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박물관 야외에 전시된 석조문화재 중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석탑들이다. 석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곳으로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는 사찰의 가람배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으며, 신앙의 중심이 되었던 공간이다. 탑은 석탑, 목탑, 전탑 등 여러가지 재료를 가지고 만들었으며 통일신라시대 감은사지와 고선사지 석탑을 만든 이후에는 2개의 탑을 사찰 중심공간에 배치하는 것이 보편화되었으며, 그 조각수법 또한 전성기를 이룬다. 통일신라 이후에는 석탑을 세우기 위한 부처님 사리의 희소성때문인지는 몰라도 신앙의 중심이 탑에서 부처를 형상화한 불상을 모신 금당으로 바뀐다.
통일신라 말기부터 정형화되기 시작한 석탑은 고려시대에 들어서는 그 중요성이 많이 떨어져서 그런지 조각수법이 빼어난 석탑이 거의 등장하지 않고, 오히려 고승의 사리를 모시는 부도탑이 고려초기에 조각수법이나 예술성에서 절정을 이룬다. 부여박물관에 전시된 석탑들 또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정형화된 석탑으로 통일신라시대의 것에 비해서 조각수법이나 보존상태가 떨어지고 그 보존상태 또한 전대의 석탑에 비해 좋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석탑
석탑은 돌을 깎아 만든 탑으로 본래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신 부처님의 무덤이라 할 수 있다. 석가모니가 열반에 드신 후 예배의 중심이 되어 절의 중심부에 세우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는 질 좋은 화강암이 많기 때문에 삼국시대부터 석탑이 활발하게 만들어졌다. 부여의 정림사터 오층석탑과 익산의 미륵사터 석탑은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석탑이다. 석탑은 보통 받침이 되는 기단부, 몸체를 이루는 탑신부, 그리고 제일 위쪽의 상륜부로 이루어진다. <출처:부여박물관>
동남리석탑, 부여 석목리 절터
부여 석목리 논절마을의 고려시대 절터에 있었던 것을 박물관으로 옮겨 세웠다. 2층의 기단 위에 5층의 탑몸돌을 올린 석탑이었으나, 아래층 기단의 일부만 남아 있고, 탑몸돌의 4층 몸돌은 없어진 상태이다. 위층 기단의 맨 윗돌은 탑몸돌의 1층 몸돌을 과어주는 부분 주위에 넓게 테두리를 두른 뒤 연꽃무늬를 장식하였다. 2층 몸돌부터는 갑자기 높이가 줄어들어 1층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쳐주던 받침돌만 남아 있다. 고려시대 후기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는 석탑이다. <출처:부여박물관>
동사리석탑, 부여 세도면 동사리
원래 부여군 세도면 동사리에 있던 석탑이다. 2층의 기단 위에 5층의 탑몸돌이 올려져 있다. 아래층 기단의 네면에는 각면마다 무늬를 얇게 새겼고, 위층 기단의 윗면에는 연꽃무늬를 두르고 네모퉁이마다 돌출된 꽃조각을 두었다. 탑의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는데, 2층 몸돌부터는 심하게 높이가 줄어들어 1층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꼭대기 장식은 모두 없어졌으며, 지금의 장식은 훗날 새로 만들어 올려놓은 것이다. 고려시대에 유행한 석탑 양식이다. <출처:부여박물관>
탑몸돌, 11~13세기, 출토지 미상. 부조상을 새겼던 흔적이 남아 있다. 내부가 비어 있는 것으로 볼 때 시라함 등을 보관했던 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석탑, 9~10세기, 보령시 미산면 삼계리
지붕돌, 16~18세기, 서천 시초면 초현리
맷돌, 11~13세기, 부여 금곡리 금강사터
연꽃무늬 석등받침(6~7세기, 부여 기탑리), 연꽃무늬 석등받침(8~10세기, 부여 석목리)
문인석,16~18세기, 논산 성동면 우곤리
동자상, 16~18세기, 출토지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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