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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적290호로 지정된 대구 계산동성당은 카톨릭 대구대교구 주교좌성당으로 서울, 평양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1902년에 지어진 서양식 성당건축물이다. 원래 이곳에는 1899년에 지어진 강화 성공회성당처럼 한옥형태의 성당이 있었는데 화재로 불타버린 것을 로베르신부가 설계하고 명동성당 건축에 참여했던 중국기술자 등이 참여하지 지었다. 1911년 대구대교구가 설립되면서 이 성당이 대교구 본당으로 바뀌면서 총탑을 높이는 등 증축을 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대구에서 한약재가 거래되던 큰 시장이었던 약령시에 가까운 도심에 위치한 성당으로 두개의 탑이 우뚝 솟아 있어 '뾰족집'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건물은 첨탑이 있는 고딕양식이 가미된 전통 로마네스크 양식을 하고 있다. 건물의 평면은 좌.우 익랑을 두고 있는 라틴십자가 형태를 하고 있다. 전면부 파사드(Facade)는 2개의 첨탑이 있으며, 1개의 출입문을 두고 있다. 내부는 가운데 신자석인 네이브(Nave)를 두고 양쪽에 회랑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측랑(aisle)을 두고 있다. 양쪽에 익랑(transept)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유럽의 큰 성당과는 달리 제단을 별도로 두지는않고 있다. 큰 규모의 건물은 아니지만 대구지방에 처음 지어진 성당으로 그 역사성과 대구대교구 본당으로 의미를 갖고 있는 성당이라 할 수 있다. 성당 맞은편은 이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활발하게 벌렸던 대구제일교회(신축)를 중심으로 동산의료원, 선교사주택 등이 모여 있는 청라언덕이 있다.

대구 계산동성당, 사적 290호, 대구시 중구 계산동
이 건물은 서울과 평양에 이어 세번째로 세워진 고딕양식의 성당이다. 설계는 프랑스의 로베르 신부가 하였고 서울 명동성당의 건립에 참여하였던 중국인들이 공사를 담당하여 1902년에 완공하였다. 그리고 1911년에 주교좌성당이 되면서 종탑을 2배로 높이는 등의 증축을 하여 1918년 12월 24일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평면은 라틴십자형이고, 서쪽 정면에 세운 2개의 종탑부에는 8각의 높은 첨탑을 세웠으며 앞면과 양쪽에는 장미창으로 장식하였다. 당시 대구에 처음 세워진 서양식의 건축물이며 현존하는 1900년대의 성당건축물로 유일한 것이어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출처:대구시청>


대구 도심 약령시 부근에 위치한 계산동 성당. 지금은 고층건물에 가려 있지만 인상적인 두개의 종탑으로 인해 '뾰족집'으로 불렸다고 한다. 대구 계산동지역은 약령시를 중심으로 부유층들이 많이 살았던 지역으로 보이며, 성당부근은 이상화 고택을 중심으로 대구근대골목이라 불린다.


계산동 성당 전면부(Facade). 가운데 출입문을 중심으로 양쪽에 2개의 종탑이 세워져 있다. 정면 출입문 위에는 장미모양의 창을 만들어 놓고 있다.


계산동성당 종탑


익랑은 많이 돌출되어 있지 않고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한 유리창과 장미모양 창문이 있다. 유럽 대형성당의 익랑처럼 제단이 설치되어 있지는 않다.


계산동성당 측면 출입문


사제가 미사를 집전하는 제단이 있는 반원형으로 생긴 돌출부인 후진(apse).


성당입구의 성수대


성당내부 출입문에는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다녀갔다는 안내표시판이 있다.


성당내부 가운데 신자석인 네이브(nave)와 양쪽에 회랑형식의 측랑(aisle)로 구성되어 있다.


측랑에는 성화나 조각상 등으로 장식하는 유럽 대형 성당과는 달리 스테인드글라스에 성화를 그려놓고 있다.


성당 제단. 반구형으로 바깥쪽으로 돌출된 형태를 하고 있다.


성당 측면 출입문


성당 뒷편 사제관으로 보이는 건물


뒷편에서 본 계산동성당


대구대교구 사무실들이 들어서 있는 건물


성당 앞 마당에 세워진 예수상


대구 계산동 성당.

* 참조: 1. 위키백과
          2. 문화재청
          3.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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