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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여주 신륵사 다층전탑(보물 226호)과 삼층석탑, 남한강 수로와 나룻터 이정표가 되었던 탑

younghwan 2013. 4. 12.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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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륵사 경내 동쪽편 남한강가 넓은 바위에는 다층전탑과 작은 삼층석탑이 자리잡고 있다. 벽돌로 쌓은 전탑은 신륵사를 찾는 사람뿐만 아니라 배를 타고 남한강을 오가는 많은 선박들에게 등대나 이정표같은 역할을 했던 탑이다. 다층전탑은 벽돌로 쌓아서 만든 전탑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조선 시대에 중건하면서 옛모습고 벽돌로 쌓은 전탑은 우리나라에서는 많지 않은 형태이고 많은 나람들이 오가는 남한강 나루터에서 눈에 띄는 이정표가 되었기때문에 신륵사를 벽절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전탑 아래 바위 위에는 고려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는데, 신륵사에서 입적한 나옹화상을 화장한 장소라고 한다.

신륵사 다층전탑

 탑은 화강석으로 쌓은 기단위에 벽돌로 몸돌을 쌓고 그 위에 화강암으로 만든 복발, 보개, 보주 등이 얹혀 있다. 기단부는 7층으로 쌓아 남한강을 비롯하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탑신을 구성하는 벽돌에는 연주문과 당초문을 조각해 놓고 있다. 사찰에서 신앙의 중심 탑에서 불전으로 바뀐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석탑으로 그 조형미는 뛰어나다고 보기 힘들며, 강가 언덕에 남한강을 운항하는 배들과 나룻터를 오가는 사람들의 눈에 띄기 쉽도록 웅장함을 강조한 석탑이다.

신륵사 다층전탑, 보물 226호,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천송리
이 탑은 우리나라에서 남아 있는 고려 시대의 유일한 전탑으로, 높이는 9.4m이다. 이 탑의 기단부는 화강암을 사용하여 7단의 층단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탑신부는 여러 단의 벽돌을 쌓아서 만들었는데 몸돌에 비해 지붕돌은 매우 간략하게 처리되어 있다. 탑을 구성하고 있는 벽돌에는 이중의 반원 사이에 연주문과 당초문을 조각하였으나 배치가 일정하지 못하며, 신라시대의 전탑이 거의 간격을 두지 않고 벽돌을 쌓은데 비해 이 전탑은 벽돌 사이를 띄워 그 사이에 면토를 발랐다. 상륜부는 전으로 반든 노반 위에 화강암으로 만든 복발, 보개, 보주 등이 얹혀 있다. 이 탑의 건립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벽돌의 문양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로 보는 견해가 많은데, 탑 북쪽에 있는 수리비 내용에 의해 조선 영조2년(1726)에 고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출처:여주군청>


신륵사 다층전탑. 벽돌로 쌓아 만든 전탑으로 남한강으로 내려다 보고 있다. 신륵사가 있는 이 곳은 조포나루라고 불리며, 이포나루, 광나루, 마포와 함께 한강의 4대 나루터로 불리며, 육상 수운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이 신륵사 다층전탑은 남한강을 오가는 많은 나룻배들에게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화강암으로 쌓은 7단의 기단석. 남한강을 오가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탑을 볼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기단을 높게 쌓은 것으로 보인다.


탑신은 벽돌로 쌓았는데 벽돌간격을 넓게하여 당초문 등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벽돌로 약간 돌출시켰는데 일반적인 전탑의 지붕돌에 비해서도 작게 만들었다.


이 전탑의 상륜부는 화강석으로 만들어졌는데, 우리나라 탑 중에서 상륜부가 남아 있는 많지 탑 중 하나이다.


바위 아래에서 올려다 보이는 신륵사 다층전탑


2009년 여름


2013년 봄

신륵사 삼층석탑

 이 석탑은 남한강변 바위 위에 단층기단과 탑신을 올려 놓은 삼층석탑이다.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남한강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장식적인 의미를 갖는 석탑으로 보인다. 전형적인 고려시대 석탑으로 크기도 작고,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긴것 외에는 장식을 거의 하지 않은 소박한 석탑이다. 석탑의 크기는 작지만 남한강을 배경으로 바위에 올려진 작은 석탑은 신륵사를 대표하는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고려말 이절에서 입적한 나옹화상을 화장한 장소에 탑을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탑은 화강암을 깎아 만든 3층탑으로 고려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여주 신륵사 경내 강변 암반에 위치해 있다. 탑을 지탱하고 있는 제일 아랫부분인 기단부는 한 장의 넓직한 돌 위에 사각형의 석재를 올려놓고 그 위에 덮개에 해당하는 상대석을 덮었다. 기단부는 바로 위에 놓여 있는 탑신에 해당하는 돌의 네 모퉁이에는 기둥모양이 조각되어 있으나, 마모가 심하여 알아보기 힘들다. 그 위에 목조건축물의 지붕과 같은 형태로 옥개석을 덮었다. 옥개석은 기울기가 비교적 완만한 편이고, 옥개석 아랫부분에 새겨진 받침은 3단 내지 4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형태로 3층의 탑신과 옥개석이 쌓여 있으나, 현재 3층 탑신석은 결실된 상태이다. 탑의 맨 꼭대기를 장식하는 구조물인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다. 고려후기 나옹화상을 화장한 장소에 탑을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그 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탑은 조각이 부드럽고 탑신부의 짜임새가 간결하여 고려후기 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출처:여주군청>


전탑 아래 바위에 세워진 작은 삼층석탑. 사찰에서 신앙의 중심이 탑에서 불전으로 바뀐 고려시대에서도 말기에 제작된 정형화된 삼층석탑이다. 석탑자체는 소박하지만 남한강변 바위에 세워져 남한강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이 석탑은 바위를 기단석으로 삼아 세웠기때문에 탑신을 올린 기단을 아주 낮게 만들었다.


3층으로 이루어진 탑신은 1층은 높게 위층은 낮게 만들었는데 3층탑신 몸돌과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다.


2009년 여름


2013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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