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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봉우리중의 하나인 비봉은 삼국시대 신라가 한강유역을 장악하고 진흥왕이 순수비를 세운 곳이다. 그 만큼 한강유역을 장악함에 있어 북한산성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비봉은 산봉우리가 험해서 올라가기는 쉽지 않은 곳이라 아래에서만 감상해 보았다.
비봉 아래에서 본 진흥왕순수비(복제품)
순수비가 있는 비봉을 오르기는 약간 위험합니다.
멀리서 바라본 비봉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진흥왕 순수비
북한산에 세워졌던 신라 진흥왕비의 옛 자리이다. 북한산비는 비석을 세운 이래 1,200여 년 동안 잊혀져 오다가 19세기 전반에 추사 김정희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북한산비에는 진흥왕이 북한산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지나온 여러 고을에 세금을 면제해 주고, 죄수들을 석방하도록 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북한산비의 ‘남천’이란 글자를 통해 4개의 진흥왕비 가운데 가장 늦은 재위 29년(568)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보았으나, 연구가 진전됨에 따라 오히려 북한산비를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보는 견해가 옳은것 같다. 진흥왕이 북한산의 이곳저곳을 다닌 것은 555년 이외에는 달리 확인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 비는 신라가 이 지역을 점령한 553년 이후부터 창녕비가 건립된 진흥왕 22년(561) 이전의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현재 이곳에는 비석이 놓였던 자리와 비석을 꽂았던 홈이 남아 있으며, 비석의 옛터임을 알려주는 표지가 서 있다. 우리나라에서 광개토왕비 다음가는 귀중한 금석문으로 1934년에 국보 제3호로 지정되었으나,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래쪽이 떨어져 나가고 한국전쟁시 총탄자국이 생기는 등 보존대책이 필요하여 1972년에 경복궁으로 옮겼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 보존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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