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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황학정,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조선시대 활터

황학정은 조선시대 인왕산 아래 있던 다섯군데의 활터 중 하나였던 등과정에 있는 정자이다. 이 정자는 구한말인 1898년 고종의 명으로 경희궁 뒷편 언덕에 세웠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경희궁을 헐고 서울고등학교를 비롯하여 여러 건물들을 그 자리에 세울때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2칸의 정자 건물로 구한말에 지어진 많은 정자 건물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활쏘기는 역사이래로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중요한 무기로 여겨졌으며, 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대표적인 명궁이었다고 한다. 이는 북방초원에서 활약한 기마민족을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활쏘기는 지도자의 필수 덕목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정조가 당대의 명궁이었다는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까지 이..

고택_정원 2013.11.03

[서울역사박물관] 육조거리, 조선시대 의정부와 육조 관청들이 들어서 있었던 광화문 광장 대로

육조거리는 조선시대 의정부와 6조를 비롯한 주요 관청들이 들어서 있던 거리로 법궁인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에서 현재의 광화문 4거리까지 조성된 대로를 말한다. 국왕이 거처하는 궁궐과 더불어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중요 관청들로 국가를 상징하는 거리라 할 수 있다. 지금도 넓은 대로 좌.우에 정부종합청사를 비롯하여 세종문화회관, 주한미국대사관, KT본사 건물 등이 들어서 있다. 조선시대 육조거리 동쪽편에는 국가 최고 의사결정기구라 할 수 있는 의정부를 비롯하여 이조, 서울시청이라 할 수 있는 한성부, 재경부라 할 수 있는 호조, 국가원로들을 위한 공간인 기로소가 들어서 있고, 서쪽편에는 국가 행사를 주관하는 예조를 중심으로 감사원격인 사헌부, 주요 정책을 집행하는 병조, 형조, 공조를 비롯한 크고 ..

지역박물관 2013.11.01

경산 팔공산 석조여래좌상(보물 제431호), 갓바위라 불리는 소원성취를 비는 대표적인 기도처

대구 갓바위는 대구 부근 명산인 팔공산 남쪽 자락에 위치한 해발 850m 관봉 정상부에 있는 석불좌상으로 머리에 갓을 쓰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갓바위라고 많이 불린다. 부처를 형상화한 불상이지만 기복신앙의 의미를 갖는 대표적인 불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이다. 특히, 수능을 앞둔 학부모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해마다 대입수능시험을 앞두고 뉴스에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갓바위는 해발 850m의 높은 봉우리에 있으며, 경주로 들어가는 길목인 넓은 경산과 영천지역 벌판과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갓바위라 불리는 불상은 보물 431호로 지정된 문화재로 정식 명칭은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이다. 통일신라시대 후기라 할 수 있는 9세기에 조성된 불상으로 머리에 넓적..

[서울역사박물관] 수도 한양을 구성하는 궁궐을 비롯한 관아와 수도를 관리하는 한성부

서울은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새로운 나라의 수도로 1394년 건설된 철저한 계획도시라 할 수 있다. 당시 새로운 수도로 장단 불일사, 도라산, 계룡산 일대, 서울 무악(안산) 기슭 등 여러곳이 추천되었지만 북한산을 외산으로 하여 백악, 인왕, 타락, 목멱산으로 둘러싸여 분지를 이루고 있었던 오늘날의 서울 도심이 새로운 수도로 선정되었다. 수도 건설은 유교적 이념에 따라 중국 주나라의 제도를 기록한 『주례』의 「고공기」를 기본으로 하여, 풍수리리사상과 군사,경제적 여건 등을 고려하여 건설되었다. 조선의 수도 한양은 성곽으로 둘러싸인 오늘날 서울 구도심과 성저십리라 하여 도성밖 10까지를 포함하는 영역을 말한다. 수도는 주산이라 할 수 있는 백악산(북악산)을 중심으로 법궁인 경복궁이 건설되었고, 동쪽..

지역박물관 2013.10.28

상주 복룡동 석불좌상(보물119호), 상주 도심 왕산공원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불상

상주시 구도심 옛 상주목 관아가 있었던 왕산에 있는 석조불상이다. 원래는 상주시 복룡동 마을에 있었던 것으로 1970년대에 공원이 조성되면서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석불은 높이 147cm로 중후하면서 투박한 느낌을 하고 있어 지방세력의 힘을 보여주는 많은 석불을 세웠던 고려초기에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머리를 비롯하여 전체적으로 훼손된 부분이 많으며 조각수법 또한 통일신라 전성기의 것보다 뒤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상주시 일대의 중심지가 되었던 도심 마을에 계속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부여 정림사지나 논산 개태사 등에서 볼 수 있는 도심에 있었던 사찰의 불상으로 보인다. 상주 복룡동 석불좌상, 보물119호, 경북 상주시 서성동 당초 석불좌상이 있었던 곳은 복룡동 358번지 마을 가운데..

[서울역사박물관] 수도 한양에 살던 사람들

조선이 개국한 이래 수도로 정한 한양은 중국 주나라 제도를 기록한 를 참조하여 건설된 철저한 계획도시라 할 수 있다. 주산이라 할 수 있는 백악산 아래 궁궐인 경복궁을 짓고 그 동쪽편에 종묘, 서쪽편에 사직을 지었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읍성도시였던 한양은 도심을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청계천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궁궐, 관아, 권문세가들의 주거지가 형성되었으며, 남쪽으로는 일반인들이 터를 잡고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수도 한양에 거주했던 사람으로는 지배계층이라 할 수 있는 국왕을 중심으로 한 양반관로, 의관.역관 등 전문직 중인과 관청의 서리, 훈련도감 등에 소속된 군인들이 주로 살았으며, 이들은 조선이라는 국가를 운영하는데 필수적인 인원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이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자나 ..

지역박물관 2013.10.24

상주향교, 상주목 관아에서 운영하던 조선시대 중등교육기관

상주향교는 조선시대 지방통치조직 중 큰 규모였던 상주목 관아에서 운영하던 중등교육기관이다. 상주목 관아가 있던 상주 구도심 왕산공원에서 약 1.7km 떨어진 옛 상주읍성 남쪽에 위치한 남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상주 향교는 비교적 늦은 시기인 조선초 세종8년(1426)에 처음 세워졌으며 임진왜란때 소실된 것을 광해군대에 중건되었다고 한다. 고을 규모에 걸맞게 향교 중에서는 비교적 큰 규모를 하고 있으며, 해방 이후 향교에서 남산중학교를 설립하여 향교가 중학교 교사로 사용되다가, 1980년대 학교가 이전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향교는 조선후기에 서원에 밀려 중등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선현에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위상이 축소되었으며, 일제강점기 이후 전국대부분의 향교는 제사기능만..

상주 향청, 조선시대 지방관을 보좌하기 위해 설치된 자치조직

경북 상주시 옛 상주목 관아가 있던 도심에는 관아건물로서 유일하게 상주향청이 남아 있다. 1950년대에 처음 세워졌다고 하며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앞면 5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할 수 있도록 가운데 3칸은 넓은 대청마루로 되어 있으며, 양쪽에 온돌방 1칸씩을 두고 있다. 이 건물은 향청의 지위가 향리로 격하된 조선중기 이후에 운용된 것으로 건물의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다. 향청은 조선초 지방관을 보좌하기 위해 설치된 유향소를 일컫는 말로 지방의 자치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유향소는 지방관아에 소속된 아전을 비롯한 하급관리를 감찰하고 지역을 교화하기 위해 설치되었으며 그 유래는 고려의 사심관제도에 있다. 오늘날 지방자치조직인..

조선 관아 2013.10.17

[서울역사박물관] 조선시대의 서울, 500년 왕도를 세우다.

한양(韓陽)은 조선시대 수도의 명칭으로 오늘날 서울을 말한다. 한양의 범위은 좁게는 성곽으로 둘러싸안 사대문 안쪽을 말하지만, 성저십리라고 하여 한성부에서 관할했던 성밖 10리까지를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한양의 인구는 세종대 10여만, 임진왜란 이후4만여명, 조선후기 20여만명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실제로는 20~30여만명의 인구가 한양일대에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은 중앙집권적 관료체제를 구축한 국가답게 모든 행정, 경제 등이 한양에 집중되었던 사회로 그 규모는 당대 유럽의 대도시였던 파리, 런던 등과 비슷하거나 규모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한양은 북악산, 인왕산, 낙산, 목멱산(남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도성 남쪽에 한강이 흐르고 있어 한반도 전역으로 내륙수운과 연..

지역박물관 2013.10.17

상주 태평루, 상주목 관아 출입문인 문루

상주시 임란북천전적지 언덕으로 옮겨져 있는 옛 상주목 관아 출입문 문루인 태평루이다. 조선후기에 건립된 관아 출입문 문루로 앞면 3칸, 옆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정형화된 문루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규모는 큰 편이다. 원래는 상주목 관아가 있었던 상주도심 왕산역사공원 부근에 있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도심이 정비되면서 상주향교로 옮겨졌다가 최근에 이곳에 임란전적지가 조성되면서 객사인 상산관 등과 함께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1층은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2층 누마루는 읍치 마을을 오가는 사람들을 살펴보는 용도로 지어졌다. 상주는 경주와 함께 경상도의 어원이 되는 고장으로 고려시대 전국 지방조직인 12목이 설치될때 상주목이 설치되었으며, 조선초에는 경상감영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낙동강 중류에 위..

조선 관아 2013.10.11

상주 침천정, 상주목 관아에서 운영하던 정자

상주시 북천 임란전적지에 옮겨져 있는 조선시대 상주목 관아에서 운영하던 정자인 침천정이다. 앞면3칸, 옆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크지 않은 규모의 정자 건물이다. 관아에서 운영하는 정자는 지방 수령이 중앙에서 방문한 관리나 중요한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서 연회를 베풀거나 전쟁 등의 위급한 상황시 관내 주요 인사들이 회의를 하기 위한 장소이다. 현재 남아 있는 대표적인 정자인 영남루, 죽서루, 촉석루 등이 관아에서 운영하는 정자인데, 그 규모가 상당히 크다. 반면에 상주목 관아에서 운영하던 침천정은 경치좋은 곳에 개인이 세웠던 정자와 비슷한 규모를 하고 있다. 이는 상주목 관아의 중심이 되는 객사건물이 상산관이 그 규모가 크고 웅장했기때문에 손님접대나 회의에는 객사를 이용했던 것으로 보이며, 침천정은..

조선 관아 2013.10.10

상주 상산관, 상주목 객사로 남부지방에서 가장 큰 규모의 관아 건물 중 하나

경북 상주시 북천 임진왜란 유적지에 남아 있는 상산관은 조선시대 상주목 관아의 건물의 중심이 되는 객사 건물이다. 객사는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고 예를 올리는 장소이자,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나 외국 사신이 머무는 숙소로 사용되는 건물이다. 상주 상산관은 전주객사와 함께 조선시대 객사 건물 중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건물로 궐패를 모신 정청이 앞면 3칸, 숙소로 사용되는 동익헌이 7칸, 서익헌이 4칸 규모이다. 고려시대 지방 통치체제가 정비되면서 처음 세워졌던 것으로 여러 차례 화재로 중수를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래 객사를 비롯한 관아 건물들은 도심내 상주경찰사 부근에 있었다고 한다. 낙동강 중류에 위치한 상주시는 경주와 함께 경상도의 어원이 되는 고장으로 낙동강을 이용한 내륙수운, 백두대간..

조선 관아 2013.10.07

강화 광성돈대, 광성보 성문과 강화해협을 지키는 해안방어시설

강화와 육지 사이를 흐르고 있는 염하를 감시하는 많은 돈대와 포대 중에서 광성보 문루인 안해루 옆에 위치하고 있는 광성돈대이대. 대부분의 돈대가 사각형 또는 원형을 이루고 있는데 반해서 광성돈대에는 타원형에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다. 염하(강화해협)이 흐르는 강화해안에서 동쪽으로 약간 돌출된 곳에 설치된 광성돈대엔 북쪽과 동쪽으로 4곳의 포좌가 설치되어 있으며, 광성보를 출입하는 성문인 안해루를 엄호하면서 해안을 방어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다. 1977년에 이곳을 정비하면서 돈대내부에 조선시대에 사용하던 3문의 포(砲)가 설치/전시되어 있다. 광성돈대 광성돈대는 광성보에 소속된 3개 돈대중 하나로서 숙종 5년(1679) 함경도.황해도.강원도의 승군 8,000여명과 어영군 4,300명이 40일만에 완공하였다..

강화 광성보, 신미양요의 현장

강화와 육지 사이를 흐르는 좁은 수로인 염하를 지키는 여러 요새들 중의 하나인 광성보이다. 광성보는 숙종대에 강화도 해안 전역에서 설치된 군사조직인 5진.7보 중 하나로 북쪽으로는 용진진, 남쪽으로는 덕진진과 초지진이 있다. 광성보는 강화해협(염하) 남쪽편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군사적인 요지로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이 가까운 지역에 밀집되어 있으며, 방어시설로 많은 포대와 돈대가 배치되어 있다. 광성보는 광성돈대, 화도돈대, 오두돈대를 거느리는 지휘부 역할을 하는 곳으로 해안가를 따라 쌓은 성벽을 출입하는 문루인 안해루가 남아 있다. 구한말 병인.신미양요와 일본은 운요호사건이 이곳에서 벌어졌으며, 광성보는 신미양요때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로 이 곳을 지키던 조선병사 대부분이 순국했던 곳이기도 하다. 광성..

[프랑스여행] 마르세유 항구(Vieux Port), 수많은 요트들이 정박해 있는 지중해 최대의 항구

마르세유는 파리 남쪽 797km 떨어진 지중해 연안에 자리잡고 있는 천연의 항구로 BC600년경 그리스 시대에 마살리라 불리는 항구로서 발달하였다. 고대이래로 지중해 무역의 중심이 되는 항구로 발달한 프랑스를 대표하는 항구도시이다. 고대로마시대에는 카이사르에 반항하여 아를에 그 지위를 내어주기는 했으나, 중세를 뒤흔든 십자군 원정으로 번영을 회복하였고, 19세기에 산업혁명, 알제리정복, 수에즈운하의 개통으로 도시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마르세유는 지중해를 통해서 프랑스로 들어오는 북아프리카인, 이탈리아인, 스페인인 등이 처음을 발을 내딛는 곳으로 지금도 프랑스이지만, 가장 프랑스같지 않은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소설 , 영화 등에서 볼 수 있는 어두운 분위기는 지금도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분..

프랑스(France) 2013.10.02

[프랑스여행] 마르세유 이프성, 소설 몽테크리스토백작의 무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중해 항구인 마르세유는 많은 역사적 사건과 소설, 영화 등의 배경이 되었던 도시를 그 중 이프성은 알렉산드르 뒤마(Alexandre Dumas)의 대표작인 '몽테크리스코 백작'에 등장하는 곳이다. 중세 프랑스국왕 프랑수아 1세가 이곳에 감옥으로 건립한 이후에 수많은 정치범들이 갇혀있던 악명높은 곳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이야기인 철가면 또한 이 곳 이프성에 갖혀었다고 한다. 이프섬은 마르세유에서 남서쪽으로 3 km 정도 떨어진 지중해에 있는 작은 바위섬으로 지금은 마르세유를 대표하는 관광지 중 하나이다. 이프섬은 겨울에는 섬에 내려볼 수 없고, 이프섬 인근에 있는 작은 섬으로 들어가는 여객선을 타고 섬주위만 둘러볼 수 있다. 실제로 본 이프성은 소설에 등장하던 험난하고 도저히 탈출이 불..

프랑스(France) 2013.10.02

[프랑스 여행] 마르세유 노트르담 대성당과 지중해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마르세유는 고대 그리스가 무역항을 세운 이래로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유서깊은 항구도시이다. 중세 십자군 전쟁으로 새로이 번성하기 시작하다가, 산업혁명과 수에즈운하의 개통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오늘날 프랑스를 대표하는 무역항이 되었다고 한다. 고대 이래로 번성한 마르세유는 그 역사에 비해서 오늘날 남아 있는 유적지는 거의 없는 편이고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 묘사된 감옥인 이프섬을 비롯하여 각종 소설, 영화 등의 무대로 많이 등장하는 도시이다. 유적지나 명소가 그리 많지 않은 마르세유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축물은 항고 동쪽 석회암 언덕에 세워진 노트르담 대성당일 것이다. 마르세유 항구 바깥에 있는 이프섬으로 가는 배에서도 본 마르세유 항구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물이 이 대성당이었다. 아마도 ..

프랑스(France) 2013.10.02

[프랑스여행] 마르세유 거리 풍경

프랑스 제 1의 항구도시인 마르세유는 론 강 하구부근에 위치하고 있는 고대 이래로 지중해 무역의 주요 거점이었던 도시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소설 중 하나인 '몽테크리스트 백작'의 무대이며, '택시'를 비롯하여 많은 영화의 무대가 되었던 도시가 마르세유이다.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 또한 프랑스 혁명당시 마르세유 출신 혁명군들이 주로 불렀던 노래이기도 한다. 마르세유는 프랑스에서도 손꼽히는 큰 대도시이지만, 프랑스와는 문화적, 역사적으로 이질감이 큰 도시로 독립성이 강한 도시이다. 프랑스에서도 살기 좋은 지중해 연안 프로방스 지방에 위치한 도시이지만 인근의 아를, 몽펠리에, 아비뇽 등과는 도시의 분위기가 사뭇 다른 느낌이다. 프로방스 지방의 특색이 밝고 경쾌한 느낌이라면 마르세유는 눈비신 지중해의..

프랑스(France) 2013.10.02

[프랑스여행] 마르세유 홀리데이인 호텔 (Holiday Inn)

마르세유 구도심에서 지하철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홀리데이인 호텔이다. 유럽의 주요 도시들은 그 역사가 오래되었고, 19세기에 지어진 건물들을 호텔로 쓰는 경우가 많지만 마르세유 홀리데이인 호텔은 현대식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유럽적인 분위기가 나지는 않는 반면에 도로변에 있어서 찾기 쉽고 편안하게 묵을 수 있는 장점도 있는 것 같다. 마르세유는 고대 이래로 지중해에서 중요한 무역항으로 큰 역할을 했던 오래된 도시이지만, 오래된 건물들은 대부분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었다고 한다. 그 후에 재건된 도시는 항구를 중심으로 한 구도심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현대식 아파트 건물과 빌딩들이 들어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시가지는 도로도 넓고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으며, 한국과 비슷한 느낌을 ..

프랑스(France) 2013.10.02

[프랑스여행] 마르세유에서 니스(Nice) 행 기차에서 본 지중해안 풍경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니스와 모나코를 거쳐서 이탈리아 제노바까지 지중해 해안을 따라서 연결된 철도 여행은 지중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코스가 되는 것 같다. 칸느영화제로 유명한 작은 휴양도시 칸(Cannes), 유럽을 대표하는 바캉스의 고장 니스(Nice), 지중해의 작은 왕국인 모나코를 연결해 주는 이 철도길에서 유럽인들이 동경해 마지않은 아름다운 해안과 눈부신 햇살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지중해를 대표하는 포도밭, 해안 언덕에 세워진 크고 작은 부유층 별장들, 끝없이 펼쳐지는 지중해 수평선을 비롯하여 아름다운 경치들이 이어지는 지루하지 않는 기차여행길이다. 마르세유에서 니스까지는 약 2시간40분 정도 걸리며, 니스에서는 이탈리아 국경도시로 제노바로 가는 열차를 환승할 수 있는 벤티미글리아(Ve..

프랑스(France) 2013.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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