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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이야기

전탑(塼塔), 벽돌로 지은 탑

younghwan 2021. 10. 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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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파(塔婆, Pagoda)는 스투파(Stupa)에 어원을 둔 단어로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신 무덤 건축물을 말하며 불탑(佛塔) 또는 탑이라 부른다. 인도에서는 봉분 형태의 구조물에 상륜부를 얹은 형태였는데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목조건축물인 무덤 앞 사당 형태로 바뀌게 되었다. 전탑(塼塔)은 벽돌로 지은 탑을 말하며 목탑을 모방했는데 재료의 특성과 축조방식에 따라 지붕이 간략화되는 등 외형에서 목탑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삼국시대 산동지방을 통해 전래되면서 신라의 영역이었던 남한강 유역과 경북 북부지방에서 전탑이 주로 조성되었으며 전탑을 모방한 모전석탑도 많이 세워졌다. 전탑의 재료의 특성으로 원형이 크게 변형되거나 훼손되어 현재 한반도는 5기의 전탑만이 남아 있다. 

<전탑과 모전석탑>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국보)

안동시 법흥동 법흥사(法興寺) 옛 절터에 남아 있는 이 탑은 현존하는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이다.  탑은 1층의 기단 위에 7층의 탑신을 쌓아 올렸다. 높이 17m, 기단너비 7.75m의 거대한 규모에도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탑의 기단부에는 화강암으로 조각된 사천왕상과 팔부중상이 새겨져 있다. 탑의 중앙에는 계단을 설치하여 1층 몸돌에 설치된 감실과 연결하고 있다. 탑의 지붕에는 기와를 얹은 흔적이 있어 전탑이 목탑을 모방하여 만들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국보)>
<기단부>
<기단부를 장식하고 있는 사천왕상과 팔부중상>
<1층 감실>
<기와를 얹은 흔적이 남아 있는 지붕돌>

안동 운흥동 오층전탑(보물) 

경북 안동시 운흥동에 있는 이 탑은 통일신라 때 세워졌는데 규모가 크지는 않은 편이다. 탑은 높이 8.35m이며, 무늬없는 벽돌로 5층을 쌓았다. 1층에는 불상을 모시는 감실을 설치했으며, 2층에는 인왕상을 새긴 화강암 판석을 붙였다. 처마 너비가 매우 짧으며, 처마끝에는 기와를 올려 놓았다. 탑의 꼭대기에는 금동제 머리장식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안동 운흥동 오층전탑(보물)>
<감실이 있는 1층>
<2층 몸돌 남쪽에 배치한 인왕상>
<지붕이 간략화된 상층부>

안동 조탑리 오층전탑(보물)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에 있는 이 탑은 화강암 석재와 벽돌을 섞어서 만든 우리나라 전탑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층 몸돌 남쪽에는 감실을 만들었으며 그 양쪽에 인왕상을 새겼다. 벽돌로 쌓았기 때문에 지붕돌 처마 너비가 좁고, 매끈하지 않으며, 다른 전탑과는 달리 기와를 얹이 않았다. 전체적인 비례에서 주는 조형미나 세부적인 표현 등이 떨어지는 편이다.

<안동 조탑리 오층전탑(보물)>
<1층 감실과 인왕상>
<지붕돌, 기와를 얹은 흔적이 없다.>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보물)

경북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 송림사에 이 탑은 통일신라 때 중국에서 가져온 부처님 사리를 모시기 위해 세워졌다. 기단은 석탑과 마찬가지로 화강암 석재를 가구식으로 조립하여 쌓았으며 그 위에 벽돌로 탑신을 쌓아 올렸다. 전체 높이 16 m로 상당히 높은 편인데 각층의 지붕돌을 넓게 만들어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있다. 꼭대기에는 금동으로 만든 머리장식을 복원해 놓아 통일신라 전탑의 상륜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전탑 중 그 원형이 잘 남아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보물)>

감실이 있는 다른 전탑과는 달리 1층에는 불상을 모신 감실이 없다. 2층 지붕 부분에서 통일신라 사리갖춤(보물 325호)이 발견되었다.  사리를 모시고 있어 불상을 모시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층>
<2층 지붕에서 발견돤 사리갖춤(보물)>
<상층부>
<원형을 복원해 놓은 상륜부>

여주 신륵사 다층전탑(보물)

경기도 여주시 천송동 신륵사에 있는 이 탑은 화강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벽돌로 몸돌을 쌓고 그 위에 화강암으로 만든 복발, 보개, 보주 등이 얹혀 있다. 기단부를 비교적 높게 쌓아 남한강을 비롯하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탑신 벽돌에는 연주문과 당초문을 조각해 놓고 있다. 벽돌에 새겨진 무늬 등으로 볼 때 고려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여주 신륵사 다층전탑(보물)>
<화강석으로 높게 쌓은 기단부>
<벽돌로 쌓은 탑신>
<화강석으로 만든 상륜부>

시안 대자은사 대안탑(大雁塔)

중국 시안시 대자은사(大慈恩寺)에 있는 대안탑(大雁塔, Wild Goose Pagoda)은 당고종 때인 652년 현장법사가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에서가져온 불경을 비롯한 유물을 보존하기 위해 세워졌다. 처음에는 5층으로 지어졌으나 측천무후(則天武后) 때 무너진것을 수리하면서 10층으로 증축하였으며, 명나라 때 지진으로 손상된 것을 수리하면서 현재와 같이 7층으로 바뀌었다. 1959년에 현재의 모습을 수리되었다. 중국의 대표하는 전탑 중 하나로 당나라 건축과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이 되어왔으며 많은 기록을 통해 그 역사가 전해내려오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장안(長安, 현 시안시)의 랜드마크가 되었던 유서깊은 탑으로 통일신라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 일본 헤이안시대 교토 도지(東寺) 오층목탑과 함께 동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시안 대자은사 대안탑>
<벽돌로 쌓은 기단부>
<7층으로 된 탑신>
<1층 출입문>
<벽돌로 쌓은 지붕과 탑신>
<대안탑 1층 내부>
<내부에 설치한 계단>
<6층 창문>
<창문으로 내려다 보이는 시안시 도심>

시안 천복사 소안탑(小雁塔)

시안 천복사 소안탑(小雁塔, The small wild goose Pogoda)은 당나라 때 (707년) 처음 세워졌다.  천복사가 화엄종 중심 사찰이었기 때문에 화엄탑(華嚴塔)으로도 불렸으며 명.청대 대자은사 대안탑과 비교되어 소안탑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벽돌로 쌓은 15층 전탑(塼塔)이었는데 여러차례 지진으로 손상되어 여러 차례 중수되었으며 1965년 옛방식으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나라 전탑(塼塔)의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며 동시대를 대표하는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시안 천복사 소안탑>
<벽돌로 쌓은 기단부>
<탑신>
<1층 출입문>
<탑신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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