랑채가 서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 사랑채는 원래 안채와 직각으로 놓여 있다가 소실된 것을 20세기 초에 새로 지으면서 현재 위치로 옮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랑채의 뒤로는 비탈진 지형을 그대로 살려서 만든 후원이 있어 마을의 전경과 주위의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 <출처:양동민속마을>


근암고택과 나란히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상춘헌. 저택 입구의 오래된 고목들이 이 가옥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상춘헌 전경. 'ㅁ'자형 구조를 하고 있는 이 저택은 이언적의 후손이 분가하면서 영조대에 지어진 주택으로 건물규모는 크지 않지만 양반가옥이 갖추어야 할 대부분의 시설들을 갖추고 있다.


상춘헌 대문과 문간채. 양동민속마을은 여주이씨와 경주손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마을이라, 이 저택의 주인 중에도 큰 벼슬을 한 사람이 있지만, 마을분위기와 종갓집 등을 고려하여 솟을대문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


이 가옥은 마을 전경이 내려다 모이는 동쪽편에 사랑채를 두고 있다. 출입문과 마당이 있는 정원을 향새서 2칸의 대청마루와 온돌방을 두고 있다. 이 집 주인인 손님을 맞기에 적절한 공간배치라 할 수 있다. 일반 가옥이지만 정자와 같은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는 저택이다.


상춘헌이라는 현판이 걸린 대청마루


언덕 아래에서 올려다 보이는 상춘헌


안쪽의 비슷한 높이의 언덕에 위치한 사호당고택에서 본 상춘헌.

상춘헌
이 집은 회재 이언적의 5세손인 동고 이덕록(1677~1743)이 영조 6년(1730)에 지은 것으로 후손인 상춘헌 이석찬의 호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덕록의 증손이며 대사간을 역임한 이정덕이 동쪽에 있는 사당을 지었다. 사랑채의 마당 비탈진 곳에 계단식 정원을 조성하고 꽃나무들을 심어 운치가 있다. 작은 규모에 필요한 모든 시설을 배열한 짜임새가 돋보인다. <출처:양동민속마을>


마을안쪽으로는 언덕에 많은 기와집과 초가집들이 들어서 있다.



상춘헌 아래에 있는 초가집. 언덕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이 초가집은 건물규모로 볼 때 양반 또는 중간계층에서 살았던 주택으로 보인다.


다음번 언덕에 위치한 사호당 고택으로 들어가는 길


상춘헌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사호당 고택으로 들어가는 길. 입구에 오래된 고목이 우뚝 서 있다.


사호당 고택은 19세기에 지어진 이 고택은 'ㄱ'자형의 안채와 'ㄱ'자형의 사랑채가 맞대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호당 고택의 'ㄱ'자형 사랑채. 남향을 하고 있으며, 가운데 2칸에 대청마루를 두고 그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안채와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으며, 사랑채에서는 마당과 마을의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저택은 19세기에 지어진 건물로 당시에 유행했던 난간이 있는 누마루와 비슷하게 꾸며놓고 있다.


사호당 고택 아래의 초가집

사호당고택
이집은 사호당 이능승이 헌종6년(1840)에 지어 살던 곳으로 그의 호에서 집의 이름을 따왔다. 주로 'ㅁ'자모양으로 이루어진 이 마을의 다른 집들에 비해, 'ㄱ'자의 안채에 'ㄱ'자의 사랑채가 맞대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안채와 사랑채가 맞대어 있는 부분에 고간방이 있는데 이 곳에는 문으로 빠져 나올 수 없는 커다란 항아리가 들어있다. 독을 먼저 넣고 집을 지은 것인데, 곡식이 돈과도 같았던 시기의 안주인의 위세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사호당고택으로 올라가는 갈림길. 이 곳도 두곳의 고택에서 언덕길을 같이 사용하고 있다.


사호당 고택 안쪽에 있는 고택.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비슷한 규모의 양반가옥이다.


언덕 아래쪽 일반 소작농이나 노비가 살았을 것으로 보이는 초가집 앞면3칸으로 방2, 부엌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자형 서민주택이다.

큰 길 주변으로 들어서 있는 초가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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