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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보문동 농경지 한가운데에는 보물 910호로 지정된 보문사지 연화문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현재 명칭은 동남쪽에 위치한 보문사의 당간지주라고 이름 지어져 있지만, 실제로는 보문사 절터와는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고, 또한 보문사에는 별도로 당간지주가 남아 있어 이 곳에 별개의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이 당간지주는 현재 남아 있는 많은 당간지주들 중에서 팔엽의 연화문이 새겨져 있는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이 당간지주는 오늘날까지도 원래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당간지주가 세워져 있는 보문동 일대는 신라를 건국한 경주 6촌 중 명활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던 명활산 고야촌으로 신라가 6촌을 6부로 개편할 때 습비부가 되었으며 설(薛)씨 성을 받았다고 한다. 원효대사가 설씨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설총이 묻혔다고 전해지는 무덤이 이 마을에 남아 있다. 마을에는 진평왕릉이 있으며, 서쪽편 정면으로는 경주에서 신성한 산으로 여겨지는 낭산 북쪽끝에 자리잡은 황복사 절터가 있다.
신라를 건국한 경주 6촌 중 하나인 명활산 고야촌 마을 앞에 남아 있는 보문사지 연화문당간지주. 실제로 보문사와는 관련이 없는 별개의 사찰이 있었을 것을 생각되지만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보이는 이 당간지는 높이 146cm 정도이며, 바깥쪽에 팔엽 연화문이 조각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당간지주에 새겨진 연화문. 연화문은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많이 사용된 문양이기는 하지만, 당간지주에 이를 새긴것은 거의 없다고 한다.
경주 보문사지 연화문 당간지주
절터 뒷편으로 보이는 경주 6촌 중 하나인 명활산고야촌 마을이 있다.
절터 동쪽으로는 경주에서 신성한 산으로 여겨지던 낭산끝자락에 위치한 황복사지 절터가 보인다.
낭산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황복사지와 그 너머로 궁궐인 월성, 황룡사, 분황사 등 경주 도심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황복사 너머로 황룡사 목탑의 웅장한 모습이 보였을 것이다.
문무왕을 화장했다는 장소로 전해지는 능지탑이 위치한 낭산 허리자락
낭산 남쪽편에는 문무왕을 모신 사찰인 사천왕사와 선덕여왕릉, 신문왕릉, 효공왕릉이 자리잡고 있다.
경주 보문사지 연화문 당간지주, 보물 910호, 경주시 보문동
당간은 절에서 불교 의식이 있을 때 불.보살의 공덕을 기리거나 마귀를 물리칠 목적으로 달았던 당이라는 깃발의 깃대를 말하며, 이 당간을 받쳐 세우는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이 기둥은 통일신라시대 당간지주로 높이는 146cm이다. 기둥의 아랫부분이 상당히 매몰되어 있어 간대나 기단부의 구조를 확인할 수 없다. 현재까지 원위치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동서로 62cm 정도의 간격을 두고 두개의 기둥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기둥의 안쪽 윗부분에 있는 너비 13cm의 큼직한 구멍은 당간을 고정시켰던 장치이다. 특히 이 당간지주의 윗부분 바깥 측면에 설정된 방형구획 안에는 지름 47cm의 팔엽 연화문이 조각되어 있다. 이 당간지주의 원래 소속사원이 동남쪽에 터가 남아 있는 보문사 였는지는 알 수 없다. 제작연대는 8세기 중엽 이후로 생각되며,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 중에서 가장 특수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점에서 주목되는 작품이다. <출처:경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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