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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_종묘

[서울 종묘(宗廟)] 공민왕 신당 (恭愍王 神堂)

younghwan 2010. 9. 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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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종묘의 망묘당 동쪽편에는 고려 31대 공민왕을 위하여 종묘와 함께 창건된 공민왕 신당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공민당 신당에는 특이하게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가 함께 있는 영정이 가운데 있고 벽에는 준마도가 있습니다. 이 공민당 신당은 태조가 종묘를 창건할 때 같이 세웠다고 합니다. 이 공민당 신당이 뜻하는 의미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노국공주와 같이 있는 영정이 봉안되고 또한 종묘에 공민왕 신당이 있다는 것은 태조 이성계의 동시대에 살았던 공민왕에 대한 평가가 들어 있는 듯 합니다.


공민왕 신당에 모셔진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영정입니다. 보통 영정의 경우는 한 사람만이 등장하는데 공민왕 신당의 영정은 노국공주와 같이 있습니다.

공민왕 신당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북쪽에 감실이 있고 그 안에 고려 공민왕과 그의 왕비인 노국대장공주의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공민왕 신당 좌측편에는 공민왕이 그렸다고 전하는 대렵도풍의 준마도가 있습니다.

종묘의 망묘루 동쪽편에 공민왕 신당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안내 표지판

공민왕 신당은 망묘루 동쪽에 있는 별당으로 고려 31대왕 공민왕을 위하여 종묘 창건시에 건립되었다고 전한다. 신당 내부에는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가 한자리에 있는 영정(影幀)과 준마도(駿馬圖)가 봉안되어 있다. 신당의 정식 명칭은 '고려 공민왕 영정 봉안지당(高麗 恭愍王 影幀 奉安之堂)'이다. <출처:문화재청>

노국대장공주는 원나라의 황족인 위왕(魏王)의 딸로서, 이름은 보탑실리(寶塔實里)이다. 1349년(고려 충정왕 1년) 원나라에서 공민왕과 결혼하여 고려의 왕비가 되었다. 노국대장공주는 공민왕이 반원 정책을 실시하자 자신이 태어난 고국을 배척하고, 남편을 도와 공민왕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노국대장공주는 후에 겨우 아이를 갖게 되었으나, 난산으로 죽었다. 그녀가 죽자 공민왕은 매우 슬퍼했다. 그녀가 죽은 지 얼마 후 정치권을 신돈(辛旽)에게 양도했다. 공민왕은 그녀의 초상화를 그려 벽에 걸고 밤낮으로 바라보면서 그리워했다고 한다. 또한 공민왕은 그녀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혼제를 지냈으며, 그 진영을 모시기 위해 호화로운 영전을 짓도록 하였다. <출처:문화원형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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