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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계성학교 교사 중 아담스관에 이어 2번째로 지어진 교사인 맥퍼슨관이다. 이 학교 2대 교장이었던 라이너(Reiner)선교사가 미국인 맥퍼슨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지어진 건물로 일제강점기인 1913년 지어진 것이다. 건물은 현재 기준으로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 한옥 기와를 얹어 놓은 건물이다. 당시로서는 거금을 들여서 지었다고 하며 우리나라에 서양건축물이 도입되기 시작하던 시기에 지어진 역사적인 가치가 높은 건물이다.

 대구에서 교회와 개신교 선교사 주택이 많은 계명대부속 동산부근 일대에 위치한 계성학교는 대구의 근대문화를 상징하는 장소 중 하나이다. 이 학교는 일제강점기 이전인 1906년 대구에 처음 설립된 사립 근대교육기관으로 현재 계성중.고등학교의 전신이다. 미국인 선교사인 안의와(James E. Adams)가 대구시 중구 남성로 선교사 자택에서 처음 설립하였고, 1908년 현재의 위치에 대구읍성을 철거한 성돌과 붉은 벽돌로 이층양옥 건물을 짓고 이전하였다. 기독교 선교와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설립한 사립교육기관으로 대구를 대표하는 교육기관 중 하나이다.

대구 계성학교 맥퍼슨관, 대구시 중구 달성로
이 건물은 계성학교 2대 교장이었던 라이너(R.D.Reiner)선교사가 아담스의 친척인 맥퍼슨으로부터 6,000달러의 지원금을 받아 1913년 9월에 완공한 전체 455.4㎡ 규모의 붉은 벽돌조 2층 건물이다. 설계와 감독은 아담스와 라이너가 하였고, 건축공사는 중국인 벽돌공과 일본인 목수들이 담당하였다. 건물에 사용된 유리와 각종 설비류는 미국에서 가져왔고, 기초와 지하실 석재는 1907년 대구읍성을 철거한 성돌이다. 평면구성은 정방형의 동쪽 정면에 현관홀을 두고 1층과 2층에 각각 교실을 배치하였다. 지붕은 모임지붕에 한식기와를 이었다. 이 건물은 서구 건축과 한국 건축 양식이 혼합된 절충 형태로 근대 건축의 수용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출처:대구시청>



대구 계성고등학교 본관에 해당하는 핸더슨관 왼쪽편에 위치한 맥퍼슨관. 지금은 '계성교회'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것으로 볼 때 학교 교회건물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건물이다.


건물은 양옥으로 지어진 건물로 지하층과 기단부 등에는 대구읍성을 철거하고 남은 성돌을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전체적을 붉은 벽돌로 지었으며, 지붕에는 한옥 기와를 얹어 놓았다. 그리 크지 않은 건물로 일반적으로 개신교 교회건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구조를 하고 있다.


교회 파사드(Facade)에 해당하는 출입문이 앞으로 돌출되어 있는 형태이며, 계단을 두고 있지는 않다. 입구에 '계성교회'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출입문 위쪽에 창문. 지붕은 한옥 지붕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


옆쪽에서 본 계성학교 맥퍼슨관. 앞쪽 정원에 이학교 설립자인 안의와(James E. Adams) 박사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뒷쪽에서 본 맥퍼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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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 | 계성학교맥퍼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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