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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유적_고분

부여 당유인원기공비 (보물 21호),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군 유인원의 공적비

younghwan 2012. 6. 18.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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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박물관 정원에 전시되어 있는 당나라 장수 유인원의 공적을 기록한 보물 21호로 지정된 당유인원기공비이다. 유인원은 당나군의 낭장으로 소정방과 함께 백제를 멸망시키고 흑치상지를 중심으로 일어난 백제 부흥운동을 평정하였다고 한다. 이 비석은 원래 부소산에 세조각으로 깨어져 흩어져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복원해 두었다고 부여박물관으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비는 몸돌과 머리돌이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머릿돌에는 당나라 전기의 조각수법을 보여주는 여섯마리의 용을 사실적으로 조각해 놓고 있다. 비문은 몸돌 앞.뒷면에 새겨져 있으나 심하게 닳아서 현재는 그 글씨를 알아보기 힘든 상태이며, 몸돌 앞면이 조금 깨어져 나가 있다. 이 비가 세워진 시기는 소정방이 정림사지 오층석탑에 비문을 새지지 3년 후인 663년으로 비문의 내용은 그가 당태종에 의해 박탈된 이후의 활동상을 적고 있다. 비문의 내용에 백제 멸망후 의자왕과 태자 및 신하들이 당나라에 압송되었던 사실, 백제 부흥운동의 주요 내용, 폐허가 된 사비성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어서 삼국사기 등 사서로 전해지는 내용을 당대에 쓰여진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한다.


국립 부여박물관 정원에 전시되어 있는 보물 21호로 지정된 당유인원기공비. 거북받침돌은 없고 비몸과 머릿돌로만 이루어져 있는 일종의 공적비로 당나라 장수 유인원의 공적이 새겨져 있다.


비석은 비몸과 머릿돌이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으며, 받침돌은 남아 있지 않다.


머리돌은 당나라 전기의 화려한 조각수법을 보여주고 있는 여섯마리의 용조각이 새겨져 있다.


몸돌에 새겨진 글씨는 마모가 심하여 지금은 거의 알아 볼 수 없다.


당유인원기공비 탁본. 유인원기공비는 백제가 멸망했을 때 당나라 군의 낭장이었던 유인원의 공을 기록한 비석이다. 부여 부소산성 안에서 발견되었으며, 비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비문을 정확히 판독하기 어렵다. 백제 부흥운동이 평정된 663년에 세워졌으며, 의자왕이 항복한 후 거세게 일어났던 부흥운동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금석문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출처:부여박물관>


당유인원기공비편, 663년, 부여 동남리, 비 몸돌에서 깨어져 나온 파편으로 많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파편에 새겨진 글씨 탁본

당유인원기공비, 보물 21호
당나라 장수 유인원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로 원래는 부소산에 있었다. 몸돌 앞.뒷면에 글을 새겼으나 심하게 마모되어 있어 알아보기 힘들다. 비몸돌과 머릿돌은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머릿돌에는 여섯마리의 용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비문에는 유인원이 당나라 고종에 의해 발탁된 이후의 활동상은 남아 있으나, 소정방과 함께 백제를 멸망시키고 백제 부흥운동을 평정한 그 이후의 행적은 비문이 지워져 알 수 없다. 비록 당나라 장수의 공적비이기는 하지만 비문에 의자왕과 태자 및 신하 790여명이 당나라로 압송된 사실과 부흥운동의 주요 내용, 폐허가 된 도성의 모습 등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의 상황을 아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출처:부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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