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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289

[국립중앙박물관 금속공예실] 감은사터 사리갖춤

삼국을 통일한 신라 문무대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동해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사찰이었던 감은사지에 남아 있는 두개의 탑에서는 각각 출토된 사리갖춤이다. 서탑 사리갖춤은 1959년에 해체 수리과정에서 출토되었고, 동탑 사리갖춤은 1996년 해체 수리과정에서 다시 한번 출토되었다고 한다. 2개의 사리갖춤의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아마도 2개의 사리갖춤이 출토된 시기가 40년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은 먼저 출토된 서탑에서만 사리갖춤이 있을 것이라고 당시 사람들이 생각한 것으로 보이다. 감은사터 사리갖춤의 금동 사각 외함에는 네면에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는데, 그 조각수법이 상당히 뛰어나고 일반적인 우리나라나 중국의 조각수법이 아닌 중앙아시아의 조각상과 비슷하다고 한다. 경주 사천왕사에서 발굴된 녹유사천왕상..

중앙박물관 2010.08.29

국립경주박물관 - 사천왕사터에서 발굴된 녹유사천왕상

경주 황룡사, 불국사와 함께 통일 신라시대 대표적인 사찰인 사천왕사 목탑터에서 발굴된 유물 중 가장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녹유사천왕상이다. 녹유전에 있던 이 사천왕상 부조는 그 표현 방법이 매우 섬세하고 사실적이다. 간다라 미술에서 유래한 그리스 조각의 사실적 표현방법이 석굴암 불상과 함께 잘 구현된 작품으로 보인다. 이 사천왕상을 만든 사람은 양지스님이라고 전해지는 데 그 예술성과 천재성이 뛰어난 점, 당시의 다른 작품들과 구분되는 점으로 보아서 중앙아시아 계통 사람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많은 분이다. 이 녹유사천왕상을 보면 그리스 조각 작품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들고, 상당히 섬세하고 사실적인 표현이라는 느낌이 비전문가에게도 들게 해 준다. 경주 사천왕사터에서 발굴된 녹유사천왕상. 하반신은 1936..

중앙박물관 2010.08.29

[국립중앙박물관 금속공예실] 사리갖춤 (사리엄장구)

불교가 전파된 이래 전국 각지 사찰에서 세워진 탑은 석가모니 사후에 시신을 화장해서 나온 유골인 사리를 보관하는 곳으로 불교 신앙의 중심이 되는 대상물이었다. 이 탑에는 보통 부처의 사리를 보관하고 있는데 초기 불교 사원인 사찰의 가람배치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이었다. 현재는 그리스의 헬리니즘에 영향을 받아서 생긴 간다라 불상의 영향으로 신앙의 중심이 불상과 불상을 모신 불전을 중심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부처의 사리는 그 숫자가 유한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리갖춤은 탑에 사리를 봉안하는 보관함으로 사리는 일반적으로 유리나 수정용기에 담고, 그 용기는 다양한 재질의 용기에 넣어서 탑에 안치한다. 탑과 사리가 당시 불교 신앙의 중심이었기때문에 사리갖춤은 당시 금속세공을 비롯하여 모든..

중앙박물관 2010.08.28

[국립중앙박물관 금속공예실] 공양탑, 여의, 가사띠장식, 지팡이머리, 청동금강저

중앙박물관 금속공예실에 불교의식구로 분류되어 전시되어 있는 유물들이다. 공양탑은 지금도 거대한 건축물의 모형이 많이 있듯이 당시에 있었거나 전해오는 목탑이나 석탑의 모형으로 탑에 넣거나 전각 내부에 전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의, 가사띠장식, 지팡이머리 장식은 주로 고승들의 위엄을 강조해 주던 생활용구라 할 수 있다. 아마도 서유기에 손오공이 들고 다니던 여의봉과 삼장법사의 모습을 연상하면 그 용도가 쉽게 떠 오를 것 같다. 금강저는 라마교 영향을 받아서 사용되었던 밀교법구로 번뇌를 깨뜨린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 것으로 일반적인 불교의식구는 아닌 것 같아 보인다. 공양탑, 청동소탑 (고려, 13~14세기). 청동으로 주조해서 만든 공양탑으로 황룡사 목탑같은 모습보다는 서유기에 등장하는 목탑의 모습을 연상..

중앙박물관 2010.08.26

[국립중앙박물관 금속공예실] 불교 의식구 중 향완, 향로, 정병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많은 금속공예품 중 많은 유물들을 남겨 놓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불교 의식구일 것이다. 그 중 당시 불교신앙의 중심이었던 탑에 보관하였던 불국사삼층석탑으로 대표되는 사리엄장구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처럼 역사적 의미가 큰 유물도 있지만, 각종 사리갖춤들은 당시 불교신도들의 정성이 들어가서 그런지 예술적으로도 상당한 걸작품을 남겨 놓고 있다. 사리엄장구 외에도 불교의식구 중 여러 걸작품을 남겨놓고 있는 것이 정병일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국보로 지정된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고예품인 청동은입사포류수금문정병이 전시되어 있다. 은입사기법을 이용해서 만든 향로,향완 등도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불교의식에 사용하는 것들이어서 그런지 정성을 들여서 만든 예술적 가치가 높은 것들로 생각..

중앙박물관 2010.08.25

[국립중앙박물관 금속공예실] 금속공예 제작기법

국립중앙방물관 3층 금속공예실 전시를 출발하는 지점에는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금속공예품의 제작기법을 설명하고 그 예를 볼 수 있는 문화재를 전시해 놓고 있다. 문화재를 관람하는 첫번째 순서로 그 제작기법과 배경에 대해서 잘 설명을 해 놓고 있으며, 이 설명을 잘 보고 각 문화재를 개별적으로 감상하게 되면 지식을 바탕으로 더욱 흥미로운 문화재 감상이 될 수 있다. 금속공예의 출발은 청동기제작에 사용된 쇳물을 녹여 거푸집에 부어 형태를 만드는 주조기법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으며, 금.은과 같은 귀금속을 두드려서 모양을 만드는 단조기법 또한 그 유래가 오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금속공예품을 만드는 방법은 이 두가지에다가 각종 장식과 무늬를 새겨 넣는 방법으로 낱알장식기..

중앙박물관 2010.08.25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태인 고현동향약과 무성서원, 관련 인사들

태인 고현동 향약은 향음주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무성서원을 비롯하여 많은 장소에서 향음주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향약의 공동재산 및 문서를 보관하던 정소인 동각을 중심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향약이 유지되어 왔던 것으로 보이며, 많은 곳에서 향약과 관련된 기록을 남겨놓고 있다. 향약의 내용을 담고 있는 무성서원 강당의 주련 소송을 조정.결정한 문서 1860년대에 관행적으로 유지되어온 동각의 경제적 이익을 관에 의해 박탈당하였다가 다시 회박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자료를 통해 동각을 설립한 가문, 동각에 관련된 사람(심부름꾼 및 고지기) 그리고 동각의 실제 운영을 살펴볼 수 있다. 무성서원의 역사 등을 기록한 책 무성서원과 관련된 역사와 서원의 운영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에는 향음..

중앙박물관 2010.02.06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태인 고현동 향약 관련 문서들

조선시대 지방 자치제도 중의 하나인 향약과 관련하여 가장 많고 세밀한 자료를 남기고 있는 태인 고현동 향약을 비롯해서 이 지역 출신 문인들의 여러 문집들에 향약과 관련된 내용을 남겨 놓고 있다. 주로 이지역 서원인 무성서원이 향약의 중심이 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인물로는 정극인 선생과 이항 선생이 중심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현동 향약 문서들 고현동 사람 정극인이 공신임을 증명하는 문서, 좌익원종공신녹권 정극인이 좌익원종고신임을 증명하는 녹권이다. 좌익공신은 세자가 즉위 직후 자신의 왕위 등극에 공을 세운 신하들에게 내린 공신 칭호이다. 원종공신은 가장 큰 공을 세운 정공신 다음에 해당하는 공신 칭호이다. 정극인도 이때 좌익원종공신에 책록되었다. 태인의 유학자 일재 이항의 문집인 '일재선생집'과 목판 이..

중앙박물관 2010.02.06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태인 고현동 향약

조선시대 지방 사회에 유교를 토착시켜려 시행한 향약 가운데서 그 내용이 양적,질적으로 가장 충실하다고 여겨지는 전라북도 태인의 고현동 향약이다. 마을에 최치원 선생을 모신 서원인 무성서원이 있고, 아마도 이 서원을 중심으로 향약이 제대로 유지되어 왔다고 보여진다. 특히 가사문학 '상춘곡'으로 유명한 정극인 선생이 초기에 이 곳 향약을 주도한 까닭에 그 내력이 깊어져서 제대로 향약이 잘 시행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형태의 향약 관련 문서들과 제도가 전해내려 오고 있다. 정극인이 지은 태인 향약에 관한 시, 불우헌집은 조선 성종때 학자 정극인의 문집이다. 정극인의 글과 행적 등을 한 데 엮은 책이다. 정극인이 처음으로 만든 고현동 향약에 관한 시인 '태인향약계축', 향음주례 서문인 '둥중향음주서', 태..

중앙박물관 2010.02.06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조선시대 향약

조선은 유교국가로서 유학을 토착화하고, 그에 맞은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향약은 조선중기 사림파의 등장이후 지방 토착세력과 함께 유교을 생활에 구현하기 위한 운동으로 시행되었다. 향약은 원래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북송때 '이씨향약'을 비롯하여 남송때 주희가 성리학과 함께 완성했다고 할 수 있는 제도이다. 서원과 함께 지방 토착세력이 지방민을 장악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중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이씨향약언해, '이씨향약, 송나라의 향약에 관한 책'을 한글로 번역한 책 중종13년 김안국이 '이씨향약'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한 책이다. 언해본을 만든 목적은 부녀자와 하층민을 교육하고자 한 데 있다. '주자종손이씨향약'은 중국 북송대 이대균이 마을 약속으로 만든 향약과 향기를 남..

중앙박물관 2010.02.06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조선시대 지방과 민간의 출판, 활자의 보관

조선시대 지방관청에서의 출판은 주로 중앙부처에서 지방으로 보내온 책을 복제한 목판본을 만들거나, 직접 지방에서 필요한 책을 만들어 보급하는 방식이었다. 조선 전기에는 주로 관청에 책을 출판하였으나, 조선후기에는 사찰에서 불경, 서원에서 문집, 유력가문에서 족보, 판매를 위한 책을 출판하기 위해서 민간 출판이 성행하였다고 한다. 본받아야 할 이야기, 이륜행실도, 평양감영에서 중앙에서 받은 책을 가지고 복제품을 만들어 배포한 책이다. '장유'와 '붕우'의 도리를 권장하기 위하여 이륜의 행실이 뛰어난 사람 48명의 행적을 엮어 만든 책이다. 1518년 조신이 왕명을 받아 처음 간행하였다. 이 책은 1727년 평안 감영에서 중간된 것이다. 부보님의 은혜를 강조한 불경인 '부모은중경언해', 사찰인 용주사에서 발간..

중앙박물관 2010.02.04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조선시대 중앙관청의 출판

조선은 교서관.주자소.규자각 등 출판 관련 중앙부서을 두고서 조선실록을 비롯하여 상당히 많은 분량을 책을 출판하였던 국가이다. 국가라 할 수 있는 중앙관청에서는 유교서적.역사책.법전을 비롯한 관청의 업무에 필요한 필요한 책을 출판하였으며, 출판된 책은 국가 부처에서 보관하거나 상으로 관리들에게 하사하거나, 지방 관청으로 보내서 복제품을 만들어 배포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오륜행실도를 찍은 한글 나무활자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다양한 종류와 크기의 한글 나무활자가 소장되어 있다. 그 중 여기에 전시된 나무활자는 '오륜행실도'를 찍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 활자는 츶면의 모양이 사다리꼴인 다른 활자와 구별되는 , 직방형의 육면체로 바닥도 평평하다. 또한 글자 모양은 붓으로 쓴 듯한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

중앙박물관 2010.02.04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조선의 금속할자, 갑인자 외

조선은 유교국가로 교육과 역사기록을 매우 중요시하였고,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 기록문화유산을 남겨놓고 있다. 조선의 금속활자는 태종때 만든 계미자에서 시작하여, 갑인자, 임진자, 한구자, 정리자 등 다양한 금속활자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국가가 주도로 금속활자를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한구자처럼 민간에서 금속활자를 만들어 사용하던 것을 국가가 구입하여 사용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금속활자가 보편화되어 있었다. 조선전기에 만든 금속활자는 임진왜란때 대부분 불타버렸고, 현존하는 금속활자는 주로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현종실록을 찍을 때 사용한 활자 1677년 '현종실록'을 펴낼때 사용한 활자이다. 지방 문중에서 사용하는 금속활자를 왕실에서 구입하고, 새로 4만여자를 만들어 '현종실록'을 찍..

중앙박물관 2010.02.03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조선의 지도

조선시대의 지도는 고산자 김정호로 대표되는 대동여지도가 있으며, 각종 지역의 그린 읍지, 수도 서울을 그린 지도, 전국지도들이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지도가 많이 전시되어 있지는 않고 대표적인 읍지인 함영읍 지도와 김정호가 그린 '수선전도'와, 조선후기 서울의 지도인 '도성도'가 전시되어 있다. 함영읍지도. 함경도 감영이 있던 함흥 관아의 모습을 그린 대표적인 읍지이다. 함경도 감영이 있던 함흥의 지도이다. 읍지의 축적을 크게하여 함경도 함영의 모습을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읍성 내부가 크고 상세하게 그려지는 군현짇의 특성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고산자 김정호가 그린 수선전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조선시대의 서울을 그린 지도이다. '수선'은 서울을 뜻하는 용어로 중..

중앙박물관 2010.02.03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조선의 도량형 제도

조선시대 도량형은 크게 길이를 재는 자, 무게를 재는 추, 부피를 재는 말 등이 있다. 도량형은 국가의 근본을 이루는 것으로 국가의 존재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중국 진나라 진시황의 업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의 하나가 도량형의 통일일 정도로 중요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도량형은 주로 중국의 도량형을 우리의 실정에 맞추어 사용하였는데 조선시대 도량형은 세종때 주로 정립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조선시대에 사용한 다양한 형태의 자. 청동으로 된 영조척, 대나무와 상아로 만든 자, 네 면에 각각 다른 척도를 새긴 놋쇄자가 있다. T자형 자 (영조척) 정조가 신하에게 내려준 자(중화척)와 바느질자(포백척) 조선시대에도 길이늘 재는 자가 여러가지 있었다. 중국의 주나라에서 제정하여 사용한 주척은 ..

중앙박물관 2010.02.03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조선시대의 상인, 보부상

조선시대 상업활동은 다양한 형태의 상인들을 중심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한양의 관납을 주도하는 육의전 상인, 개성 인삼을 중심으로 국제 거래에 역할이 많았던 개성상인을 포함한 규모가 큰 상인도 있었고, 전국을 떠돌아 다니며 소매활동을 했던 보부상과 오일장을 떠돌돈 장돌뱅이까지 다양한 형태의 상인들이 있다. 그 중 보부상은 겉보기와는 달리 거대한 조직체로서 전국적인 규모로 그 조직이 운용된 것으로 보인다. 보부상의 도장과 도장함. 구한말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부상 조직이 최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관료들의 인장보다 크고 화려하게 만든 것 같다. 조선말기부터 충청남도 임천, 은사, 홍산 일대에서 활동한 보부상이 사용하던 도장함 3점과 도장 11점이다. 보부상 조직의 임원이었던 영위.반수..

중앙박물관 2010.02.03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조선의 경제 생활, 화폐 (상평통보,조선통보)

조선은 농업중심의 경제 사회로 세금납부, 물물교환의 매개체로 경제활동의 중심이 되는 화폐의 역할을 곡물인 쌀이 대신했기 때문에 상평통보로 대표되는 화폐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크게 활성화되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고 보기는 얼려운 사회였다. 반면, 유럽이나 중국의 경우 은을 매개체로 활용했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고대 그리스 은화가 교환의 매개체가 되었고, 중국에서 은이 세금납부와 교환의 중심 매개체가 되어 왔다. 아마도 조선에서도 화폐로서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할려고 했다면 아마도 상평통보를 은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동전꾸러미와 도, 돈을 보관하던 궤짝인 돈궤 조선 최초의 동전인 조선통보 조선을 대표적인 동전인 상평통보. 당일전, 당오전, 당이전, 당백전이 있다. 그 중 가장 큰 동전이 구한말 대원군이..

중앙박물관 2010.02.03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조선시대 신분증인 호패, 마패

조선시대에는 각 호구의 현황을 기록하는 호적과는 별개로 개인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호패를 만들어 착용하도록 했다. 호패는 과거 급제 여부를 중심으로 개인의 신분에 따라서 다른 모양의 호패를 차고 다니게 했으나, 일반인들은 세금, 징집 등의 문제로 사용을 기피했다고 한다. 개인의 신분을 증명하는 호패와는 달리 마패는 국가를 경영하기 위한 행정을 위해 관리들이 역에서 말을 사용할 수 있도록 신분을 증명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에 사용된 각종 호패들. 생원. 진사 시험 합격자 호패, 시위병의 호패, 벼슬하지 못한 유생의 호패가 있다. 지위가 높을수록 호패가 세련되어 보인다. '벼슬하지 못한 유생의 호패'를 지닌 사람은 저절로 과거에 합격하고자 하는 욕망이 생길 것 같다. 과거 급제자 호패, 지역별..

중앙박물관 2010.02.01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조선시대의 의학, 동의보감

조선시대의 의학은 지금의 한의학을 조선시대의 의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아마도 허준의 '동의보감'으로 대표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한의학은 특정한 질병에만 적용하는 경향이 있지만 조선시대 한의학은 외과에서 시작해서, 전염병까지 생활에서 발생하는 모든 질병에 대처했던 의학이라 할 수 있다. 허준이 쓴 조선시대 의학서적인 '동의보감' 한의학에서의 인체관련 그림 약재를 빻거나 즙을 낼 때 쓰는 기구 약을 달이는데 쓰는 그릇 약재를 빻을 때 쓰는 접시와 막자 약재의 무게를 재는 저울, 침통과 침 약을 짜는데 쓰는 틀 마마신의 심술 조선시대에 발생한 전염병으로는 콜레라, 천연두, 성홍렬, 장티푸스, 이질, 홍역 등이 있었다. 이 가운데 가장 피해가 컸던 것은 콜레라와 천연두였다. 천연두는 조선시대 의서에..

중앙박물관 2010.02.01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조선의 농업, 담배의 보급

조선은 농업국가로서 인구의 대부분이 농민이었다. 농업 생산은 국가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으로 국왕이 직접 관장했던 부분이 많았다, 사직단의 제사를 비롯하여 측우기, 천문관측 등도 모두 농업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세종때에 작성한 '농사직설'을 비롯하여 가장 유명한 '농가월령가'까지 국왕을 비롯하여 많은 지식인들이 농업을 위한 서적을 편찬, 보급할려고 애를 썼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효종대에 신속이라는 사람이 만든 농서인 '농가집성' 17세기 활동한 관리 신속이란 인물이 편찬한 조선시대 대표적인 농업서적이다. 세종대에 정초 등이 왕명을 받을어 편찬한 '농사직설', 세조 때 강희맹이 지은 '금양잡록', 작자미상의 '사시찬요처' 등 3종의 농서와 부록으로 흉년에 백성을 구제하는 대책을 적은..

중앙박물관 201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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