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서원_향교_사당

[성균관] 입구에 세워진 탕평비와 하마비, 문묘 출입문인 신삼문.동삼문,

younghwan 2013. 3. 20. 11:55
반응형


 성균관은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을 중심으로 한 제향공간이 앞쪽에, 명륜당을 중신으로 한 강학공간이 뒷편에 위치한 전묘후학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성균관은 현재 옛 성균관을 계승한 성균관대학교와 같은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이 대학교문에서 캠퍼스로 들어가는 길이 옛 성균관을 출입하는 길이라 할 수 있다. 지방의 향교나 마찬가지로 성균관 입구에서 성균관의 권위를 보여주는 하마비가 세워져 있고, 그 옆에는 영조가 당쟁타파를 위해 세웠다는 역사적인 비석인 탕평비가 비각속에 있다.

 하마비를 지나면 제향공간인 대성전 출입문이 신삼문을 볼 수 있다. 신삼문은 대성전, 명륜당 등과 함께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로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출입문이다. 신삼문은 신이 출입하는 문으로 실제로 사용하지 않는다. 성균관 실제 출입하는 문은 동쪽편에 있는 동삼문이 있지만, 이 또한 국왕만이 출입하는 문으로 어삼문이라고도 한다. 실제 문묘를 관리하는 실무자들이 출입하는 문은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전사청으로 연결된 출입문이라 할 수 있다.


성균관대학교 교문에서 대학캠퍼스로 들어가는 길. 원래 성균관 입구에서 대성전 신삼문으로 연결되는 길을 뒷편 대학캠퍼스로 연결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이자 공자와 선현들의 위채를 모신 문묘는 서울도심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런지, 성균관 들어오는 길에 숲이 조성되어 있지 않고,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옛날 조선시대에도 성균관 주변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번잡한 곳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교문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탕평비와 하마비

탕평비
1742년(영조18) 왕세자가 성균관에 입교한 즈음에 영조의 어명으로 반수교 위에 세워진 비석. '탕평'이란 <서경>에서 온 것으로, 공정한 정치를 해야 통치자의 입지가 평탄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비에 새겨져 있는 내용는 논어 위정편 14장을 활용하여 영조가 지은 것으로, "남과 두루 친하되 편당 짓지 않는 것은 군자의 공정한 마음이고, 편당만 짓고 남과 두루 친하지 못하는 것은 소인의 사사로운 생각이다."라는 뜻이다. 당시 조선은 붕당 정치의 폐해가 심화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영조는 장차 국가를 이끌어 갈 성균관 유생들에게 정치의 올바른 길을 알려주려는 뜻에서 친필을 내려 탕평비를 세웠던 것이다. <출처:서울시청>


비각 속에 있는 탕평비는 영조가 세자를 성균관에 입학시키면서 당시 사회문제라 할 수 있는 당쟁을 없애고자, 성균관 유생들이 볼 수 있도록 글을 적어놓고 있다. 실제로 영조 자신도 당쟁에 자유롭지 못했으며, 당쟁에 휘말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이는 일을 벌이게 된다.

하마비
조선시대 종묘, 궐문 및 문묘 앞에 세워놓은 석비이다. 1413년(태종13)에 처음 예조에서 건의하여 왕의 허가를 받아 나무로 만든 표석을 세운 것이 계기가 되었다. 비석 전면에는 '대소 관리로서 이곳을 지나가는 자는 모두 말에서 내리라'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그 내리는 지점도 품계에 따라 각기 다르게 표시하고 있는데, 1품 이하는 궐문으로부터 10보, 3품 이하는 20보, 7품 이하는 30보 거리에서 말에서 내려야 한다고 되어 있다. <출처:서울시청>


이곳이 성역임을 알려주는 하마비.

신삼문(神三門):
성현들의 신이 드나드는 문묘의 정문(보물), 태조 7년(1398)에 대성전과 동시에 지어진 문으로서 대성전의 남쪽입구에 남향으로 지은 3간(間)의 문이다. 돌아가신 성현들의 넋이 출입하는 세 개의 문이라고 하여 신삼문이라고 한다.
<출처:성균관>


성균관 정문인 신삼문(神三門).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으로 사람이 드나드는 문이 아니라 신(神)이 드나드는 문이다.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신삼문 추녀마루 잡상


신삼문 공포와 서까래


성균관 문묘 마당에 심어진 고목들이 울창한 숲을 만들고 있는 신삼문 앞 길


2009년 성균관 신삼문

동삼문(東三門):
임금이 문묘에 출입할 때 사용하던 문(사적), 군왕이 석전(釋奠) 등에 참석할 때 출입하는 문으로서 동무 북쪽에 동향으로 지은 3간(間)의 문이다. 평상시에는 사용하지 않고, 군왕이 행차할 때만 쓴다고 해서 일명 어삼문(御三門)이라고도 한다. <출처: 성균관>


실제 성균관 문묘 출입문으로 사용되는 동삼문. 국왕이 행차할때만 사용하는 출입문으로 어삼문으로 불리기도 한다. 삼문의 형식으로 동무와 연결되어 있으며, 안쪽에는 방이 있는 행각이 있다.


강학공간인 명륜당 마당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동삼문과 행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2개의 출입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균관 동재와 사무실인 정록청으로 출입하는 작은 협문. 실재 성균관에서 공부하는 유생들이나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이 사용하는 출입문이라 할 수 있다.


성균관 문묘 동쪽편 제사를 준비하거나 문묘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머무는 전사청 일대를 출입하는 협문


문묘 제사때 실무자들이 문묘를 출입하는 전사청과 연결된 협문



 

반응형