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읍소재지에 멀지 않은 들판에 위치한 이상설 생가이다. 이성설은 구한말 관료이자 독립운동가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한 3인 중 한명이다. 진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신학문을 배운 후 관료의 길을 걸었다. 1905년에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러시아로 망명하였다. 이준, 이위종과 함꼐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호소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와 독립운동을 펼쳤다.
진천군 산척리 마을에 남아 있는 생가는 일제강점기 이후 무너진 것으로 복원한 것이다. 건물은 앞면3칸, 측면2칸의 작은 초가집이다. 이상설은 구한말 신학문을 배우고 과거에 급제했던 것으로 볼 때 신분이 낮거나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생가는 서민들이 살았던 작은 초가집이다. 이는 당시 양반계층들 중 상당수는 작은 초가집에서 살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큰 족적을 남겼던 여러 인물들의 생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진천 이상설 생가, 충북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이 집은 이상설(1870~1917)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정면3칸, 측면2칸의 초가집으로, 광복을 전후하여 무너진 것을 복원한 것이다. 1997년 정화사업을 할 때 진천읍 교성리 향교말에 있던 사당인 숭렬사와 숭모비도 이곳으로 옮겨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상설은 독립운동가로 자는 순호, 호는 보재이며, 본관은 경주이다. 7세에 이용우의 양아들이 되어 서울에 올라가 신학문에 뜻을 두어 영어.노어.법률을 배우고 고종31년(1894)에 문과에 급제하여 중요한 직책을 두루 맡았다. 1905년에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의 폐기를 상소하고, 망명하여 간도 용정에 서전서숙을 세워 교포자녀의 교육에 힘썼다. 1907년 고종의 특사로 이준.이위종과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가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호소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펴다가 47세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1962년에 정부는 선생에게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 복장(현재 대통령장)을 주었다. <출처:진천군청>
진천군 진천읍 중부고속도로 옆에 위치한 이상설 생가이다. 구한말 과거에 급제하고 고위직을 지냈지만, 그의 생가는 3칸짜리 작은 초가집이다. 건물은 안채와 창고가 있는 작은 부속채로 구성되어 있다.
부엌과 작은 방 2개로 이루어진 살림집.나무기둥을 거의 쓰지 않은 토담집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무너진 것을 복원한 것이다.
안방 내부
외양간과 창고 등으로 이루어진 부속채
뒷마당 장독대
생가 마당
숭열사
이 사당은 항일투사 이상설선생의 존영을 모신 사당이다. 본관은 경주로 선생은 1870년(고종7)에 진천군 산척리 산직말에서 학자 이행우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7세 때 이용우의 양아들로 입양되었다. 자는 순호, 호는 보재이다. 1894년 문과에 급제한 뒤 의정부참찬을 지냈으며, 1907년 만국 평화회의에 고종의 특사로 파견되어 을사보호조약의 억울함을 세계만방에 호소하며 국권회복을 위해 악전고투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중국.러시아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계속하여 1917년 47세로 별세하였다. 1972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세워진 목조와가 9평의 맛배집으로 된 사당과 숭보비를 1997년 3월2일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현재의 사당은 22평으로 중건되었고, 숭모비의 비문은 이은상이 짓고, 비명은 이범석이 쓰고 이상복의 글씨로 되었으며, 비각은 5평8작 목조집이다. <출처:진천군청>
이상설 영정을 모신 사당. 원래 진청향교 부근에 있던 것을 1997년에 생가가 있던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사당
이상설 선생 동상
숭모비와 비각
헤이그 만국평화회담 당시 사진
헤이그 특사 탄원서(왼쪽, 1907.6.27, 네덜란드 국립문서 보관소, 복제), 헤이그 특사 임명장(가운데), 만국평회회의보(오른쪽, 1907,7.5, 네덜란드 국립문서보관소, 복제)
'고택_정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안 유관순열사 생가지(사적230호) (0) | 2014.07.17 |
---|---|
천안 유석 조병옥박사 생가 (0) | 2014.07.15 |
파주 오금리마을, 임진강 부근에 위치한 전통마을 (0) | 2014.01.13 |
상주 오작당, 승곡리마을에 남아 있는 조선중기 양반가옥 (0) | 2013.11.15 |
상주 양진당(보물 1568호), 조선중기에 지어진 양반가 대저택 (0) | 2013.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