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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산성_읍성)

고려시대 대몽항쟁의 현장 강화산성 (고려성)

younghwan 2009. 12. 26.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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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산성은 강화도 내에서 대몽항전을 수행했던 강화읍내에 있는 성입니다. 정식명칭은 강화산성입니다만 산성으로 분류할 수도 있고 읍성으로 분류할 수 있는 성입니다. 북쪽으로는 대몽항전씨 최씨정권이 개성을 생각하며 이름지은 송악산과 남쪽의 고려산을 연결하여 강화읍내를 둘러싸고 있는 성으로서 국방상 상당히 중요했던 성으로 여겨집니다. 지금 남아 있는 강화산성은 강화도를 둘러싸고 있는 성(城) 중에서 내성(內城) 역할을 했던 성이고 요지를 연결한 중성(中城)과 해안가의 외성(外城)으로 겹겹히 강화를 지키고 있었다고 합니다. 몽고와의 화친 후와 병자호란 이후에 강화의 궁궐 건물과 성벽 등 방어 시설을 모두 파괴하였다고 합니다.

※ 강화산성 탐방
 1. 강화산성 서문/석수문/연무당 옛터              2. 강화산성 남문
 3. 강화산성 동문                                          4. 강화산성 북문
 5. 고려궁지                                                 6. 강화유수부 동헌/이방청
 7. 외규장각/강화동종                                    8. 성공회 강화성당
 9. 강화외성(벽돌로 쌓은 전성)

강화산성 위성사진 (출처:야후지도)

강화읍 뒷산을 이루고 있는 송악산 고갯길에 있는 북문과 성루인 진송루입니다. 이 곳에서 보며 강화산성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산성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북쪽의 송악산과 남쪽의 고려산 부근을 제외하면 산성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이름은 강화산성입니다. 북문이 있는 송악산은 고려시대 몽고와의 전쟁때 강화도로 천도한 무신정권이 고향의 개성의 송악산을 생각하며 붙힌 이름이라고 합니다. 송악산 북문으로 오르는 길에는 벚나무가 심어져 있고 강화읍내가의 전경이 잘 보이는 아름다운 길 중에 하나입니다.

강화산성 북문 주위의 성벽입니다. 산능선을 이용하여 성벽이 쌓았습니다.

강화도를 둘러싸고 있는 강화산성의 서쪽 방향 정문입니다. 성루의 이름은 첨화루로 되어 있고 남쪽의 고려산과 강화읍 북쪽 송악산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이 성문 앞에서 고려산을 넘어 내가면으로 가는 길과 북쪽으로 하점면 쪽으로 가는 국도가 갈라지는 삼거리가 있습니다.

강화산성 서문 주위의 성벽입니다. 평지에 성벽을 쌓았습니다. 강화도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 중에 내성의 역할을 했던 까닭에 성벽이 높지 않고 성문에 옹성도 없습니다.

문화재로 지정된 강화석수문입니다. 성 내부에서 본 모습입니다. 고려산에서 흘러내려오는 개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강화산성 서문 안쪽에는 구한말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장소인 연무당을 표시하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강화산성의 남문입니다. 정식 명칭은 '강도남문(江都南門)' 이라고 현판에 적혀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서울에서 강화로 출입하는 정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 성문으로 남문을 들어서면 강화읍내 시장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남문과는 강화도 남쪽 지역과 도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강화산성 남문 주위의 성벽입니다. 남쪽으로는 고려산 능선을 따라서 성벽이 있고 동북쪽 방향으로 강화읍내 평지에 성벽을 쌓고 있습니다. 평지인 강화읍내에는 지금은 성문 주위에 약간의 성벽만 남아 있습니다.

강화동종입니다. 진품은 강화역사관에 보관되어 있고 복제품이 강화 고려궁지 내부에 있습니다. 원래 시장과 가까운 강화산성 남문에 걸려 있던 종으로 주민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강화성의 동문인 '강도동문(江都東門)'입니다. 신미양요때 소실된 것을 최근에 복원해 놓았습니다. 복원할 때 옛날 성문과 비슷하게 복원했으면 좋았을텐데 너무 현대식 건축자재를 사용해서 고풍스러운 멋이 없어졌습니다. 동문은 서울에서 오는 관리들과 일반 사람들이 출입하는 문으로 강화의 행정중심지인 고려궁지에 있는 강화유수부 동헌과 가까이 있습니다.

강화산성에 대한 안내표지판

강화 고려궁지는 고려시대 궁굴이 있던 장소입니다. 몽골의 침략시 무신정권은 강화로 수도를 옮긴 후 이곳에 궁궐을 건립하였습니다. 몽고와의 항쟁기간인 39년 동안 이 곳을 궁궐로 사용하였으나 몽골과 화친할 때 몽골의 요구로 궁궐과 성곽 등을 모두 파괴하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도 이곳에는 국왕의 행궁이 있었으나 병자호란 이후에는 행궁을 짓지 못하고 단지 강화유수부 동헌과 부속 건물만이 이 곳에 지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북방 민족과의 항쟁에서 강화도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방상의 요지였기 때문에 중국의 북방 민족이 세운 정권인 원나라와 청나라는 한반도 침략 이후 강화도의 군사/행정 시설들을 모두 파괴하였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유수부 동헌과 이방청도 말만 지방 관청이지 건물의 규모나 형태로는 서울에 있는 궁궐과 비슷한 형태로 지어져 있습니다.

성공회 강화성당에서 바라본 고려궁지와 강화산성이 있는 송악산의 풍경입니다.

강화해안에 오두돈대 아래에 있는 벽돌로 쌓은 전축성인 강화전성입니다. 강화산성을 구성하고 있는 강화외성 중의 일부분으로 대몽항쟁 기간부터 존재해 왔던 성벽입니다. 원래는 토성이었으나 조선후기에 벽돌로 쌓았다고 합니다. 이 강화외성의 전축성은 수원화성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한 전축성이며 수원 화성보다 쌓은 연대가 약간 빠르다고 하며, 건축사적으로 의미있는 유적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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