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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칭 남대문이라고도 불리는 숭례문은 우리나라 국보 제1호로 지정되어 있는 한양 도성의 정문이다.  숭례문은 1396년(태조 5)에 축조되어, 1447년(세종 29)에는 개수공사를 하였으며, 1961~1962년 사이 목재와 석재 등이 썩고 부서져 무녀질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여 문루와 홍예를 헐고 중수하였다고 한다. 목조건축물을 중수한다는 것은 부서진 석재와 썩은 목재만 새것으로 갈고 다른 것은 옛날 것을 그대로 사용하여 옛 모습을 유지하기때문에 원래 건축물의 가치가 크게 훼손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런점에서 최근에 방화로 숭례문 문루가 불타버리고 다시 복원되었다고 해서  국보1호로의 상징적 의미와 가치가 없어지어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1960년대 해체수리를 할때 발견된 상량운에서 1479년 (성종10)에도 대대적인 중수공사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숭례문은 화강암으로 쌓은 기단위에 건립되었는데 견고하고 아름다우며, 현존하는 우리 나라 성문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단청은 적(赤),녹(綠)의 두 색을 많이 사용했고, 2층누각 아래에는 화강암으로 석축한 중앙에 홍예문이 있고, 철갑을 쒸운 문이있다.

 남산 능선을 따라서 이어진 서울 성곽은 도심지가 가까운 남산공원 입구에서부터 성벽이 끊어져서 인왕산 성벽이 시작되는 사직동까지는 숭례문을 제외하고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최근 숭례문 복원과 함께 숭례문에서 서소문 사이의 성벽 일부가 복원되어 옛 한양도성 성곽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숭례문에서 남산 사이의 성벽이 있던 자리에는 남산순환도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옛 성곽에 속했던 땅에는 일제강점기에 세브란스의대가 자리잡았던 것으로 보이며 지금은 그 자리에 힐튼호텔을 비롯하여 고층빌딩들이 들어서 있다. 숭례문과 서소문 사이에는 원래 시위병영을 비롯하여 관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삼성그룹에 속한 빌딩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서소문에서 서대문까지 성벽은 서울성곽 중 제일 먼저 허물어졌는데 영국대사관을 비롯한 서구열강의 영사관들과 배재학당, 이화학당 등 근대 교육기관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서구화된 거리를 형성하였다.

서울 숭례문, 국보1호
숭례문은 조선 태조 7년(1398)에 한양도성의 남쪽 대문으로 세워졌다. 그 후 세종30년(1448), 성종10년(1479), 고종 연간에 큰 수리가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매일 밤 인정(10시 무렵)에 문을 닫았다가 다음날 아침 파루(4시무렵)에 문을 열었는데, 이떄 문루에 종을 담아 그 시간을 알렸다. 장마나 가뭄이 심할 때는 임금이 몸소 기청제와 기우제를 지내는 등 숭례문에서는 국가의 중요한 행사가 거행되곤 하였다. 석축 위에 세워진 중층 누각은 장식이 간결하고 내부 구조가 견실하여 조선초기의 건축 기법을 잘 간직하고 있다. 1907년부터 1908년 사이에는 좌우 성곽이 철거되었으며, 한국전쟁 때 피해를 입어 1961년부터 1963년 사이에 해체보수를 하였다. 2008년 2월10일 방화사건으로 크게 훼손되어 2013년 4월까지 복구하였으며, 이때 좌우 성곽도 함꼐 복원하였다. <출처:서울시청>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한양도성의 남쪽 방향 주출입문으로 4대문 중 남대문에 해당하는 숭례문이다. 최근에 방화로 문루가 물타버린 것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했고 주변 성곽도 일부 복원했다. 


방호로 소실되기 전 숭례문. 숭례문은 인도로 연결되기전까지는 도심에서 차들로 가로막혀진 하나의 섬이었으나, 지금은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명실 상부한 대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관람객이 찾고 있는 숭례문. 지금은 경비초소가 설치되어 있고 많은 인원이 관리하고 있다.


숭례문 2층 문루. 누각 형태로 되어 있는 일반적인 읍성 성문과는 다른 형태를 하고 있다. '숭례문'이라 적힌 현판도 세로쓰기로 적혀 있다.


붉은색과 녹색을 위추로 한 단청에 다포계공포를 사용하고 있지만 간결한 형태를 하고 있다.


문루 추녀마루 잡상


복원된 숭례문 좌.우 성벽. 옛 성돌이 남아 있는 부분도 있지만, 새로운 화강석으로 복원해 놓고 있다. 방어시설로 옹성이 설치된 흥인지문(동대문)과 달리 숭례문은 조선초기 한양도성을 쌓았을 때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숭례문 석축


숭례문 성문. 아치형으로 석축을 쌓은 홍예문으로 웅장하고 견고해 보인다.


성문 내부 천정에 그려진 그림. 남쪽을 상징하는 주작이 그려져 있다.


숭례문 남쪽 서울역 방향으로 연결되는 길.

 
한양도성에서 한강나루를 건너 남쪽지방으로 연결되는 길로 조선후기 
조선통신사가 국서를 받들고 출발했던 길이기도 하다.


숭례문 안쪽 남대문 시장. 숭례문은 한양도성 성문 중에서 사람의 통행이 가장 많았던 성문으로 마포나루에서 하역한 물자들의 숭례문을 통해 한양으로 들어왔기때문에 조선시대에도 시장이 크게 번창했던 곳이다. 국가의 허가를 받고 운영했던 육의전을 비롯한 종로의 시장과는 달리 남대문은 행상을 비롯한 사설시장이 주를 이루었다고 한다.


숭례문을 들어서면 2갈래 길로 나뉘는데 왼쪽은 경복궁과 관아인 육조거리가 있던 광화문으로 연결되는 길이고, 오른쪽은 일반인들이 많이 통행하던 종로와 광통교지역으로 연결되는 길이다. 지금도 수도서울을 대표하는 거리라고 할 수 있다.


숭례문과 서소문을 연결하는 성곽 안쪽에는 삼성그룹에 속한 빌딩들이 주로 들어서 있다.


서울역에서 숭례문으로 연결되는 길


염천교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 이길은 만리재고개를 넘어 마포나루와 연결되는 길이다.


서울도성 숭례문 밖에 있던 연못인 남지터에서 본 숭례문.


숭례문 서쪽 서울성곽이 있던 자리에는 공공기관이라 할 수 있는 상공회의소가 들어서 있다. 일제강점기에 성벽을 허물고 처음 들어섰던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조선 태조 5년(1396)에 축성된 서울성곽의 일부 구간으로서 옛 성곽의 흔적을 남기고 성곽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복원.정비한 것이다.


빌딩숲 사이 도로변에 복원된 서울성곽. 실제 위치가 맞는지 알 수 없지만 상징적으로 복원하는데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성벽은 도로를 따라서 옛 서소문이 있던 자리 부근으로 연결된다.


이곳에서도 옛 성벽 석축의 일부를 볼 수 있다.


복원된 성벽이 끝나는 지점


이곳부터 사직터널부근까지 성벽은 끊어져 있다.


소덕문터, 서울의 서소문으로 태조5년(1396)에 세워졌으며 1914년에 허물어졌다고 한다. 서소문 안쪽에는 조선후기 국왕을 호위하던 시위병영이 있었다고 한다. 시위병영터는 조선 후기에 임금의 호위를 위하여 조직된 시위대의 보명 제1연대 제1대대가 주둔하던 곳이다. 시위대는 대한제국 선포 이후 전투부대로서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1907년 8월 일제의 강요에 의해 해산되었다. 시위대의 해산은 군인들의 항일시위투쟁이 벌어진 계기가 되었다.


서소문에서 서대문까지 성벽은 구한말 외국선교사들에게 근대교육기관인 배재학당, 이화학당 등이 들어설 수 있도록 성벽을 허물었으며 외국대사관들이 들어서면서 서울에서 가장 먼저 서구화된 지역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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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 | 숭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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