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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에서 용인 수지로 가는 국도변에 자리잡고 있는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역입니다. 전국에서도 명당으로 잘 알려진 용인지역에서 묘지들이 많은 지역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고려말 충신으로서 고려에 대한 충성심의 높이 평가를 받아서인지 근처에 충렬서원과 함께 상당히 성역화된 곳이라 생각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왜 용인에 정몽주 선생의 묘소가 있는지 궁금해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용인 모현면에 자리잡고 있는 고려말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소입니다.
용인 모현면 정몽주 선생의 묘소가 있는 언덕입니다. 이 곳은 얼핏 보기에도 명당처럼 보여서 그런지 주위에 많은 무덤들이 언덕에 산재해 있습니다.
정몽주 선생 묘소가 있는 언덕에서 내려다 본 묘역입구입니다. 언덕을 오르는 입구에 작은 연못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정몽주 선생 묘역입구입니다. 비석과 안내표지판이 이 곳의 내력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묘역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제실 건물입니다.
제실과 여러동의 건물이 같이 있는데, 정확한 내용은 ?
포은 정몽주 선생 묘역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홍상물입니다. 조선시대에도 그 충성심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몽주 선생 묘역 입구에서 본 묘역의 모습입니다. 입구에 제실이 있고 동산 가운데 정몽주 선생의 묘소와 함께 주위에 많은 무덤들이 산재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표지판
고려 후기의 충신으로 우리나라 성리학의 기초를 닦은 포은 정몽주(1337∼1392) 선생의 묘소이다. 공민왕 9년(1360) 과거에 장원급제한 후 예문관검열, 예부정랑, 대사성 등의 여러 벼슬에 올랐다. 5부 학당을 세워 후진을 양성했으며, 일본에 가서 외교활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이성계의 세력이 날로 커지면서 정도전 등이 새 왕조를 세우려 하자 끝까지 고려 왕실을 지키려다가 선죽교에서 피살되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선생이 순절한 후 풍덕군에 묘를 썼다가 후에 고향(경상북도 영일과 영천) 중 한곳인 영천으로 이장할 때, 경기도 용인시 수지면 풍덕천리에 이르자 앞의 명정(銘旌:다홍 바탕에 흰 글씨로 죽은 사람의 품계, 관직, 성씨를 기록한 깃발)이 바람에 날아가 지금의 묘소에 떨어져 이곳에 묘를 썼다고 한다. 묘비에는 고려시대의 벼슬만을 쓰고 조선의 시호를 쓰지 않아 두 왕조를 섬기지 않는 뜻을 분명히 하였다. 묘역 입구에는 송시열이 지은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가 있는데, 정몽주의 충절과 높은 학식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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