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문당은 법전인 명정전 뒷편에 임금이 거처하던 문정전과 함께 자리잡고 있다. 이 숭문전이 그 역할을 하는 곳으로 건물의 크기는 크지 않지만 조용한 분위기로 학문과 국사를 논의 하기에 적당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 국왕이 주로 거처하며 정사를 논의하던 곳은 창덕궁이며, 창경궁 정전과 편전은 그리 많이 사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편전의 부속건물이라 할 수 있는 숭문당은 창덕궁에서 성균관으로 가는 길에 있으며, 궁궐 후원과도 가까운 까닭에 창덕궁에 비해서 일상적인 업무에서 벗어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공간으로 국왕이 정치를 벗어나 학자들과 학문을 논하기 좋은 분위기를 하고 있어 많이 이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영조는 이곳에서 성균관 유생들을 접견하고,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함인정은 명정전 뒷편 언덕 마당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정자로 사방이 개방된 형태를 하고 있다. 이 곳은 국왕이 문.무과 장원급제자를 접견하거나 기존 관료들이나 성균관 유생들에게 시험을 실시하던 장소였다고 한다. 대체로 숭문당과 함께 국왕이 정사에서 벗어나 학자들과 학문을 논하는 장소로 사용된 곳이라 할 수 있다. 숭문당과 함인정 일대는 경복궁 경회루 앞에 세워졌던 집현전이 있었던 수정전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숭문당과 함인정
숭문당과 함인정은 명정전의 후전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숭문당은 임금이 신하들과 경연을 열어 정사와 학문을 토론하던 곳으로 1830년에 다시 세웠다. 앞족에 설치한 누각형 툇마루로 출입하였고, 영조 임금의 친필 현판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함인정은 문무 과거에 급제한 신하들을 접견하던 곳으로 1833년에 다시 세웠다. '세상이 임금의 어짊과 의로움에 흠뻑 젖는다'는 건물 이름의 뜻을 상징하듯, 사방이 터진 개방형 건물이다. <출처:문화재청>
숭문당은 앞면 4칸, 옆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궁궐건물이라기보다는 양반 사대부가의 사랑채와 비슷한 형태로 지은 건물이다. 경사진 지형을 활용하여 앞쪽에 초석을 세우고 툇마루를 설치하여 정자와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궁궐건물이지만 잡상을 설치하지 않고, 처마도 홑처마를 사용하고 있다. 경종대에 이 건물을 처음 지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화재로 불탄것을 순조대에 중건한 것이라고 한다. 주로 영조가 많이 사용한 건물이라 할 수있다.
숭문당은 건물의 크기가 아담하고 주위에 임금이 거처하던 문정전 외에는 다른 건물들이 없기 때문에 사색이나 독서 등에 적합한 건물 구조로 보인다.
숭문당 현판. 원래의 것은 영조가 직접쓴 글씨라고 한다.
숭문당은 경사진 지형의 앞쪽에 툇마루와 난간을 설치하여, 문을 열면 정자와 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다.
숭문당 툇마루를 받치고 있는 초석들
숭문당은 뒷편에 있는 작은 마루를 통해서 출입할 수 있으며, 사방에 문을 달아내어 개방된 느낌을 주는 공간이다. 궁궐건물이지만 문살에 특별한 장식을 하고 있지는 않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간단한 초익공 공포를 사용하고 있으며, 처마는 홑처마를 사용하여 일반 사대부 사랑채처럼 만들었다.
뒷편 언덕에서 본 숭문당
2009년 숭문당
숭문당 옆으로는 정전과 내전을 연결하는 출입문인 빈양문이 있고, 정전까지는 복도를 설치해 놓고 있다.
빈양문에서 정전이 명전전까지 연결된 복도. 바닥에는 전돌을 깔아 놓고 있다.
명정전과 숭문당 사이 마당.
빈양문과 숭문당
숭문당 뒷편에 있는 작은 정자인 함인정입니다. 경회루 등의 공적인 누각과는 달리 정자로서 사적인 대화를 나누거나 친밀도 높은 대화를 나누기에 적합한 곳이라 생각된다. 이곳은 국왕이 학자들이나 신하들을 접견하는 장소로 사용된 공간으로 영조는 이곳에서 문무과에 장원급제한 사람들을 접견하였다고 한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에 4면이 개방된 형태를 하고 있는 정자이다. 공포는 이익공 공포를 사용하였고, 지붕은 팔작지붕에 겹처마를 하고 있다. 궁궐건물로서 단청으로 건물들 장식하고 있다.
함인정 현판.
지붕은 팔작지붕에 겹처마를 하고 있으며, 단청으로 장식하고 있다.
내부 천정은 안쪽에는 우물천정을, 바깥쪽에는 연등천정을 하고 있다. 천정아래에 중국 시인 도연명이 지은 시가 동서남북에 배치되어 있다.
바깥쪽 천정에 걸려 있는 글.
마루는 우물마루를 하고 있으며, 국왕이 앉는 자리로 보이는 가운데 마루는 1단 높게 설치해 놓고 있다.
이곳에는 원래 성종대 창경궁을 창건할 때 인양전이라는 건물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이후에 이곳에 함인정을 세웠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순조대에 중건한 것이라고 한다.
2009년 함인정
함인정 앞 마당에 남아 있는 오래된 고목
함인정 앞 마당
함인정 주변. 함인정 뒷편으로 왕비가 거처하던 경춘전과 왕이 거처하던 환경전이 있다.
2009년 함인정 주변
'궁궐_종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경궁] 통명전(보물818호)과 양화당, 대비가 거처하던 창경궁의 중심 공간 (0) | 2012.09.14 |
---|---|
[창경궁] 환경전과 경춘전, 국왕과 왕비가 거처했던 내전 건물 (0) | 2012.09.14 |
[창경궁] 편전인 문정전,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곳 (1) | 2012.09.11 |
[창경궁] 정전인 명정전 (국보226호),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궁궐 정전 (0) | 2012.09.11 |
[창경궁] 명정문 및 행각(보물 385호), 품계석이 세워져 있는 정전 앞 마당 (0) | 2012.0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