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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_정원

구례 운조루(雲鳥樓)

younghwan 2016. 5. 31.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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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지방을 대표하는 대저택인 구례 운조루(雲鳥樓)이다. 저택은 55칸 규모로 따뜻한 호남지방의 지역적 특징을 반영했다기보다는 구한말 한양의 권문세가들 사이에 유행안 안동지방의 'ㅁ'자형 주택 구조를 하고 있다. 건물은 오른쪽에 안채, 왼쪽에 사랑채가 배치되어 있고, 앞쪽에 행랑채가 있다. 사랑채는 ‘T’자형을 하고 있는데 왼쪽 끝에 누마루를 두고 있다. 안채 앞에는 사랑채와 직각을 이룬 작은 사랑채가 있다. 안채는 ‘ㅁ’자형을 하고 있는데 상당히 규모가 큰 편이다. 가운데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방과 부엌, 광 등이 배치되어 있다. 안채 오른쪽에는 불천위 조상을 모신 사당이 배치되어 있다.

 

이 집은 삼수부사와 낙안군수를 지낸 무관출신 유이주가 구한말에 처음 지었다고 한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금반지가 떨어진 자리(金環落地)’라 하여 명당자리로 여겨진 곳이다. 운조루가 있는 마을은 섬진강과 지리산에서 발원한 크고 작은 하천들이 합류하면서 비교적 넓은 평야를 형성하고 있는 구례지역에서 하류쪽에 위치하고 있다. 지리산 계곡이 들판과 만나는 지점으로 물이 풍족해서 농사짓기에 적합한 곳이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터를 잡고 살았던 마을의 지리적인 조건들을 잘 갖추고 있다.

 

호남지방을 대표하는 대저택인 구례 운조루. 구한말 삼수부사 등을 지낸 무관출신 유이주가 지은 저택이다. 개방적인 남도지방의 주택형식대신 'ㅁ'자형 안채를 중심으로 건물들이 배치된 안동지방 주택양식을 하고 있다.

 

운조루 저택 앞에 꾸며 인공적으로 꾸며놓은 연못. 지리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어 물이 풍부한 고장으로 연못을 크게 조성해 놓고 있다. 농업용수 공급의 목적도 있는 듯 하다.

 

저택 출입문인 솟을대문. 운조루를 처음 지은 유이주가 잡았다고 전해지는 호랑이뼈가 솟을대문에 걸려 있다.

 

솟을대문에서 보이는 운조루. 오른쪽에 살림집인 'ㅁ'자형 안채가, 왼쪽에 바깥주인이 머물면서 손님을 접견하는 사랑채가 배치되어 있다.

 

 

운조루 바깥행랑채. 창덕궁 낙선재나 연경당 등에서 볼 수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행랑채이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첫번째로 보이는 안채에 딸린 누마루와 작은 사랑채. 누마루에서 집안 마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안채로 들어가는 경사로를 만들어 가마가 중문까지 들어올 수 있게 하고 있다. 경사로 왼쪽편에 잘 보이지 않지만 낮은 굴뚝이 있다.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에 놓여진 ‘타인능해’. ‘타인능해’란 쌀 두 가마니 반이 들어가는 나무독에 쌀을 채워놓고 마을에 가난한 사람이 끼니를 이을 수 없을때 마개를 돌려 쌀을 빼다가 밥을 짓도록 허용한다는 뜻으로 쌀독의 마개에 “타인능해”라고 써 놓았다.

 

안채는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양쪽에 방과 부엌 등이 배치된 날개채를 두고 있다.

 

안채 생활공간의 중심이 되는 대청마루.

 

안채 오른쪽 날개채. 사당으로 연결되는 출입문과 부엌, 난간이 있는 2층 다락방이 있다.

 

안마당 장독대.

 

안채 대청마루 왼쪽 부엌. 사랑채 뒷마당으로 연결된다.

 

 

운조루 사랑채. 넓은 대청마루와 온돌방, 누마루로 되어 있으며, 안채와 건물이 연결되어 있다.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건물이 올려져 있으며, 툇마루 앞에는 작은 화단을 꾸며놓고 있다.

 

운조루 사랑채 누마루.

 

사랑채 뒷마당.

 

안채 동쪽편에 위치한 사당.

 

 

운조루 사당.

 

구례 운조루 앞 넓은 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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