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성곽(산성_읍성)

임진왜란때 왜장 소서행장(小西行長)이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던 순천 왜성(倭城)

younghwan 2010. 1. 24. 13:39
반응형


 순천왜성은 국내에 있는 왜성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본래의 모습이 제대로 보존되어 있는 왜성입니다. 정유재란 당시 육전에서 패퇴한 왜군이 호남을 공략하기위한 기지로 삼기위해 토석성입니다. 성벽을 쌓은 돌의 크기나 모양이 우리나라의 성벽과는 다르고 일본 각 지역에 있는 성들과 비슷합니다. 순천왜성 전체도 내성과 외성의 형태로 여러단계의 방어를 위한 성벽이 있는 것이 전형적인 일본 성곽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장 소서행장(小西行長)이 이끈 1만 4천여명의 왜병이 주둔 하여 조·명연합군과 두차례에 걸쳐 격전을 벌였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 성에서 동쪽 광양만 쪽을 멀리 보면 이순신 장군께서 전사하신 노량해협이 어렴풋이 보이는 듯하고 광양제철소의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본고유의 양식으로 쌓은 순천왜성으로 보존이 거의 완벽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최근에 수리를 통해서 원형과 비슷하게 만들었겠지만 성곽을 쌓는 돌의 모양과 형태는 바뀌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안가 구릉의 제일 높은 곳입니다. 이 정도의 위치에 나고야성이나 오사카성 같은 천수각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 올라서면 광양만이 굽이 내려볼 수 있고, 사방이 뚫려있습니다.

천왜성을 오르는 길입니다. 순천왜성은 해안가 낮은 산봉우리를 성벽으로 둘러싸고 있는데 순천왜성이 있는 봉우리의 높이나 산의 형태가 일본의 오사카성 등과 비슷합니다.

일본 성곽의 전형적이 양식으로 지휘부가 있는 언덕에 오르기까지 여러겹의 성을 쌓아 놓고 있습니다. 뒷쪽편에 마을이 보이고 그 뒷산에는 우리나라에서 왜구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쌓은 검단산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두개의 성을 보면 두나라의 성을 쌓는 장소나 개념의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일본에서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한 지 얼마되지 않았을 시절입니다. 일본은 임진왜란 전 수백전 동안 내전을 치러왔기 때문에 당시에는 성을 쌓는 기술이 발달했던 것 같습니다. 조선으로 원정 온 일본군들이 빠른 시일내에 이런 견고한 성을 쌓았습니다.

멀리 보이는 광양만입니다. 광양제철소의 굴뚝이 보이고 있고 찾을 수는 없지만 노량해협이 있습니다.

광양만 반대편 순천쪽입니다.

순천왜성 올라가는 입구에 현재 새로 쌓고 있는 성벽입니다. 일본이 성을 쌓는 방식과 약간 다르게 복원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 있는 읍성이나 산성과 비슷한 모양새로 쌓는 것처럼 보입니다.

순천왜성은 지금도 복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원래는 규모가 아주크게 성을 쌓아서 여러겹의 성벽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남해도에서 바라본 순천왜성이 있는 광양만입니다. 멀리 순천왜성이 보인다고 간주합니다.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 있는 낮은 구릉지대에 내.외성 2중으로 돌로 쌓아 만든 성이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왜장 소서행장이 일본군의 호남 공격을 위한 전진기지 겸 최후 방어기지로 삼기 위하여 쌓은 왜성이다. 순천 왜성은 왜교 또는 예교라 하며 일본사람들은 순천성이라 부르고 있고, 1997년 1월 국가 사적 제49호에서 해제되기 전까지는 '승주 시성리성'으로 불려왔다. 성벽은 외성 3첩과 내성 3첩으로 쌓았는데 내성만 그 흔정이 분명하고 외성은 분명치 않으며, 성 주위에는 연못을 둘러판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성은 1598년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과 소서행장이 이끄는 왜군 사이에 최대의 결전이 벌어진 곳이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소서행장을 노량 앞바다로 유인하여 대승을 거둔 유서깊은 곳이기도 하다. <출처:문화재청>

정유재란(1597年) 당시 육전에서 패퇴한 왜군선봉장 宇喜多秀家(우끼다히데이)와 堂高虎(도오다까도라)가 호남을 공략하기위한 전진기지겸 최후 방어기지로 삼기위해 3개월간 쌓은 토석성으로 왜장 소서행장(小西行長)이 이끈 1만 4천여명의 왜병이 주둔 하여 조·명연합군과 두차례에 걸쳐 격전을 벌였던 곳으로 남해안 26왜성중 유일하게 한곳만 남아 있다. 순천왜성은 수륙요충지로서 성곽 규모가 36,480평, 외성2,502m, 내성 1,342m로 외곽성(토석성)3개, 본성(석성) 3첩, 성문 12개로 축조된 성곽으로 검단산성쪽의 육지부를 파서 바닷물이 차도록 섬처럼 만들고 연결다리가 물에 뜨게하여 예교,왜교성이라 하며 일인들은 순천성이라 부르고 있다.  임진란 패인이 전라도의병과 수군의 용전에 있었다고 보고 전라도를 철저히 공략키 위해 풍신수길의 야심에따라 전라도 각처에 진지를 구축해 공세를 강화하였으나 무술년(1598연)8월 그가 급사후 왜성에 주둔해 있던 침략 최정예부대인 소서행장 왜군과 조·명 수륙연합군 사이에 2개월에 걸친 최후·최대의 격전을 펼친곳이다. 순천시가지에서 여수쪽으로 6㎞쯤 가다가 왼쪽 으로 6㎞를 가면 200여호가 사는 신성리 마을과 이충무공을 배향한 충무사가 있고 남쪽 200m 지점 광양만에 접한 나즈막한 송림에 위치한 왜성은 유정.권율이 이끄는 육군 3만6천, 진린,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 1만 5천병력이 왜성을 비롯 장도등을 오가며 왜군을 격멸했고 이충무공이 27일간을 머물면서 전사 하루전 소서행장을 노량 앞바다로 유인하여 대첩을거둔 유서깊은 전적지로서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역사의 산교육장이기도 하다. <출처: 순천시청>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